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다 보니까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들이 참 고마워. 우리가 학생도 아니고 굳이 나랑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는데 말이지. 더군다나 나는 혼자 살고 있어서 굳이 사람들을 만나러 밖에 나가지 않으면 하루도 말을 안 할 때가 있어. 그래도 별로 외롭지는 않더라고. 그냥 이렇게 사는 데 무뎌진 건지 아니면 그냥 성격이 원래 이런 건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가끔 참 허전할 때가 있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갑자기 나를 찾아왔던 사람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서 당황스러운 거 있지.
언제 한 번 사촌동생이 여행한다고 우리 집에 한 열흘 정도 있다가 갔어. 혼자 살다 누가 오니까 좋으면서도 오랫동안 같은 공간을 쓴다는 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조금 불편하더라고. 그러다가 사촌동생이 갔는데 갑자기 몇 평도 안 되는 내 방이 너무 휑하게 느껴지는 거야. 괜히 막 어디쯤 갔나, 연락은 안 왔나 하면서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마음이 너무 허전해서 누구한테라도 말을 걸고 싶더라고. 그리고 한 12시간인가 있다가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오는데 그냥 너무 슬픈 거 있지. 영화에 나오는 쓸쓸한 뒷모습이 내 모습인 것 같고.
나는 외로움을 안 타는 성격인 데도 이러는 걸 보면 누군가의 ‘난 자리’는 참 메우기가 힘든 것 같아.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지나쳐 가려고 해도 무시가 안 되더라고. 그 자리에서 오는 씁쓸함과 쓸쓸함이 너무 커서 가끔은 누가 날 찾아오는 게 싫어. 근데 이별이 두렵다고 사람을 안 만날 건 아니잖아… 그래서 늘 마음을 비우고 살아.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너무 기쁘지 않게, 너무 슬프지 않게. 마음의 평형 상태를 늘 유지하는 거지. 생각은 많이 하지 않고 그냥 오늘 하루도 잘 지나갔다 이런 마음으로.
너희들은 어때? 누군가의 난 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니?
외로움에 대해
쿙가
이번 글로 나는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그리고 네가 계속 그 사람을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도착한 연락에 슬퍼했다는 게 어떤 심정일지 나도 쉽게 그려볼 수 있어서 공감이 갔어.
난생처음 느껴본 난 자리는 딱 20살 때였던 것 같아. 모부님이 차로 내 대학교 기숙사에 데려다주었고, 짐을 날라줬고, 같이 기숙사와 그 주변을 둘러봤어. 그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었어서 멀쩡히 엄마 아빠를 배웅하고 혼자 기숙사 건물에 들어왔어. 그리고 창문으로 엄마 아빠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숨이 턱 막히는 거야. 어, 이게 아닌데, 이게 뭐지 싶더라.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공허했는데 엄마 아빠랑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기숙사 방이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지더라. 그게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외로움이었어.이 이후로 몇 년간은 외롭고 뭔가 충족되지 않은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아.
그런데 언제부턴가외로운 감정이 더 이상 사무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가면, 가나보다, 어련히 잘 가겠지, 한동안 나도 덕분에 즐거웠다, 정도까지만 생각하고 바로 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어. 내가 대체 언제부터 난 자리를 느끼지 않게 된 걸까 생각해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고 나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친구가 플렛 메이트로 들어온 다음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이직한다고 난리 치면서 친구들이랑 면접 준비를 하면서부터인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간 한국에서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온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글쓰기 모임 덕분인 것 같기도 해.
어쨌든, 난 자리를 느끼는 건,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융진’s 난 자리
숨숨
융진의 이야기가 너무나 공감이 돼. 한국에서도 자취를 해봤지만, 정말 외국에서 혼자 사는 건 또 다른 이야기더라고. 나도 작년 여름에 미국에 오자마자 동생이 같이 이사도 도와주고, 여행도 하면서 10일 정도를 같이 있었어. 그런데 동생이 떠나는 날 아침에 집 앞에서 우버를 태워서 공항으로 보내는데 갑자기 확 외로워지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거야. 평소에는 만나기만 하면 자주 싸우고 갈 때도 쿨하게 손 한 번 흔들어주면 끝이었는데, 동생 앞에서 괜히 눈물 보이기 싫어서 후딱 집으로 집으로 들어와서 공허함에 한 30분은 울었던 거 같아. 이 먼 낯선 땅에서 이제는 진짜 혼자 버텨나가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 때문에 동생이 떠난 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던 거 같아.
나도 융진이처럼 혼자 사니까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 진짜 말 한마디 안 할 때가 너무 많은데,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외롭다는 생각도 무뎌지고 뭐, 난 혼자서도 잘 사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가끔 누가 찾아왔다가 가면 정말 거짓말처럼 잊고 있었던 공허함과 외로움이 몰려오더라고. 특히 가족일 경우에는 유독 더 크게 느껴지더라. 나도 그래서 융진이 말한 것처럼 오히려 누가 찾아오는 게 싫을 때도 있다는 게 너무 공감이 돼. 만나면 너무 즐겁고 좋은데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다음에 내가 감당해야 할 감정의 무게라고 해야 할까, 그 공허함을 느끼는 단계를 또 겪는 게 싫더라고.
항상 마음을 비우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너무 대단하다. 난 그렇게 하려고 해도 워낙 감정 롤러코스터를 심하게 타서, 우울하고 외로울 땐 한 번 바닥을 찍어야 차라리 속 편하더라고. 오히려 내 감정을 외면하는 게 더 힘들어서 그냥 내 감정의 회로를 따라가는 거 같아. 나중에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데, 이것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지, 어른되는 건 참 힘들구나 생각하면서 살아가니까 감정 또한 내가 잘 컨트롤해야 할 인생의 큰 숙제라고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난 누가 이제 놀러 오면 그냥 그 순간은 정말 즐겁게 즐기고, 다음에 몰려오는 외로움은 또 느껴지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 매번 적응 안 되지만 이게 또 해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해. 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항상 힘든 일이지만, 헤어짐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지는 거 같아. 해외에 있다 보니까 찾아와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더라고. 외국에서 혼자 사는 이상 난 자리가 남긴 공허함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