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21)

by 녕이담

누군가가 세상에 있던 없던 간에 시간은 무심히 잘도 흘렀다.


나풀나풀 지는 가을 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분명 엊그제가 봄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건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거의 두 달에 한번 입원을 이어가고 있었고, 매번 반복되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지겹다고 느꼈다.


나는 왜 살아 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늘 허약함을 달고 살면서 몇 번의 큰 고비가 있어도 또 넘어가고, 넘어가면서 30년을 넘게 살아왔다.


엄마도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몇 번이고 숨이 꼴딱 넘어가도 잘만 살아있다며 한숨 섞인 말을 하곤 했다.


내 주변의 흔적들은 이렇듯 쉽사리 옅어져 버리는데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인지 순수한 호기심이 들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말이다.


매일의 의미를 찾다가 언젠가부터 삶의 의미가 상실 된 나날 속에서 매일 버텨냈다. 그런 삶도 어느 순간 자꾸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버티는 거지?

나는 '무엇을 위해' 버티는 거지?

나는 '무엇을 바라는 거지?'


삶의 목표. 이루고자 하는 것. 꿈. 미래. 도착점.


계속 찾았으나 또한 찾지 못하고 있는 것.


친구들이 말하는 결혼,임신,출산,육아,내 집 마련의 목표는 내게 있어서 원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단 한 순간도 바라지 않았고, 그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 한 사람으로 온전하고 충분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아픈 녕이담, 환자 녕이담이 아니라 그냥 녕이담.

그런 마음도 욕심이었던 것일까?


작년 24년 11월 생일이었던 날.

계속 컨디션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전날 딸의 미역국을 끓여주며 이거라도 먹으라는 말에 겨우 한 술을 떴다.


홀로 남은 집에서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상태가 오후부터 급격한 복통과 토혈이 시작되어 내 손으로 119를 타고 집 근처 병원으로 가서 1박을 보냈다.


다음 날 다니던 병원으로 옮겨가고 나서도 극심한 복통에 밤낮으로 며칠을 덜덜 떨면서 '아, 이번엔 뭔가 잘못 됐구나' 차라리 '이대로 삶을 끝낼 수 있다면 좋겠다' 간절히 바라며 오랜만에 온갖 신을 찾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신은 내가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주말로 넘어가는 새벽 2시.

'수술 해주세요' 이를 악물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마침 어릴때부터 나를 보신 외과 교수님께서 당직이라 급히 콜을 넣어 응급으로 검사 후 해도 뜨기 전 6시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응급 수술로 안에서 돌돌 꼬여들어 괴사 직전인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며 나는 또 생명을 연명하게 되었다.

복부에 장루라는 작은 꼬리를 단채로.


마약성 진통제조차 전혀 들지 않는 복통을 5일간 견뎌내고 중환자실까지 갈 위기도 넘겼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0.5이하가 정상인 염증수치는 거의 40에 가까운 숫자를 찍어주었고 몸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한 며칠간 맞은 수액은 부종으로 넘어가 폐와 온갖 장기에 저의 존재감을 나타내어 나의 숨을 조여왔다.


수술로 끝난 것이 아니라 2차적 문제로 인해 시술과 검사를 하러거의 열흘간은 침대 이송카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다.


누군가의 부축이 없이는 일어날 수 없고 자세를 바꾸려 해도 몸통에 화살이 날아와 꽂히는 통증에 비명이 절로 나왔다.

덕분에 매번 선생님들 두 세명이 곁에서 도와주셔야 했다.


하루 온종일 펄펄 끓는 열까지 더해졌지만 그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조금씩 견디는 법을 터득했다.


어릴 때보다 확연히 더뎌진 회복을 보고 느끼면서 스스로의 한계로 인해 망연해졌다. 나이대별로 수술을 할 때마다 점점 더 어려운 난코스로 가는 것에 절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나의 삶이 끝난다면 어떨까.


아무것도 남지 못한 나의 삶의 마지막에서 끝내 이 두 눈을 감을 수 있을까.

불 꺼진 병실에서 부대끼는 몸에 통 잠을 이루지 못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목숨의 이번에도 연명하게 된 나의 삶이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선 달갑지 않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잘 살아 가겠다는 다짐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늘 시험대에 오른 채로 살아가 이번엔 어떻게 버틸래?하고 인내심을 평가 받는 듯했다.


나아가려는 마음은 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늘 그 방향을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어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녕이담이 이야기하는 자신의 삶에서 '질환'은 뗄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친구이자 반려의 대상이다.


우리의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질환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이 삶 속에서 꽤 많으며 각자의 위치에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하려 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매번 잊을만하면 생사고락의 위기를 넘기고도 또 다시 웃는다.

그렇게 다시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 간에 다시 딛고 일어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어느 날 만나게 된다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영양을 보충하며 일상 생활을 하는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


조금쯤 나의 삶과 가족의 안녕이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고. 필자와 비슷한 경우라면 조금의 유대로 세상의 연결고리가 되어 위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삶은 무엇을 해도 괜찮은 삶이라는 응원을 담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