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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암 Dec 29. 2024

C49.9 - Myxoid Liposarcoma

Episode 27 | 게워내진 생각과 담겨진 생각들

개워내진 생각들: 처음 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고, 정리 안된 내 안의 혼돈과 불안감에 가슴이 터질것 같았고, 그 롤러코스터 타는 듯한 감정들을 글로 적어 쏟아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서너개의 에피소드를 적다보니,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게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 되었고, 불안했던 나는 빠르게 안정되었다. 글을 잘 쓰려고 힘을 주지 않았고, 생각이 닿는데로 내 감정을 솔직히 적어갔다. 글을 제법 잘 쓴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았으나, 잘쓰고 못쓰고는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다만, 글을 발행하기 전에 서너번 다시 읽고 수정했는데, 주로는 글을 읽는 사람이 부드럽게 읽히는지에 촛점을 두었다. 10여년전 IT 기술서 쓸 때 있었던 습관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쥐어짜지 않아도 꾸준히 투병관련 주제들이 떠올랐고, 1~2주 간격으로 해당 주제에 관해 쓰고 브런치에 발행했다.

우선 특정 주제에 대해 쓰겠다고 마음을 정하면, 관련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하여 나의 글에 살을 붙여 나갔다. 특히나, 나의 병에 대한 주제는 국내외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고 충분히 이해한 다음 글을 써 나갔다. 주로는 인터넷 검색으로 병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특정 영역은 국내자료가 부실하여 외국자료로부터 살을 붙였다. 다행이도, 영어로 된 자료들도 잘 찾고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다.

글을 다 써 놓고, 마지막 단계로 ‘발행’을 하는데, 이 행동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나의 글들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발행 (publish) 함으로써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대중에게 쏟아내는 (flush) 느낌이었다. 마치,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publish와 flush는 발음도 비슷하다.


정서적 안정 > 의학적 지식 > 철학적 질문들: 암을 발견하고 수술하는 초기에는 암에 대한 나의 감정이나 치료 과정 등을 게워냈다면, 항암이나 방사선을 하는 시기에는 의학적인 지식을 기반으로 한 주제들이 많았다. 엔지니어이다 보니 내 몸에 생긴 암과 치료방법들을 깊이 이해해야 직성이 풀렸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암과 그 치료방법을 잘 알게되어, 정서적으로도 좋았고, 암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글로 게워내고 비워진(?) 나의 머리 속에 새로운 질문들이 들어왔는데,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었다.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의 철학적 질문들이 머리속에 가득 들어왔고, 해답을 얻기 위해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나만 이런 과정을 겪는지 다른 암 환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몹시나 찾고 싶었으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답을 찾고자 노력 중이다. 찾아진 해답들이 앞으로의 여러 결정들과 나의 삶을 정의하는 좋은 잣대가 될 것이다.


담겨진 생각들: 철학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할 방법을 찾다보니 독후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부담이 없어지다 보니, 쉽게 독후감을 써내려 갔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적는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그 동안에는 왜 독후감을 부담스럽고 크나 큰 숙제같은 느낌이 들었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요즘은 매일 동네 도서관에 가서 활자중독자 처럼 읽고 쓰기를 매일 반복하고 있다. 계기가 있기도 했다. ‘트레바리’라는 독서클럽 활동을 시작하면서 독후감을 한두편 썼던것이 그 시작이였다.

그 동안은 게워내진 생각들을 블로그 글로 썼다면, 이제는 담겨진 생각들을 글로 써볼 생각이다. 별도의 브런치 메거진을 만들어서, 앞으로는 읽은 책들과 관련된 독후감들을 포스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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