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
하얗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나면 하나의 세상이 탄생한다.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재미인 것 같다.
아무 의미 없던 백지가 나의 손에 의해서 멋진 배경으로, 예쁜 꽃으로 탄생되어진다.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꾸 데이지 꽃밭을 그리게 된다.
작은 꽃망울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정경을 만들어 내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다.
화려한 장미 같은 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들판에 수두룩하게 피어 있는 데이지나 이름 모를 들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꽃들을 그리는 것을 좋아할까?
가만히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작은 꽃들을 그리는 이유는
화려하지도 않고 단순한 작은 꽃일지라도 그 꽃들이 모여서 만드는 아름다움이 좋아서 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강남에서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었나?
내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보니 바로 TV에서 말하는 강남 8 학군!
그곳이었다.
내 주변에는 잘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우리가 사는 곳보다 훨씬 높았다.
그 아이들은 미국에도 벌써 다녀왔고 영어도 잘했다.
취미로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를 연주했다.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가보니 여러 가지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 위에
처음 보는 외제 과자와 젤리들이 수두룩했다.
화려하고 잘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지 않았던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고
스스로 초라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화려한 사람들 틈에서 하나도 존재감이 없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
그게 바로 나 같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가면서 나는 내 정체성을 찾았다.
난 화려하지도, 그들처럼 잘 살지도 않지만 그래도 소중한 한 사람임을.
그래서 작은 꽃을 그리는 걸 좋아하나 보다.
장미나 히비스커스처럼 크고 화려한 꽃은 아닐지라도
작은 데이지가 가득 피어 있는 꽃밭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래서 이 작은 꽃들을 좋아하나 보다. 작다 못해 초라하게 보이는 이 꽃들을.
화려하지도 크게 돋보이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일지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소한 아름다움이 모여서 장관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