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 (23)

by 녕이담

녕이담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있다.


네임드 환자, 시조새 환자, 선구자, 언니, 이모누나, 등등

한 병원을 오래 다니다보면 아는 얼굴들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누군가는 여기저기 인사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녕이담은 파워 E구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그 속을 어찌 알랴.


원래 나란 사람은 어린이일 때부터 사회 생활 부족의 영향+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부끄럼도 많은 아이라 나서는 것을 상당히 싫어했다.

그나마 성인이 되고 페르소나의 가면을 쓰는 법을 터득했지만 여전히 주목 받는 것을 싫어해 사람이 많은 곳에서 뭔가를 하는 것을 끔찍해한다.


그래도 직업을 가지게 되자 이름 뒤에 붙는 '환자'로서의 호칭이 아닌 사회에서 가지게 된 새로운 호칭으로 난생 처음으로 환자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자아를 가지게 수 잇었다.


처음에는 그 과정에서도 상당한 혼란이 일었다.

너무 오랜시간을 지나오는 동안 환자로서만 지내다 보니 피부에 새겨둔 타투마냥 지워지지도 않고 떨어지게 할 수도 없어 원래 내 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 혹은 낙인처럼 자아의 분리가 아주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누구지?


학생의 자아도 없었고, 청년의 자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 갓 태어난 기린처럼 파들거리는 이 어른이에게 깊은 답답함이 올라왔다.


도대체 이 사춘기는 언제 끝나려나. 어른이는 언제 온전한 어른이 될까.


여지껏 아픈 매를 잔뜩 맞고 맷집이 강해진 줄 알았다. 그러나 식사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인 것처럼 맷집도 이 맷집 저 맷집이 다양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1년, 2년… 점점 흐르는 시간에 파들거리던 연약한 아기 기린의 다리는 조금은 덜 흔들리고 잠시간은 버티고 서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몇 번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이번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한 번씩 찾아왔었음에도 감사하게 5년이 넘도록 근근히 어찌저찌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나를 지켜보며 '아픈 사람도 저렇게 일을 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말했다.


'난 네가 한 달도 못 넘길줄 알았어'


그 말을 들으며 무슨 감정이 들기보다 '아, 저렇게들 생각 하는구나..' 그런 짧은 감상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는데 타인이 날 믿어주길 바라는건 어불성설이 아닌가?혼자 자문자답하고 납득하다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나를 믿어 주었던가?


작은 의문이 살랑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신뢰가 없었다는게 자신에게 왜그리 미안하던지. 누군가에게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동안 정작 자신에게는 어떤 호칭과 정체성을 부여한 적이 있던가.


나의 외로움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결여됨에 이리저리 뻗는 발은 대체 어디로 가는가 흐릿하기만 하다.


그 흐릿하고 희미함 속에서라도 부여받은 호칭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고민이 되어 언젠가부터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삶의 지탱의 이유로 작은 정체성 형성을 이루게 되었다.


여전히 매일 매일 존재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에 작은 정체성은 구름에 가린 달처럼 금세 흐릿해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때도 많지만. 내가 나를 잃지 않고자 애쓴다면 어떤 호칭으로 불리던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라고 믿어보려 한다.


브런치 작가이자 글을 쓰는 녕이담의 정체성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잘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읽어주는 분들도 나와 함께 자신의 정체성과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