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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쿙가 Feb 09. 2022

춘천 사람

내가 좋아했던 장소들

독일에서 일하면서 밥 먹고 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다양하게 얽혀있다. 춘천에서 나고 자란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춘천은 산도 많고 물도 맑고 수도와 동해안 중간 지점이라 어디든 놀러 가기 좋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춘천에 남고 싶어 했다. 대학 때문에 타지에 갔더라고 다시 돌아오고 싶었는데 공무원이 아니라면 딱히 일자리가 없었다. 식음료 알바 자리 하나 구하기도 박터졌다. 춘천에 있는 내 친구들은 공무원이거나,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작은 사무실에서 근근이 일하며 고통받거나 셋 중 하나이다. 춘천에 좀 더 일자리가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청평사

봄, 여름, 가을에 춘천에 간다면 꼭 청평사에도 가 보라고 추천한다. 깊은 산 속인데 차 없이도, 아무런 준비 없이 일상복으로 갈 수 있다. 경춘선 춘천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소양강 댐으로 간 다음에, 유람선을 타면 청평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내려준다. 청평사 절이 보일 때까지 계곡을 따라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계곡물이 맑고 유속이 세서 근처에 앉아있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계곡을 더 따라 올라가면 폭포가 나오고, 거기서 더 올라가면 절이 나온다. 뒤에 산을 배경으로 둔 절도 너무 멋있고 절까지 가는 길도 예쁘다. 경비도 많이 들지 않아 멀리서 누군가 찾아오면 항상 안내하는 곳이다.



춘천 명동

서울에만 명동이 있는 게 아니다. 춘천에도 명동이 있고 홍천에도 명동이 있다. 춘천 명동은 관광지로 딱히 볼 건 없다. 별로 멋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중학생 때 친구들이랑 명동에 가서 놀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담터에서 땡밥이라는 치즈 김치볶음밥을 먹고, 그 근처에 빙수집에 가서 앉아 있다가 프리머스 영화관 옆에 있는 곳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갔었다. 15년 전이고 지금은 다 없어졌다. 몇몇 가게는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금요일이면 항상 교실에 모여 앉아 명동에서 무엇을 할지 어디부터 갈지 고민했다. '밥, 빙수, 스티커 사진'은 꼭 일정에 넣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가던 곳으로만 늘 가던 순서대로 갈 거면서 매번 노트에는 새 계획이라면서 적었넣었다. 


주말만 되면 명동 길거리와 지하상가는 항상 학생들로 북적인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명동에 가면 아는 얼굴 한 명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만에 명동에 갔다가 누군가를 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모르는 얼굴들 뿐이었다. 아마 다들 춘천을 떠난 게 아닐까.



지하상가

명동 거리 아래에는 지하상가가 있다. 인터넷 쇼핑을 좋아하지 않아서 춘천에 살 땐 항상 지하상가로 쇼핑을 갔다. 한국 출국 전날 난형이가 손목시계 필요하지 않겠냐면서 지하상가에 데려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며칠 동안 갇혀 지내려면 시간이 계속 바뀔 텐데 기계식 시계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춘천 지하상가는 문을 빨리 닫아서 여덟 시쯤 급히 갔고 결국 손목시계를 육천 원 주고 샀다. 그 후 러시아에서 오스트리아로, 독일로 갈 때까지 이 시계를 쭉 사용했다. 배터리가 닳아서 한동안 보관만 해 뒀는데 이 년만에 지하상가에 가서 배터리를 갈았다. 그 위치는 내가 알기로 10년 넘게 화장품 가게였고 늘 같은 점원이 일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돌아와 보니 없어졌다.



공지천 상상마당

춘천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공지천에 있는 상상마당이다. 처음 가는 사람은 공지천 조각 공원에서 내린 후 지도에 상상마당을 찍고 걸어가면 공지천의 풍경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봄에는 벚꽃이 예쁘고 여름에는 활기 넘쳐서 좋고 가을에는 단풍 물든 산과 물이 너무 잘 어울려서 예쁘다. 가다가 보면 오리보트도 보이고 단체로 카누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상상마당 건물은 예전에 어린이 회관이었다. 어린이날만 되면 그곳에서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인형극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춘천에 돌아와 보니 건물이 다른 용도로 바뀌었다. 상상마당이 들어오고 카페도 생겨 사시사철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층에는 때때로 전시회가 열리고 아래층에는 무료 화장실, 상상마당 상점과 누구든 연주할 수 있도록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다. 햇볕이 좋으면 굳이 카페에 들어가지 않고 강가를 보면서 자주 앉아 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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