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4)

by 녕이담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

여름의 습도가 깃든 날씨가 찾아오는 이맘때가 되면, 슬며시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스무 살 여름, 처음으로 장례식장을 가게 되었던 그날.


생(生)의 첫 이별(死)을 목도한 날.


코로나나 메르스가 오기 훨씬 더 이전.


같은 병실이 아니어도 오랜 기간을 병원에 머물러 있는 이들은 마치 이웃 마을 주민처럼 서로 친해져서 같이 밥도 먹고 잘 어울려 놀기도 했었다.


당시 10대 후반의 내 나이에는 동갑인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한 두 살, 많게는 서너 살 차이의 또래들이 함께 모여서 놀고 했었다.


지루한 병원 생활 속에서 그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고 지금까지도 생각할 만큼 소중했던 나날들.


어느 날, 우리 또래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가지고 있던 질환으로 인해 상태가 나빠지면서 급작스레 중환자실에 가게 되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런 일들을 반복하는 것을 봐왔음에도 친분을 나누던 이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은 처음이라 적지 않게 충격받고 당황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병실로 올라올 거라고 믿었다.

주변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의사 선생님들도 그럴 거라 해주셨기에 그저 어서 나아지기를 바라며 작은 기도를 하며, 가끔 잘 지낸다는 얘기정도는 전해 들었다.


점점 중환자실 체류 시간이 길어지게 되자 주치의 선생님들의 허락을 받고 두어 번 정도 면회를 다녀왔었는데 그중 한 번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벌써 몇 달이 지나 여름이 된 시점이었다.


곧 병실로 올 거라 들었음에도 잘 지내는지 궁금해져 면회를 갔는데 그에게 내가 알던 모습이 없어져 있었다. 새까만 동공이 빛을 잃은 채로 침상에 앉아 있던 뼈만 남은 모습.


심장이 덜컥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조심스레 눈을 마주했다.


한 때는 빛나던 눈빛을 잃고,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인지가 되지 않는 섬망이 찾아왔었던 것 같다.

너무나도 왜소해지고 작아진 모습으로 '중환자'의 모습으로 침상에 앉아 있던 것이었다.


무슨 말을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단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아, 저게 바로 죽음에 가까워진 모습인가?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누군가의 앞에 있게 될까?


분명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으나

내가 느꼈던 그의 모습에서는 어쩐지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어서 내가 들었던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전문가들이 한 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불안함을 애써 외면하고 나오며 눌러두었다.


며칠이 지나 비가 내리던 주말, 소아중환자실 CPR 방송이 울렸을 때, 참 이상하게도 누구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귓가에서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그날.


그는 하늘로 가버렸고, 그의 육신이 있는 장례식장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던 비가 오던 여름.

축축하고, 눅눅하고, 음습하던 그 길을 걸으면서 코앞의 장례식장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제대로 옷도 못 갖춰 입고, 장례식장 예의도 잘 몰라 서투르게 옆에서 알려주시는 대로 꽃을 놓고, 인사를 하려 바라본 영정사진.


종교에서 받은 천사의 이름을 단채 웃고 있는 겨우 스물 중반의 청년의 모습.

그를 보며 무엇을 느껴야 할지 황망하게 느껴져 오히려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서 목도한 첫 생사의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더 이상은 다가오는 계절을 맞이할 수 없고, 내리는 비도 맞지 않은 채, 가까운 이들도 볼 수 없이 맞이한

너무 어리고 짧은 생을 마감한 이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생을 살아가야 할까?


아무리 물어도 누군가가 답을 해줄 리 없지만.

그때 이후로 끊임없이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그날의 여름부터 시작된 그 물음은 약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줄곧 내 안에서 존재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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