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속도로

오늘도 나답게 살아가기(5)

by 녕이담

나에게는 삶의 작은 루틴이 있다.


그 루틴의 중심은 바로 커피 한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기 위해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펄펄 끓는 물로 컵을 한번 데우고, 컵에 걸쳐둔 드립백 커피를 천천히 내린다.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는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것은 정성껏 내려 유독 맛있는 한 모금을 마실 때마다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내린 커피 한 잔은 어느새 나의 하루에서 없으면 안 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작 언제부터 이 커피 한잔이 일상이 되었는지, 언제 어디서부터 자리 잡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

커피를 마시기 전 한동안은 허브티를 많이 마셨었었다.

그 계기는 옛 주치의 중 한 분이셨던 선생님께서 사주셨던 한 잔의 허브티.

캐모마일 차 한잔이었다.


그때 그 맹숭맹숭하면서도 어딘가 은은히 올라오는 단맛.

처음엔 이게 무슨 맛인가 하였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속도 편안해지는 따스한 차가 마음에 들어 그 이후 종종 찾는 친구가 되었는데 이는 커피의 시작을 잊은 것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평생 잊지 않게 된 하나의 기억이 되었다.


내 기억에는 음료를 마시는 일이 지금만큼의 일상화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도 당시 병원에서 금식을 반복하고 있었던 시기였던 지라 더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긴 병원 생활에 만났던 좋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차와 커피 한잔.

그 음료의 맛을 알아가게 되면서 몰랐었던 나의 취향을 점차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의 열 여덟, 열 아홉, 스무 살 즈음의 친구들을 보면서 그때의 내가 얼마나 어렸던가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


그 어린 친구에게 쥐어 주던 한 잔의 음료 안에는 작은 애정과 관심, 응원이 담겨있었다. 취향이 되고 어느덧 나의 삶에 자리잡은 차와 커피의 맛 안에는 지난 인연들이 담겨 있다.


나중에는 생존형으로 대부분 커피만을 마시게 되어 오로지 아메리카노만 줄구장창 마시는 사람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 똑같은 줄 알았던 까만 물의 아메리카노 한 잔 안에 뜨거운가, 차가운가, 어디에서 마시는가에 따라 그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두를 직접 사서 갈아 먹거나 드립백 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더 다채로워진 커피의 세상.
그 뒤로 나에게 새로운 카페에서 찾은 맛있는 커피 한잔은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큰 힐링이자 보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늘 종종거리며 급한 마음도 잠시 억누를 수 있는 시간.


지극한 커피 사랑에 훗날 커피 머신 한 대를 선물 받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병실 한구석에서 커피 한잔을 내리는 희한한 여자가 되었다. 나중에 내가 내밀던 커피 한잔이 또 다른 에피소드가 되어있었던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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