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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Apr 23. 2022

웃긴 이야기 하나씩 하자


<목차>

내가 보기엔 다 오바스러워 by 숨숨
이유우웅진? by 융진
여름이 오면 by 쿙가




내가 보기엔 다 오바스러워 ;)


숨숨

내 선입견이 깨진 한 에피소드가 있어. 미국에서 처음 학교를 다니는 나에겐 미국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미디어에서 본 그대로인 줄 알았거든. 예를 들면, 미국 사람들 대부분은 다 활발하고, 리액션도 엄청 크고,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본인 의견을 다 말하고 그러는 줄 알았어. 한국이랑은 정반대로 말이야. 물론 한국이랑 분위기가 다른 건 맞긴한데 얘네도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눈치’라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 첫 학기 경제학 수업에서 항상 맨 앞 줄에 앉는 한 백인 학생이 있었어. 수업 중간에 혼자 갑자기 엄청 큰 소리로 리액션을 한다든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칠판으로 나가서 그래프가 이상한 것 같다면서 얘기를 한다든지, 거리낌 없이 본인 의견을 표출하는 학생이었어. 한국인 시선에서 보면 되게 특이하고 우리나라 정서에 안 맞는 사람인데, 미국인들한테는 용납되는 줄 알았다? 왜냐면 저러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도 ‘정도’라는 게 있더라. 내 주변에 앉은 학생들 모두가 경악하면서 쟤 왜 저러는 거냐 이러는 거야. 난 ‘미국에서 저런 건 다 이해되는 거 아니었나?’ 싶어서 옆자리 친구한테 ‘미국인들 거의 다 저러는 거 아냐?’라고 물어봤는데, 나보고 ‘너 수업 시간에 쟤 같은 애 본 적 있어?’라고 묻더라고? 너무 오바한다면서. 아니 난 미국 사람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오바하는데 최강이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그게 정도라는 게 있긴 한가 봐. 어느 정도 오바해야 얘네들한테 적당한 걸까. 난 그냥 수업시간에 큰 소리로 얘기하는 애들을 너무 많이 봐서 나한테는 그냥 다 오바스럽다. 물론 내 기준에서 말이야.





이유우웅진?    


융진

외국에 살다 보면 일상생활에서 아주 빈번하게 겪는 웃픈 이야기가 있다. 바로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건 본인의 나라를 벗어나는 순간 겪게 되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외국에 오래 살면 살고 있는 그 나라에 어느 정도 동질감을 갖게 되는데, 가끔 이름과 같은 사소한 일들이 일어나면 늘 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이 나라 말을 잘 못하니 이름이 불리는 것에 신경을 많이 곤두세웠었다. 지금도 가끔 이름이 불릴 때 조마조마하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러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얘기할 날이 오다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이름에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바로 독일에 처음 와서 어학원을 다닐 때다. 그 당시 나는 몇몇의 선생님들을 거쳐 한 선생님 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파트리샤라는 선생님이었는데, 독일어 선생님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어에는 거리를 많이 두고 독일어만을 고집하는 선생님이셨다. 당시 나는 딱히 외국에서 불리는 이름이라고 할 게 없어서 본명으로 소개하곤 했었다. 처음에 선생님이 내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한 일주일이 지났을까, 선생님이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또 물어보기 민망했는지 늘 나를 “그 뒤, 그다음, 다음 사람, 그 옆에, 그래 너” 이렇게 부르곤 했다. 나도 가서 선생님에게 이름을 다시 알려주는 게 너무 민망하고 미안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상태를 한 달 정도 방치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내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게 참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선생님이 나를 ‘융진’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알게 된 독일인들은 대부분 내 이름을 제대로 불렀는데 오로지 그 선생님만 내 이름의 H를 묵음으로 처리했다. 사실 처음에는 내 이름이 융진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는 게 싫었는데 지금은 좋다. 이름으로 한 번 사람들을 웃길 수 있기 때문이고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기 때문이다. 융진이라는 이름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그다음에 할 얘기는 학교 친구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인들이 내 이름의 첫 번째 철자를 (성 빼고)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애초에 두 번째 철자로만 (외자로) 나를 소개했다. 6학기의 어느 날, 첫 학기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말을 건넸다.

