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22)

by 녕이담

그동안에 말로도 글로도 다 담기 어려운 일들을 지나오면서 한때는 어려 많이 울기도 하고 좌절도 하고 감정적으로 실컷 나와 주변을 미워도 해봤다.


그러나 세상에 자기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는 것 만큼 슬픈 일은 없다. 어느 날 깨닫고 난 뒤론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이해라도 해주고 싶어졌다.


세상에 나조차 내편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내편이 되어줄까?


그리고 이렇게 일생을 살아간다면 1호 다음으로 이어질 2호,3호..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게 될까.


수년간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으나, 어쩌다보니 환우 중 1호의 위치가 되어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님들에게 있어 과거야 어떻든 적어도 다른 이들이 보는 지금의 내 모습은 나쁘지 않기에 적어도 이만큼만 무사히 자라기 바란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내가 자랄 때 없었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소통하는 세상이 되었고, 여러 환경적 여건도 좋아졌다. 의료적인 부분도 조금은 더 나아졌기에 이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기를 나 역시도 바란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님들의 걱정되는 마음을 이젠 너무나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의 위치에서 해줄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국가에서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병명의 인정도 못 받아 관련 단체로 알아보러 다닌 적도 있고 청원도 해보고 전수조사를 한다기에 참여도 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늘 사각지대에 있어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아 어렵다는 답변만을 받았었다.


다른 환아들 어머님 몇 분과 여러번 그런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 겪으며 속이 상하기도 하고 그도 점차 지쳐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포기하게 되었다.


국가에서 인정을 하기 위한 과정에 얽혀있는 여러 시스템과 관련 부처, 복잡한 이해관계. 의료진들이 여러모로 해당 질환에 대해 정말 필요한 상황임을 매번 어필했지만 번번히 잘 진행이 되지 않았다. 환자의 숫자가 적어 문제, 진단명이 꼬여 문제, 참 갈 길이 멀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던 개인의 희생과 시간적, 체력적, 물리적 한계가 존재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떠한 경계선이 존재함으로 눈에 보였다.


그러나 점점 늘어가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누나, 언니이던 내가 누나이모 같은 호칭으로 변해갔다. 아무도 말하지 않음에도 작은 책임감이란 짐이 어깨에 얹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이 큰 숙제를 풀어가능 것이 남은 삶에서 이루어나가야 할 일은 아닐까.


병조차 인지도가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 우리의 질환은 늘 생소하고 가족조차 이해가 어려운 질환 중에 하나였다. 시간이 가면서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점차 익숙해져 갈 뿐.


많은 것이 발전하고 있으나 유독 의료. 그 중에서도 선천적인 질환이 많은 소아의 연구는 지원도 부족하고 인력이나 현실적으로 환경적인 여건과 많은 어려움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질환 특성들마저 더해 발전이 더딘 상태이다.


진단은 빨라졌지만 치료법에는 큰 발전이 없었다. 간신히 유지를 최선으로 해야 하다보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늘 선생님들께 '왜 제가 어릴때나 지금이나 치료 방법의 발전이 없나'에 투정과 한탄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하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님들이 내게 그 말씀을 하시는걸 들으며 선생님들처럼 곤란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왕 사는 것. 아픈 아이로 살며 신체적으론 어쩔 수 없다해도 마음과 사회적인 안녕으로라도 건강히 자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거쳐간 어려움이 아이들에겐 조금쯤 덜 어렵게 지나가길 바라게 되었다. 그에 대한 마음은 학생인 아이들에게 건네는 잔소리와 조언으로 건네어진다.

특히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찾되 못 찾더라도 좋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만나면 꼭 하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말리면 어떡하지? 건강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 가득하게 묻는 말은 나의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여 과거의 녕이담과 아이들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말자. 해보고 그만두면 아쉬움은 없을거고 혹시 알아? 걱정했는데 막상 또 어떻게든 될지?어차피 건강문제로 안 아프고, 중간에 입원 생활 없이 매일 출근하는 것은 어려울거야. 하지만 세상의 발전이 너희에게 있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에서 한 사람으로 살게끔 해줄거야. 어디든 네 한 자리가 없겠어?'


각자의 길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 나도, 그들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모든것을 내던질 수 있는 일을 만난다면 꼭 해보길 권하던 마음과 말은 과거의 녕이담에게 누군가 해주길 바라던 말.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사실 아직 그런 일을 만나지 못했다. 무엇을 하며 행복하고, 즐겁고, 기꺼이 나를 던져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아픈 사람이라는 것과 별개로 한 사람으로는 나름 괜찮은 삶.

자신이 겪었기에 아픈이의 마음을 알고 여러 이들의 배려받은 만큼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따스함과 능력으로 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


어쩌면 내가 가야할 방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창한 꿈을 가져서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도 아니다.


지금도 끈임없이 길을 헤매는 매일 속에서 혼란한 마음으로 버텨가더라도 조금쯤 의미를 가진 이가 되고 싶은 욕심.

삶의 이유를 보태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무도 모를 마음. 보답을 기대하기도 어렵겠으나 나와 너희에게 따스한 힘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