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나만 그래?
쿙가
어떻게 얼마나 쉬어야 잘 쉬는 걸까. 나는 쉴 때 마음 편히 못 쉬어. 쉬는 것도 뭔가 알차고 보람차게 쉬어야 될 것만 같은 압박감을 항상 느껴. 자꾸만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내가 게을러진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아. 기분이 안 좋으면 뭔가 다른 할 일을 하면 되는데 그냥 계속 누워있어. 쉬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해. 어쩔 때는 괜히 죄책감까지 느껴져.
가끔 열정이 넘칠 때는 명상을 해. 유튜브에서 영어나 독일어로 영상을 찾아서 들어. 그럼 뭔가 쉬는 것 같은데 명상도 하고 외국어 공부도 하는 기분이 들거든. 근데 가끔씩 그게 진짜 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누워서 웹툰을 봐. 근데 웹툰은 너무 중독성이 강해서 정신 차려보면 오히려 피곤할 정도로 웹툰만 보고 있어. 그럼 이것도 진짜 쉬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내가 생각이 너무 많은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적절한 시간만큼만 쉬는 게 가능한 걸까?
숨폐소생술 두 번째 _ 쿙가에게 내리는 처방전
숨숨
쿙가의 쉬는 방법이 사뭇 내가 쉬는 방법과 닮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밥 먹으면서 유튜브로 영어 공부하거나 쉬고 있을 때도 꼭 책을 읽든지 시사 상식 프로를 본다든지 꼭 무엇인가 배우는 활동을 해야만 알차게 쉬는 것 같았다.
내 주변을 보더라도 퇴근하고 나서도 뭔가를 배우러 다니고 쉬는 날에도 항상 바쁘게 사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삶을 열심히 알차게 사는 건 좋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 치이고 한치의 여유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그런 풍조 때문에 우리가 쉬는 것조차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열심히 사니까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지금 쉬면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혹은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함을 부추김 받아 온 게 아닐까? 나도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머리가 더 아파왔다.
쿙가처럼 열심히 사는 모습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쿙가가 쉴 땐 정말 쉬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죄책감이나 불안함을 느끼는 게 아니고 ‘충전’을 한다는 생각으로 진짜 푹 쉬면 좋겠다. 나에게도 융진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물론 이렇게 얘기해도 나도 가끔은 쉬는 게 불편할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 인생 기니까 쉴 땐 쉬면서 멀리 가자~
P.S. 그런데 나도 생각해보니까 어떻게 쉬어야 제대로 쉬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가족,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가는 게 아니고서야 혼자서는 쉴 때 유튜브나 핸드폰만 보다가 끝나는 거 같다. 내가 핸드폰, 노트북이 없던 시절에는 뭐하고 쉬었나 새삼 궁금해진다. 아 그 시절은 학창 시절이어서 쉬는 게 사치라고 느끼던 시절이었을 수도 있겠다…
융진
우선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매사에 신중하지 못하다.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바로 행동에 옮기며, 또한 생각하는 것을 굉장히 귀찮아한다. 무언가를 실제로 하는 것보다 그전에 생각만 할 때가 제일 신난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가 인생의 모토가 된 듯하다. (이렇게 쓰고 나서 읽어보니 다행히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어서 안도했다.)
그렇다 보니 할 일이 많이 있을 때도 즉시 해결하기보다는 미루고 본다. 지금의 일은 세 시간 뒤의 나에게, 내일의 일은 이틀 뒤의 나에게. 그러면 쉴 시간이 생긴다. 이를테면 시한폭탄을 옆으로 밀어 두고 자고 있는 격이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어느 정도의 불안함을 느끼기도 할 텐데, 나는 정말 마음의 부담이 별로 없다. 누워서 주로 웹소설과 웹툰을 보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실 스트레스 푸는데 굉장한 도움을 준다. 학교 공부나 일을 한두 시간하고 나서 웹툰과 웹소설을 한두 편, 가끔은 두세 시간 동안 읽기도 한다. 이 부분이 쿙가와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쉬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점 말이다. 지금 내가 너무 바쁜 나머지 쉬는 시간이 너무 필요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겐 효율적으로 쉬는 법이란 존재하지 않는 말이다. 앞서 얘기했다시피, 생각을 깊게 안 하기 때문에 쉬면 쉬는 거지 왜 쉬는데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해가 사실 잘 안 간다. 이런 단순한 생각의 구조가 부끄러우면서도, 가끔은 도움이 많이 된다. 나쁜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지 않게 차단시키고 웬만하면 금방 잊게 된다.
내가 보기에 쿙가가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물론 누구를 갖다 붙여도 나보다는 생각이 많겠지만). 아니 쉬는 데 왜 압박감을 느끼는 건가! 그래도 곧 회사에서 다시 일 시작하게 되면 쿙가도 쉬는데 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바쁘게 살다가 때 아닌 기한 없는 무급휴가를 받게 됐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데에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낀 게 아닌가 싶다.
앞서 얘기했던 나의 모토로 돌아가 보자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은 인생을 사는데 굉장히 무책임하게 들린다. 그래도 웬만하면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생각 없이 단순하게 사는 게 편하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대략적으로 미래에 대한 큰 그림만 생각해 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오늘과 내일 할 일만 생각한다. 그러면 하루가 참 빨리 간다.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 늘 적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그 여파로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쉬게 되는 것일지도.
다시, 쿙가
당연히 다들 나처럼 쉴 때 죄짓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줄 알았다. 그래서 융진이 쉬는 시간이 늘 적다고 느꼈었다는 부분에서 조금 놀랐다. 나는 피곤할 때마다 쉬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내 몸뚱이를 안 피곤하게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조급해져서 오히려 번아웃이 자주 오곤 했다.
숨숨의 글에서 공감했던 건 밥 먹으면서도 영어 유튜브를 봐야 할 것 같았다는 부분이었다. 밥 먹으면서는 보고 싶은 걸 보거나 먹는데 집중하면 좋을 텐데 나는 밥 먹으면서까지 조금씩 압박감을 느꼈다. 영어 영상을 보면 이해가 잘 안 가서 답답했고 웹툰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결국 융진과 숨숨이 처방전을 내렸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게 뭐냐는 말에 가장 먼저 영어, 그다음으로 독일어, 글쓰기, 운동… 근데 중국어랑 일본어도… 우쿨렐레, 그림 그리기… 그리고 또….
처방전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공부
영어, 독일어, 글쓰기, 운동 각각 한 시간 씩만
오전에 네 시간하고 나면 오후에는 내내 쉬기
삼일 하고 하루 쉬기
쉬는 날 부담 없이 우쿨렐레랑 그림 연습하기
백수에게 하루 4시간만 생산적으로 살라니 내 마음속에서 죄책감이 또다시 슬금슬금 올라오려고 한다. 나에게 필요한 건 머리를 비우는 힘이라면서 이 열정 넘치는 친구들이 일주일 후에 검사까지 할 거라고 했다. 죄책감, 후회 이런 거 생각도 하지 말고 지나간 것은 잊으라고. 친구들 말대로 생각을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