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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안다리 Jan 28. 2023

적당함과 어울림

태국은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이다. 특히 내가 사는 지방 도시는 더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태국에서 항상 단독주택에 살아왔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는 가운데에 놀이터와 주민을 위한 운동공간이 있다. 

우리 가족들은 이곳에 가서 운동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날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놀이터 옆에 있는 집 마당에 파파야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 파파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파파야가 얼마나 크고 탐스럽게  많이 열렸는지 나무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땐  ‘우와! 파파야가 참 많이도 열렸네’ 했지만 

두어 번 다시 보니 ‘열매가 많이 열린 것이 좋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파파야가 너무 많이 열린 나머지 나무가 옆으로 기울어져 가는 것이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동네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는 2층짜리 주택 단지였는데 우리 집 뒤편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그곳에 파파야 나무가 심겨 있었다. 

처음엔 나무가 작고 열매도 없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2층 집들 사이에서  햇빛을 보기 위해서 

나무가 위로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몇 달 후에는 거의 2층 높이로 나무가 자랐고 굵직한 파파야도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파파야 열매가 문제였다. 

2층짜리 주택 사이 작은 공간에서 자라나다 보니 파파야 나무의 잎이나 열매가 떨어질 때 우리 집이 아닌 옆집 주방 지붕으로 떨어졌다. 열매가 익으면서 떨어지는 수가 점점 더 많아졌는데 

가끔 집 안에 있다가, 혹은 자다가 쿵! 하고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게다가 옆 집 지붕을 망가뜨릴 까봐 계속 노심초사해야 했다. 

그러나 나무가 얼마나 높게 자랐는지 우리 힘으로 열매를 따기도 어려웠다.  

크게 잘 자란 파파야 나무와 그 열매들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같이 느껴졌다.


결국 남편과 나는 나무를 잘라 없애 버리기로 했다.  

나무를 아주 잘 타는 태국인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집에 와서 보더니 나무가 너무 높고 집과 집 사이 좁은 공간에 자라났으니 위부터 1미터 정도 씩 잘라 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친구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더니 (왜 태국 사람들은 이런 걸 다들 잘할까??ㅎㅎ) 

먼저 파파야 열매들을 따서 밑으로 던졌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부터 나무를 잘라 내기 시작했다. 


나무에서 나온 파파야 열매는 엄청 많아서 이 집 저 집 나눠주고도 남았다.

잘라낸 나무는 커다란 쓰레기가 되어 그것을 처리하느라고 우리는 한참을 함께 일 해야 했었다.  


이 파파야 나무들을 보면서 적당함과 어울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 파파야 나무가 2층 집 사이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분명히 우리는 잘 자란 나무와 열매를 보면서 기뻐했을 텐데. 

적당한, 어울리는 장소가 아닌 곳에서 자라 버린 나무는 오히려 재앙이 되어서 결국엔 잘라버려야 했다. 


자주 사용하는 태국어에 머쏨(เหมะสม)이라는 단어가 있다. 

머쏨은 적당하다, 어울리다는 뜻이다. 

옷이나 스타일에 대해서, 상황이나 사람의 적절함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머쏨이라는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 나무가 좀 더 머쏨한 위치에 있었다면 그렇게 잘려버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결국 놀이터 옆에 있던 파파야 나무는 잘려서 없어져 버렸다. 

머쏨하지 않게 열매가 너무 많이 열린 나머지 나무가 지탱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의 삶의 적당함과 어울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내 삶은 적당하고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너무 과한 열정이나 욕심으로 다른 사람들은 의도치 않게 불편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적당하고 어울리지 않음으로 인해서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되어버린 두 나무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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