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9 | 방사선 치료끝
언제 끝날지 모를 30회의 방사선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12월 첫째주부터 매일 아침 8시반에 받았던 방사선 치료는 1월 중순이 되어야 마쳤다. 30회는 생각보다 길었고, 중간에는 매일같은 루틴이 무지하게 지겹다고 느꼈다. 매일 같이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시고, 분당까지 라이드를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방사선 치료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을 지난번 에피소드 (에피소드 25 참고)에 적었기에, 이번에는 그간 방사선 치료에 대한 느낌을 가볍게 적어보면서치료의 끝을 기록하고자 한다.
아침 8시반은 방사선 치료실이 운영하는 첫시간이고, 그 시간대에 가면 많은 환자들이 대기한다. (총 4개의 치료실에 대기환자만 어림잡아 20명정도 된다.) 서로서로 매일 보는 얼굴이라 일부는 서로 인사하고 대화하고 지내신다. 주로 60대 이상의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서로 이야기 하다보니 대기실이 시끌시끌하다. 주로는 암관련 정보 공유하거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탄핵이나 참사이야기도 주로 나누셨다. 나 같은 경우, 다른 환자들과는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다만, 자주 보이는 분들이 안보이시면 치료를 졸업하셨구나 알게되고, 또는 새로 오시는 분들은 치료를 시작하셨구나 한다. 나 역시 오늘 졸업했으니 그분들이 ‘그 친구는 안보이네‘ 하실 것이다.
나의 예약시간은 8시 30분이라서 항상 첫타임이다. 다른 대기 환자들을 제치고 처음으로 치료받고 귀가하는 느낌은 의외로 뿌듯하다. 병원까지는 40분정도 소요되는데, 한번은 가는길에 정체로 지각한적이 있었던 것 빼고는 잘 치료받았다. 방사선사들은 무뚝뚝하나 30회나 매일 봤더니 정이 들었다. 마지막날 수고하셨다고 스타벅스 카드를 선물 드렸다. 환자로부터의 선물이 의외였는지 너무 고마워 하셨다. 그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로 드리는 선물이였으나, 나의 방사선 치료의 졸업을 자축하는 행동이라 내가 더 기분 좋았다. 마치 생일날 기부하는 느낌처럼..
엔지니어 성격상 반복되는 루틴은 최적화해야 직성이 풀린다. 우선 병원에 도착하면 8시 10분 정도.. 우선 체크인을 해야한다. 체크인을 담당하는 직원은 간호사가 아닌 직원이고, 역시나 매우 무뚝뚝하다. 다른 간호사들과 친하지 않는것으로 보아 그들사이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치료비를 미리 결재해서 나오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치료복으로 환복 후 캐비넷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 옷을 들고 나와서 치료 후 빨리 갈아입을 수 있도록 한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8시30분 정각에 치료가 시작되고 치료는 3~7분. 마치면 바로 아버지께 전화해서 지하주차장에서 나오사라 부탁드리고, 환복하고 1층에서 만나서 출발! 이보다 최적화 할 수 없다.
점심시간과 밤시간대에 (12시간 간격으로) 빠지지 않고 방사선 피부염 연고를 바른 덕분인지, 치료를 받은 피부 부위가 약간 검게 탄 것 이외에 큰 문제 없었다. 심한분들은 피부가 화상을 입은 듯 빨갛게 진무른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끝나고도 계속해서 바르면 좋다고 하여 남은 연고를 끝까지 바를 예정이다.
방사선 조사 부위가 광범위해서 그런지, 치료받은 다리는 묵직하다. 이런 비유가 적절치 않지만, 마치 살짝 대쳐진 수육고기가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중간중간 무릎이나 발쪽에 의문의 근육통 발생해서 잔통제 처방받기도 하였다. 차차 새로운 세포가 자라나면서 그 묵직함도 사라질 것이다.
치료받는 동안 피부 표시선은 1주일에 한번정도 새로 그려준다. 매번 표시선이 지워질까봐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늘 저녁 샤워하면서 그 선들을 살살 지워볼 예정이다. (탕목욕은 한달뒤부터 가능하다고 함)
교수님도 1주일에 한번씩 만났다. 오늘은 마지막 진료로 더 이상 뵐 일이 없을것이라 생각되어 똑같이 스타벅스 카드를 준비해 갔다. 앞으로 못 뵙는 줄 알았는데, 체크업 할때(에피소드 26 참고) 띄엄띄엄 만날 예정이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양재화훼단지에 들러 이쁜 꽃다발을 선물받았다. 아버지 취향으로 고른 꽃다발이 무척이나 화려하고 아름답다. 꽃을 받아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필요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막상 받고 나니 기분이 좋다.
이제 3차례 항암만 남았다. 기나긴 여정이 끝이 서서히 보인다. 이번주 미국가서 가족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와서 나머지 치료를 진행할 예정이다. 많이 왔다. 조금만 더 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