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암에 걸린 뒤로 죽음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러한 이유로 찾아 읽기 시작했다. 막연히 멀었던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죽음이였으나, 나의 죽음이 생각보다 빨리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깨닿고 나서야 죽음을 자세히 알아야 겠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저자는 인간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물리주의 (육체가 죽으면 모두 없다)와 이원주의 (영혼과 육체가 존재한다)가 있고,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으로 물리주의 쪽에 손을 들어준다.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 전에는 막연히 이원주의 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즉, 영혼과 육체는 같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혼이 바뀌거나, 환생을 그리거나, 또는 사후세계를 표현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노출되면서 무의식 중에 이원주의 개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갑자기 애니메이션 ‘Soul’이 생각난다. 다시 챙겨봐야겠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물리주의적인 영화 각본을 본 적이 없다. 대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살핀 각본들이였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나는 죽음에 관해서는 물리주의자이다.
박탈이론 (죽음이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삶의 좋은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 가기 때문)을 설명하는 9장을 읽으면서, 나의 경우 어떤 것들이 박탈 당하면 싫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2가지가 떠올랐는데, 나의 행복과 아내와의 관계이다. (최근에 깨우치게 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알아가게 되면서, 죽음으로 인해 이것들이 박탈당한다면 슬플 것이다. (적고 나니, 복직해서 다시 예전 처럼 바빠지거나, 암의 재발로 인해 건강이 다시 위태로워 진다면, 이 또한 다른 의미의 박탈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아내와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내가 죽는다면 (반대로, 아내가 죽는다면) 너무 슬플 것이다. 아프기 전 (불과 반년 전) 이 책을 읽었더라면, 직업이나 업무적 성취가 큰 박탈이라고 어쩌면 선택했을 것이다.
12장에서는 죽음의 무거움을 4가지로 설명한다: 죽음의 필연성 (반드시 죽고), 가변성 (얼마나 살지 모르며), 예측불가능성 (언제 죽을지 모르며), 편재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이 중, ’반드시 죽는다‘는 명제 이외 나머지는 모두 가능성들이다. 그 가능성들을 나의 상황에 빗대어 해석해 보면 ’나는 살 날이 짧을 수 있고, 언제인지 모르나, 암의 재발, 전이 또는 부작용으로 병원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 이 무거움은 항상 간직할 것이며, (아래서 설명할) 가치를 담는 그릇 반대편 저울의 추로 매달려, 담겨진 가치들을 저울질하며 나에게 가치있고 의미있게 살라고 균형을 맞출 것이다.
반대로, 후반부에 자주 나오는 가치있는 삶을 설명하는 가르침들도 좋았다. 발췌하자면, 최고 형태의 삶을 위해서는 내적인 경험 (자기 만족이나 쾌락) 뿐만 아니라 외적인 경험 (성취, 지식, 인간관계)도 필요한 것이다. (11장, p361). 우리가 아주 희귀한 것일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처럼 삶이 귀하고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삶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12장, p390).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오랫동안 남게 될 뭔가를 남기고 간다면 더욱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13장, p439). 어쩌면 저자는 죽음을 철학적으로 깊고 깊게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가치있는 삶을 살라고 메시지를 던진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가치있는 삶에 대한 설명 중 내가 좋았던 부분은 11장의 ‘그릇이론 (container theory)’이였다. 담긴 그릇의 내용물로 인해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라는 이 이론을 이해하면서, 나의 그릇에 담긴 내용물로 나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게 변하고 있었나를 깨달았다. 특히나 아프고 나서는 그릇에 담긴 가치들이 180도 변했다. 담고 싶은 또는 담겨진 가치들도 그 전에 있었던 가치들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승진, 직업적 성취 등은 더 이상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게 되었다. 대신, 나의 행복, 나의 새로운 예술적 또는 문학적 성취등을 담고 싶은 가치로 바꿨다.
이 외에도, 책을 통한 몇몇 깨달음을 적어보자면, 1) 영생을 설명하는 10장에서는, 영생 대신 ’최고의 삶이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래 사는 삶 (p345)‘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2)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독약을 마시고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p113)는 내용은 내가 전혀 몰랐던 내용이다. 3) 철학자들이 어떻게 철학적 가설을 하고, 참 또는 거짓을 증명해 나가며 결론에 도출하는 저자의 설득은 가히 압도될 만 했다. 4) 끝으로 고백하건데, 자살관련된 마지막 장은 읽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내가 자살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접근을 하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부터, 실질적인 접근을 보여준 ‘임종학 강의’까지.. 죽음을 탐구하면 할 수록, 죽음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 할 수 있었다. 특히 ‘죽음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서, 나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고, 죽음으로 인해 나에게 어떤 것들이 박탈되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등의 일련의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또한, 나의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의 크기도 가늠해 볼 수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살아있음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 내가 느끼는 행복감, 그리고 가치있는 것들로 남은 인생의 그릇에 채워야 겠다고 다짐한다. 죽음은 반드시 삶이 끝난 다음에 따라온다는 사실 (p388)을 명심하면, 삶이 마칠때까지 가치있게 살아야겠다고 자연스레 다짐되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