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0 | 4차 항암
드디어 4차 항암이 끝났다. 앞선 차수보다는 컨디션이 좋았으나 예상치 못했던 흐름과 돌발 변수가 많았다. 어쨌거나 퇴원 후 48시간 즈음에는 컨디션이 돌아와서 지금 이렇게 도서관에 앉아 글을 쓴다.
이번 4차 항암은 저번과는 다르게 ‘당일 낮 병동‘을 이용했다. 이전 차수들은 3박 4일 또는 4박 5일로 ‘입원’하여 항암약을 투약받았었으나, 당일 낮 병동은 매일 입원(?)하여 투약받고 퇴원(?)하는 절차를 3일동안 반복한다.
낮 병동을 이용해 보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정적인 입원 일정이 때문이다. 의료파업으로 병상이 부족했고, 암환자도 많아진 탓이라서 대기 환자가 무척이나 많았다. 나의 경우, 1차 항암 입원은 8일 미뤄졌고, 2차는 5일, 3차는 7일 미루어졌으니, 남은 치료 일정에도 험난함이 예상되었다. 입원 일정 만큼이나 14시간 가량되는 긴 하루 투약시간이 문제 되었으나, 담당교수님의 노력으로 투약시간을 10시간 이내로 줄이고 당일 낮 병동 근무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낮 병동은 짧게는 한두시간 항암약을 투약 받는 환자부터 길게는 10시간까지 투약받는 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편안한 소파 형태의 장소도 있고, 침대 형태의 장소도 있어서, 환자의 상태에 맞춰서 투약 장소를 제공한다. 주로 5층에서는 짧은 투약 시간의 환자들을 수용하고, 10층에서는 긴 투약 시간의 환자들을 수용하는 듯 하다. 5층에서 접수나 예약을 하고 전광판으로 배정된 호실에 들어가서 투약을 받는다.
그렇게 시작한 낮 병동 투약은 입원 후 이루어지는 일정(항암약 투약 용량이나 해독제 또는 촉진제 투약시기) 과는 거의 비슷하나 세부적으로 다른 것도 있어서 아래에 장단점을 정리해 보았다.
낮 병동의 장점:
일정 연기에 대한 리스크가 없다. 하루하루 입원을 기다리는 심정은 매우 고달펐다. 약속도 편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낮 병동은 일정 연기 없이 예약된 날에 찾아갈 수 있다. 특히나 병가가 끝나가는 시기라서 병원 일정이 미뤄지면 더 애가 탔을텐데, 그런 걱정없이 항암을 잘 마칠 수 있다.
집에서 편히 잘 수 있다. 이게 중요한 요소인지 미처 생각 못 했다. 오히려 통원치료하면서 이동 중에 매스껍거나 하면 어떨까 걱정이 앞섰었다. 집에서 편히 자는 것은 매우 중요했고, 특히나, 주변 환자의 코골이에 고통스럽지 않았다. 3일 내내, 긴밤 편히 잘 자고, 낮 투약때는 좋은 컨디션으로 투약할 수 있었다.
환자복과 식사를 안 준다. 누구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겠는데, 나의 경우는 장점이였다. 편한 사복으로 투약을 받고, 점심은 병원 지하에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식사하였다. 주로는 간단히 빵이나 샌드위치로 식사하여도 충분하였다.
낮 병동의 단점:
간호사들의 연속성이 사라진다. 입원하면 3교대를 하더라도 같은 간호사 그룹이 계속 케어해준다. 스타일도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면서 환자로써 상대적인 편한함을 느낀다. 낮 병동은 그날그날 예약 상황에 따라 병실이 바뀌니, 따라서 간호사도 바뀐다. 나의 특이사항을 매번 새 간호사가 올 때마다 알려줘야 한다.
담당 교수님이 회진을 돌지 않는다. 입원은 교수님 회진 때 몇가지 질문들을 할 수 있었지만, 낮 병동 환자들에게 교수님 회진은 없어서 질문은 별도의 외래를 통해서 가능하다. 항암 투약의 대부분은 간호사들과의 캐미가 중요하니 담당교수의 회진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나, 나의 경우 몇 가지 질문이 있었어서 교수님의 회진이 없는 걸 알고 아쉬웠었다.
복잡한 행정처리가 귀찮다. 입원은 모든 처리가 마무리되고 마지막날 퇴원시 일괄 수납한다. 하지만 낮 병동은 그날그날의 수납과 약 등을 미리 처리하거나 받아와야 하는 복잡함이 있다. 특히 1동과 2동을 오가면서 수납하고 약을 타오는 날은 진이 쏙 빠진다. 더불어 실비보험 신청도 복잡하고, 추가 약 (항오심약, 딸꾹질약 등)들도 쉽게 처방이 안 난다.
긴 통원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나의 경우 부모님께서 운전해 주셨고, 거리도 1시간 안으로 편안히 이동 가능했지만, 지방에 사시는 분들은 매우 힘드실 것이다. 눈이 펑펑오던날, 대각선에 입원하셨던 노부부가 경남 남해까지 어떻게 가냐고 걱정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좋아진 컨디션 이야기를 해보자. 나의 컨디션을 두 가지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투약 기간‘, 그리고 두번째는 ’투약 후 48시간‘ 이다.
첫번째 기간은 낮 병동을 다닌 기간이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대로 충분한 잠으로 컨디션이 좋았다. 역시 잠이 보약이다. 항오심제도 평소의 절반밖에 안 먹었는데도 크게 오심이 오지 않았고, 딸꾹질약도 거의 안 먹었는데 심하게 오지 않았다. 저녁마다 먹고싶은 매콤한 음식으로 입맛을 달래며 식사를 충분히 했던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재된 식염수로 울렁거림 요소를 제거한것도 큰 이유이다. (에피소드 24 참고, 매번 새로운 간호사에게 ’조재된 식염수를 넣어주세요‘라고 빠짐없이 이야기 해야 한다.)
두번째 기간은 모든 투약이 끝나고 집에서 요양할때이다. 업(Up)된 컨디션으로 항암이 이대로 수월하게 넘어가나 했다. 낮 병동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아내에게 컨디션 좋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지만, 이미 몸에 들어왔던 항암약은 나의 온 몸을 돌고돌며 나의 컨디션을 바닥으로 끌어당겼고, 정확하게 48시간동안 (에피소드 24 참고) 침대에 누워서 고스란히 앓았다. 오심은 없었으나, 지속적으로 피곤했고, 어지럽고, 입맛은 고장났으며, 식사가 힘들었다. 침과 소변으로 꾸준히 약냄새가 퍼졌다. 역시나 48시간이 지나면서 항암약들이 대소변으로 배출이 일어나면서 서서히 좋아졌다.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 하자면, 낮 병동의 장단점이 있음에도 내가 느꼈던 장점과 나의 컨디션이 압도적으로 좋아서, 남은 5, 6차 항암도 낮 병동으로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