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 (2)
태어나자마자부터 다니게 된 서울의 대학병원.
그곳에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수술을 했다.
보통 사람은 일생에 칼 한번 대는 일이라야 기껏 쌍꺼풀 수술이나 성형 수술, 라식과 라섹 수술이다.
그조차도 수술이라 한 사람의 인생에선 나름 무섭고 큰 이벤트인 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배는 기억도 안나는 서너 살 때부터 수술로 가로로 길게 찢은 상처가 두 개나 자리하고 있다. 쇄골 부분에도 여러 차례의 중심정맥관 수술로 5cm정도의 흉터가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지금이야 그런 것들을 왜 했었는지 알수 있고 이론적으로도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엄마랑 목욕탕에 가는 걸 좋아했었는데 어느 날 나의 배에 그어진 이 칼자국들이 다른 사람에겐 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후로 지우고, 감추고 싶은 욕구가 때때로 치밀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누군가를 마주칠까 두려웠고, 때때로 어른들이 나의 배를 보고 쯧쯧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는 것을 보며 점차 목욕탕을 가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는 그간 쌓아두었던 감정들을 많이 내려놓기도 하고, 이전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아주 조금쯤은 덜 의식하게 되었지만. 어릴 때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왜 그리도 못 견디게 싫었었는지 모르겠다.
특히 또래들과 있을 때 학교에서는 같이 먹지 못하는 급식.
그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일렀던 하교 시간.
학교가 끝나고 하교 길에 친구들이 달려가던 분식집과 불량식품이 왜 그렇게도 부럽고 간절하였던지.
몸이 약해 참여가 어려워 6년간 한 번도 나가지 못했던 체육 대회의 계주 달리기 행사를 볼 때면 마치 그들의 속도가 나는 절대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만 보였다.
그 6년이 지나 중학교에 갈 때가 되었지만 입학도 하기 전에 퇴학 신청을 먼저 하게 되었다.
당시 부모님은 내 위의 형제를 키우며 매 과목마다 바뀌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초등학생 때처럼 다니기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고, 갑자기 하릴없는 학생 아닌 학생이 된14살의 나.
비행 청소년도 아닌데 어쩐지 학교에 가지 않는 수상한 아이가 되어 버렸고, 꼭 해를 피해 다니는 박쥐처럼 집에 갇혀 있는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그때 우리 집은 사면초가의 상태였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를 맞고, 엄마는 이리저리 지인들에게 생활비와 자식의 학비를 빌렸으며, 내 형제도 집의 분위기에 부담감을 안고서 마지못해 학교를 다녔다.
지옥 같던 집안의 암울한 분위기에 근근이 버텨오던 몸마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모든 나쁜 일이 시작된 것 같다.
6년정도 가지 않았던 병원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며 입퇴원을 반복하게 되었고, 16살 부턴 아예 긴 병원 생활로 이어지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벌어져 있던 친구들과의 관계와 진로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져버렸다.
어느 순간 나 따위는 감히 따라가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마음의 거리도 더 벌어졌다.
그때는 남들을 속도가 나의 눈에는 미처 보이지도 않는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만 느껴져 출발 지점까지도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다움이 없이 휩쓸리기만 했던 그 때의 그 시기로 지금의 내가 간다고 한들, 과연 달라지는 것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