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쿙가 Mar 01. 2022

시(詩) 쓰기

숨폐소생술 세 번째 : 융진이 쏘아 올린 작은 똥

융진

김용택 시인의 “어느 날”이라는 시가 있다. 시인은 “나의 시는 어느 날의 일이고 어느 날에 썼다”하며 시를 끝맺는다. 덤덤히 얘기하는 그 구절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건 아마도 어떠한 날도 함부로 지나칠 수 없었던 시인의 마음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찰나에 스치는 강렬한 생각들은 시인들에 의해 담금질되어 비로소 시에 담긴다. 시들은 그 잠깐의 순간에 존재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 순간들은 또렷이 인지하기 전에 흩어지기도 하고, 앞으로 걸어 나갈 방향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렇다. 점을 이어 붙여 하나의 선을 만들 듯, 찰나의 순간이 이어져 나를 만들었으니까. 시는 그 순간에 존재한 나를 잊지 않는 기록이기 때문에.   



숨폐소생술 세 번째 _ '외국'을 주제로 시 쓰기


융진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거야. 외국에 살면 가족들도 친구들도 보고 싶을 때 볼 수가 없잖아. 제목을 저렇게 지은 이유는 너무 오글거려서 그런 것도 있고, 점점점으로 표현한 건 그 안에 모든 수식어가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 예를 들면, “나의 좋아하는 사람한테”라던지 “사랑하는”이라던지 “보고 싶은”이라던지 말이야.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아무 말 안 해도 편안하고 옆에서 같이 당연하게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그 얘기가 2절에 들어가. 또 그들도 내가 여기에서 그들을 생각하듯 나를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4절에 그 내용을 썼어. 마지막 절에 감기 들지 말라고 쓴 이유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감기 걸리지 않고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어. 나는 감기에 자주 걸리는데, 나에게 감기 걸리지 말라는 말이 따뜻하게 들리더라고. 나는 이 시를  2019년에 9월 한 가을 저녁에 썼어.




쿙가

보통 통화는 저녁에 많이 하잖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느라 말이야. 한국에서 살 때는 가족이든 친구든 저녁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게 일상이었어. 그런데 독일에 오고 나니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시차 때문에 전화를 걸 수 없는 거야. 내가 퇴근하고 나면 한국에서는 이미 자고 있을 시간이니까.


평일 저녁만 되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떠올랐는데, 혹시라도 잠을 방해할까 봐하고 싶던 이야기를 참았어. 그렇게 참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재미있는 일이 생기면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이 떠오르는 거 있지. 독일 시간에 적응하고 나니 한국 시간은 점점 잊혀지더라.




숨숨


누가 그러더라고? 외국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라고. 미국에 있으면서 주변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시를 써봤어. 아무래도 현지 미국인들보다는 같은 처지에 놓인  외국인 학생들하고 더 가까이 지내게 되는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성인이 돼서 배웠다 보니까 서로 가끔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못할 때가 있잖아. 문화 차이도 있고 사고방식의 차이도 있고 말이야. 불투명한 창이라고 쓴 이유가 서로의 영어가 완벽하지 못하니까 그걸 고려해서 쓴 거야. 그래도 언어 장벽을 뛰어 넘어서 소통하고 유학생으로서의 외로움이라든지 고충이라든지 이해할 수 있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 가끔 드는 생각이긴 한데, 조금 아쉬운 건 다들 유학하러 왔기 때문에 언제 가는 다들 모국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친구 사이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아서 슬프긴 해.




감상평 : 융진이 쏘아 올린 작은 똥


숨숨 - 융진은 나에게 똥을 줬다. 쓰느라 너무 고생했다. 10번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쿙가 - 시가 생각보다 쉽게 잘 써졌다. 그래서 시 얼른 쓰고 그 시간에 프로크리에이터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융진 - 숨숨에게 똥을 줘서 너무 미안하다. 나는 시를 줬을 뿐인데 똥을 준지 잘 모르겠다. 당황했다. 근데 사실 나도 뭐 써야 될지 모르겠어서 삼 년 전 시 갖고 왔다.


숨숨&쿙가 - 융진이 시 써오라고 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안 써오고 옛날 거 우려먹었음 허허.

        




매거진의 이전글 효율적으로 쉬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