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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18. 2020

이 돈이 떨어지면 난 돌아가야 한다

<제1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까맣게 썩은 감자가 들어 있는 가방을 안고 영국 런던 시내 토트넘 코트 로드에 앉아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었다.


‘아, 이런 게 사기구나. 사기는 이렇게 눈뜨고 당하는구나.’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게 ‘마이 프렌드’라며 친한 척을 하던 러시아 사람 두 명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신 노트북을 싸게 준다며 외진 골목길에 주차된 빨간색 닛산 차량으로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하지만 지금 내 손에는 세인즈버리 슈퍼에서 산 것으로 보이는 다 썩은 감자가 들어 있는 검은색 노트북 가방뿐이었다.


‘이럴 수가. 내가 돈을 잃다니. 100만원이나 사기를 당하다니.’




2004년 1월, 나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 캐리어 1개와 이민가방 1개를 끌고 영국 런던에 왔다. 실험실에 갇혀서 바이러스를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 동시통역사가 되어 국제회의에서 활약하고 싶었다. 영국만 가면 영어를 자동으로 배우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 영국에 가자. 과외비 모은 거 600만원이 있으니 이걸로 가보자.’


랭기지스쿨 등록비, 2주간의 홈스테이 비용 그리고 항공권으로 300만원을 썼다. 남은 30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이 돈으로 최대한 오래 버텨야 했다. 1파운드에 2,000원이 넘는 환율 때문에 손에 쥔 돈은 더 적게 느껴졌다.


그 돈이 떨어지면 한국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전 재산이 바닥나는 달 안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국 학생비자로는 아르바이트가 가능했다. 국내 아르바이트 시급은 2,000원이었다. 런던의 시급은 10,000원이 넘었기 때문에 일만 구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짧은 영어와 소심한 성격 때문에 일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카페, 레스토랑에 무작정 들어가서 일자리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게 힘들었다.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웠고, 돈이 절실했던 내 처지를 웃는 얼굴로 광고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어쩌다 한국인 직원을 마주치는 건 최악이었다.


인기 있는 일자리는 스타벅스였다. 다른 곳에 비해서 시급이 높았고 깔끔해 보였기 때문이다. 영국 스타벅스 매장에서의 경력이 있으면 한국 스타벅스 본사 직원 채용에 유리하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돌았던 것 같다. 물론 헛소문이라는 건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일을 구하러 다닌 지 벌써 4주째가 되었다. 큰 기대 없이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가 스퀘어 서브웨이 샌드위치 매장에 들어갔다. 큰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의 폴란드 출신의 매니저가 나왔다.


하이, 두유 해브 어 배이컨시?
캔 아이 워크 히어, please?

이게 웬일인가. 어제 일본인 아르바이트 한 명이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당장 일을 할 수 있으니 2층에 가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라고 한다. 오예! 이제는 주머니에서 사라지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새겨진 동전을 보며 한국으로 돌아날 날을 세지 않아도 된다!


저녁마다 내 입 맛에는 안 맞는 샌드위치 만들었다. 폴란드 알바생들이 미뤄놓은 설거지를 해치웠다. 밤 12시마다 지하에 모아놓은 대형 쓰레기봉투 수십 개를 끌고 나와서 ‘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 스티커를 붙여 도로에 내놨다. 그렇게 어렵게 모은 돈이었는데. 노트북을 반값에 주겠다는 러시아 사기꾼들의 영어 한 마디에 홀딱 넘어가서 그렇게 사기를 당했다.




런던까지 와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몰랐지만, 우선은 일을 구해서 이곳에서의 시간을 연장시켜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방값을 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당장 다음 달 방값을 내고 터키 슈퍼에서 파는 쌀을 사기 위해 일이 필요했다. 한 시간 일해서 번 돈으로 런던에서의 시간을 8시간 연장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보다 시간당 5배나 많은 돈을 벌고 있었는데 항상 가난했다.  


근로소득으로 돈을 모으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잠도 안자고 24시간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내 능력을 키워 시간당 수입을 수백 만원으로 늘리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유능한 전문직이 되거나 대기업 CEO가 되거나 혹은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은 항상 따라다녔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영국 한복판에서 근로소득의 불안정성과 비효율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름답고 웅장해 보였던 도시가 이제는 차갑고 두렵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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