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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 Aire Aug 18. 2020

월급 150만원, 돈을 버는 시스템을 바꿔야했다

<제3편> 중소기업 월급쟁이, 강남아파트 투자로 조기은퇴하다

2년의 영국 생활을 끝낸 후 첫 사회생활은 일산에 위치한 작은 학원의 영어 강사로 시작했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영어 수업을 했다. 내신 시험 기간에는 주말 보충 수업이 필수였다.


월급은 딱 150만원.


근로소득의 한계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명하기를 좋아했던 내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좋게 생각했다. 나중에 학원을 차리게 될 때를 대비해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매일 새벽 일산에서 마포까지 퇴근을 하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비가 월급의 절반이 나왔다. 중고차를 구했다. 94년식 초록색 유로 엑센트 5 도어. 초보 연습용으로만 쓰고 새 차로 바꿔야지 했는데, 이 차는 무려 10년을 나와 함께 하게 된다.


학원 강사로서 밤낮이 바뀐 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목 상태가 계속 안 좋았고, 만성 두통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싶었다. 8시간 동안 서서 일하는 대신에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을 하고 싶었다.




강사로서 경험과 영어 성적표 덕분에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작은 영어 콘텐츠 회사로 직장을 옮길 수 있었다. 월급도 180만원으로 올랐다.


토익 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였기 때문에 전 직원 5명이 매달 토익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토익 만점을 기록하면 상금으로 100만원을 줬다. 이런 좋은 제도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100만원이라는 실제적인 목표가 생기니 문제만 봐도 답이 보였다. 다음 월급날에는 월급과 함께 상금도 받았다.




영국에서 돌아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결혼을 했다. 아내는 대학에서 영어 통번역을 전공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아내의 대학 동기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갔다.


“28살에 결혼하면 엄청 빠른 거 아니에요? 근데 집은 어디로 구했어요?”

“아내 회사 근처요. 공덕역 근처에 새 빌라예요.”

“빌라요? 몇 평인데요?

“12평이요. 방도 2개나 있어요”

“……”


모르겠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백수였던 나는 역시 취업 준비 중이었던 아내를 만났다. 영국에서 남겨온 파운드와 1년간 모은 월급을 합쳐도 3천만 원도 되지 않았다. 서울 집값이 얼마인지도 몰랐고, 아파트에는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파트는 막연히 비쌀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파트는 나와 상관없는 곳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냥 어색하게 웃고 지나갔다.




결혼을 하고 얼마 후에 아내가 아파트 얘기를 꺼냈다.


“지금 우리 전세 보증금 있잖아. 여기에 2~3천만 원만 보태면 하안동이나 철산동 쪽에 아파트 살 수 있거든.”

“아파트? 전세가 아니라 살 수 있다고? 근데 그 돈이 어디에 있어?”

“은행에서 대출받아야지.”

“대출? 대출받으면 큰일 나. 그냥 월급 모아서 사면되지. 8년 부은 청약부금 통장도 있잖아.”

“이자 내면서 대출을 갚는 게 돈을 모으는 건데……”

“아, 됐어. 대출은 무슨 대출이야.”   


그 뒤로 아내는 아파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출을 받는 것, 생각도 안 해봤다. 무모한 행동 같았다. 평생 빚만 갚으며 은행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모험을 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대출로 집을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머릿속에 계속 남았다. 내 집을 갖고 싶었다.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북향이라서 빨래도 안 마르는 이 집이 싫어졌다. 곰팡이와 결로는 보기도 싫었다. 이왕이면 해가 잘 드는 남향이면 좋겠다. 언덕이 아닌 평지에 살고 싶다. 마을버스 기다리는 것도 싫다.


혹시나 해서 아파트 실거래가를 찾아봤다. 2007년 봄에 1억 초반이던 하안동 아파트는 연말이 되자 1억 7천을 넘었다. 이럴 수가. 아파트를 샀으면 전 재산만큼의 돈을 몇 개월 만에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부동산이구나!

잠시 잊고 있던 영국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시스템을 바꿔야 했다. 매일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런던 그 집도 나를 대신해서 돈을 벌어주고 있었다. 여기서도 아파트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 실거래 가격 지수 역시 아파트 가격의 상승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프를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결혼을 1년만 더 빨리 했더라면, 1년만 더 빨리 아파트를 샀다면 지금쯤 부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었다. 아파트는 장기보유만 하면 수익이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다.

아파트에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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