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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18. 2020

부자가 되는 비밀은 이것이었다

<제2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이런 내 복잡한 마음도 모르고 런던에서는 매달 어김없이 그 날이 돌아왔다.


바로 방값을 내는 날이다.


3평 남짓한 방값으로 한 무더기의 지폐를 내야만 했다. 내 주머니에는 항상 동전뿐이었다. 이민가방에 숨겨둔 보라색과 주황색 지폐는 방값을 낼 때만 꺼내 볼 수 있었다.


방값을 내고 있는 이 2층짜리 집은 지은 지 100년도 더 되었다. 여기엔 방이 5개, 화장실이 1개이다. 이 집에 사는 9명의 방값만 적어도 600만원은 넘는 것으로 보였다.


뭔가 이상하다. 한 달에 600만원. 이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월세를 걷어가는 한국인 형에게 물어봤다.


“근데 랜드로바가 무슨 뜻이에요?”

“랜드로바? 그거 신발 아니야?

“아니, 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형이 랜드로바라고 했잖아요.”

“아, 랜드로드? 내가 여기 집주인하고 월세 계약을 해서 집을 관리한다는 뭐 그런 거지.”

“그럼 우리들한테서 방값을 걷어서 집주인한테 내는 거예요?

“그렇지. 근데, 왜? 뭐가 궁금한데?”

“집주인한테 월세 얼마쯤 내는데요? 뭐, 천 만원쯤 내요?”

“왜, 너도 하게?”


그렇다. 랜드로드는 집주인과 임대 계약을 맺고,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주고 월세를 걷는다. 이 돈으로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 과정에서 남는 게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 방 광고 올리고, 손님들 집 보여주는 귀찮은 일을 손해를 보면서까지 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이 형은 아르바이트도 안 한다. 매일 빈둥빈둥 노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도 잘 안 간다. 집에서 밥 먹는 모습도 거의 못 본 것 같다. 외식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아, 부럽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불러 소란스럽게 놀기도 하고, 유럽 여행도 자주 가는 것 같다.


그래, 뭔가 있다. 단돈 1파운드라도 남는 게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여기에 해답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든다.


랜드로드!
그래 방이 아닌 집을 구하자!
집주인에게 집을 빌리고,
유학생들에게 세를 놓자!



바로 집을 알아봤다. 온라인에서 집을 양도한다는 글을 발견했다. 위치는 런던 북서쪽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골더스 그린이었다.


플랏이라고 부르는 대단지 빌라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윈저코트라는 멋진 이름이었다. 집 내부에는 방 2개와 리셉션룸 1개, 그리고 주방, 화장실, 욕실이 있었다. 붙박이 장이 딸린 큰 방은 일본인 학생과 브라질 직장인이 함께 쓰고 있었다. 큰 창문이 있는 작은 방에는 한국인 학생 2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 4명은 총 200만원의 월세를 내고 있었다.


나는 거실에 해당하는 리셉션룸에서 지내면 될 것 같았다. 문이 있어서 독립된 공간이라 그럭저럭 괜찮았다. 침대는 없고 바닥에 매트리스만 있었는데, 뭐 괜찮아 보였다. 지금 집은 9명이 화장실 1개를 쓰는데, 그래도 여기는 나까지 5명밖에 안되니 그게 어딘가.


갈색 머리가 인상적인 중년의 집주인을 만났다. 뉴스에서 보던 유대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다니 신기했다.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가자 지구에 관한 토론을 하고 싶었지만 내 짧은 영어로는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빠르게 다음 기회로 패스했다.


계약 조건은 월세 210만원 그리고 보증금으로 한 달치 월세였다. 계약 기간은 1년이고, 귀국 등의 사유가 생기면 계약을 승계할 다른 임차인을 구해오면 된다고 했다. 모든 공과금은 임차인이 부담하는데, 인원이 적어서 큰 액수는 아니었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200만원을 내고, 여기에 내가 10만원 보태서 집주인한테 210만원 보내면 되는구나. 그럼 내가 10만원 손해인가? 아니지. 내가 90만원씩 내던 방값도 이제 안 내도 되니깐 나는 매달 80만원을 버는 셈이네?’


계약은 성사되었고, 집주인이 내미는 서류에 서명을 했다. 집주인과의 직거래였던 것이다.




화장실 1개에 9명이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머릿속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욕심이 생겼다. 방값만 줄여도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잘하면 돈이 남을 것만 같았다.


‘방값을 올려볼까? 그래서 수익을 좀 남기는 거지!’


방값을 올리려면 명분이 있어야 했다. 집안 내부 환경을 바꾸면 될 것 같았다. 이 집의 거주 만족도를 높여줘야 했다. 기꺼이 돈을 더 낼 만한 차별화된 서비스가 필요했다.


런던의 랜드마크 건물 가운데 센터 포인트 빌딩이 있다. 이 근처 건물의 지하에는 유학원 사무실이 있었다. 무료 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시장 조사를 했다. 런던에 집 렌트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지하철이나 버스 정거장과 거리가 먼 집들은 방값이 쌌다. 전기, 수도, 가스 요금을 별도로 부과하는 곳도 있었다. 케이블 TV를 제공하는 집들은 많았고, 종종 무선 인터넷을 제공하는 집들도 보였다. 여학생들을 위해 각 방문 열쇠를 제공하는 곳도 보였다.


런던 북서쪽 웸블리 이케아 매장에 가서 식탁용 의자 세트와 식기류, 스탠드, 전신 거울, 벽시계 등 약간의 인테리어 소품을 사 왔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인터넷을 방마다 설치했고, 집전화기에서 국제 전화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주방, 욕실, 화장실 청소 당번제를 없앴다. 모든 청소를 나 혼자 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대신 월세를 인당 10만원씩 올렸다.


작은방 2명은 다음 달에 바로 나갔다. 역시. 방값 얘기를 꺼냈을 때 표정을 보고 짐작했었다. 하지만 그 방은 다른 학생들로 금방 채워졌다.


90만원씩 내던 내 방값은 이제 공짜가 되었다. 추가로 매월 30만원의 현금도 발생한다. 한 달에 120만원의 수입이 생기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그래 이거구나!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다니!’


이제는 내가 잠을 자는 시간에도, 바르셀로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순간에도 이 집은 나를 대신해서 돈을 벌어주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의 근로소득까지 더해지면 돈이 모이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이제는 근로소득을 통해 어렵게 모은 돈이 허무하게 사라지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부자가 되는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자본주의에는 근로소득의 한계와 자본소득의 달콤함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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