“신! 근데 너 이름 앞에 H로 시작하는 건 뭐야? 너 이름 ‘신’ 아니었어?”

이것은 정말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물론 내가 나를 신이라고 소개하긴 했어도 내 전체 이름을 보고서도 그게 뭐냐고 물어볼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친구는 실험을 위한 조 편성에 있는 내 이름을 보고 이게 본인이 아는 ‘나’ 일지 한참을 고민했다고 했다. 성이 ‘킴’인 사람이 본인이 아는 사람 중에 나 밖에 없었음에도 혼란스러웠다며 말이다.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정말 많았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굉장히 웃겼었다. 이후로 알고 보니 내 이름이 신이라고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내 절친의 아버지까지도 나의 본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그럴 수가” 하며 굉장한 배신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나를 신이라고 불렀을 때 내가 반응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이름처럼 생각되지 않고 가끔 본래의 이름보다도 더 진짜 이름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거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외국에 살면서 나를 부르는 이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새삼 독일에 온 지 이렇게 됐나 하며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된다.





여름이 오면


쿙가

독일은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공원에 잔뜩 나와서 햇빛을 쐰다. 날씨가 좋은 날이 흔치 않기 때문에 해가 비치는 날이 너무 소중하다. 평소 흐린 날에는 길거리와 공원에 사람들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러운데 이런 날만 되면 다들 웃옷을 벗어제끼고 일광욕을 한다.


해만 뜨면 이 도시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온갖 거리가 붐빈다. 다들 어디에 그렇게들 숨어있었나 싶을 만큼 하나 둘 나타나는 모습이 신기하고 웃기기도 했다. 한국은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밤거리를 잘 돌아다니는데 독일인들은 보통 집 안에 꽁꽁 숨어버리는 편이다. 이 모습이 꼭 해만 뜨면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는 좀비가 생각난다. 해가 뜨면 독일인들은 나타나고 좀비는 사라지고.


요즘 독일은 날씨가 굉장히 좋다. 겨울 가고 봄이 오는 느낌이 난다. 한바탕 태풍도 지나갔고 지칠 줄 모르던 비도 멈췄다. 앞으로 8월까지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밖에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시기의 독일인들이 정말 좋다. 겨울에는 암울한 표정만 짓던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핵인싸가 되어 돌아다닌다. 손에는 맥주 한 다발씩 들고 햇볕 좋은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들, 스피커로 힙합을 틀어놓고 스스로의 힙함에 취해 있는 학생들, 선글라스를 끼고 가만히 누워서 정말 말 그대로 sonnenbaden(햇빛 목욕)하는 사람들, 젤라또 아이스크림이나 와인잔 들고 웃고 있는 사람들.


여름날 독일은 공원에 앉아서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도 날씨가 좋으면 늘 공원에 간다. 술만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서 맥주 대신 라들러(맥주와 레몬에이드 혼합음료)나 아펠숄레(사과맛 탄산음료)를 챙긴다. 문제는 독일 공원에는 공공 화장실이 딱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서 일부러 조금만 마셨다. 독일인들은 맥주를 위해 방광마저 크게 키운 걸까? 대체 맥주를 고래처럼 마셔대는 독일인들은 어쩌려고 화장실 없는 공원에서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마셔대는 걸까?


독일에 있는 공원에 간다면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다. 특히 혼자서 으슥한 숲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난 처음에 어떤 사람이 두리번거리면서 길이 아닌 곳으로 슥 들어가길래 굉장히 의아했던 적이 있다. 한번 궁금해하니 공원에 갈 때마다 그런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원에 화장실이 없으니까 다들 그렇게 노상방뇨를 하러 사라지는 거였다.


이제는 나도 자신감 넘치게 화장실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공원에서 잔뜩 먹고 마신다. 독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원에서 하는 노상방뇨 쯤이야 맥주 뒤에 슬그머니 따라오는 여름의 일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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