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 - 상실
어느 날 가을,
하이가 이상했다.
퇴근하는 날 반기긴 했지만, 어딘가
불편한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 하이를 어루만지다
뒤쪽 척추 쪽을 살며시 손을 대니,
하이가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웅크렸다.
CT를 찍었다.
척추 종양이었다.
진통제가 듣지 않아 힘들어하면
안락사를 고려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다음 해 가을까지 하이는 잘 버텨주었다.
하이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의 욕심 때문에 널 데리고 있지 않을게.”
“행복하니?”
하이에게 묻고 또 물었다.
1년이 지나자 하이는 뒷발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소울이와 같이 산책할 땐 하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다녔다.
하루 이틀에 한번
하이를 가방에 넣어 등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바람을 쑀다.
자전거를 타고 외곽길을 돌아서면
뒤에서 킁킁 냄새 맡으며 탐색하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벤치가 보이면 하이를 가방에서 내려놓고
좋아하는 간식을 한알씩 주었다.
그럼 하이는 고개를 살짝 위로 들고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간식을 하나하나 천천히 씹어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배뇨를 할 수 없게 되어
6시간마다 방광을 짜줘야 했다.
배는 손자국으로 멍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숨이 가빠졌다.
초음파를 찍어보니 폐까지 종양이 전이된 것 같다고 했다.
가쁘고 얕은 숨을 몰아쉬긴 했지만
하이는 이불에 부비적대며 애교를 부렸다.
그날도 하이를 가방에 넣고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이고, 강아지네.”
“아… 네…”
순간 난 하이의 머리를
가방 안으로 넣으려 손을 들었다.
“강아지 꺼내놓으세요, 답답할 텐데.”
“감사합니다…”
얼굴을 가까이 하니 하이가 내 입술을 핥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간식을 하나 주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않던 하이는 웬일로 받아먹었다.
특유의, 한쪽으로 씹는 표정으로
한 알, 한 알 천천히.
직장에 도착해 하이를 유리창이 보이는 케이지 안에 두고 미용하러 들어갔다.
첫 손님 ‘콩이’를 안고 발바닥을 밀다가
순간 손끝이 멈췄다.
미용실 밖으로 나가 하이를 살폈다.
원장님 이모님이 하이를 보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이고, 아이 아프다며… 딱해라…”
하이가 이상했다.
나를 보면 옆으로 누워
발을 동동거리던 모습도 없고
항상 나를 쫓던 동공이 멍해져 있었다.
하이를 안고 원장님께 갔다.
“하이가 이상해요.”
원장님은 다급히 청진을 하셨다.
“에이 숨 잘 쉬는데요?”
“네? 이상한데…”
순간 하이가 큰 숨을 한 번 몰아쉬고
축 처졌다.
“하이야…”
원장님은 바로 에피네프린을 주입하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창밖에는 하이처럼 하얀 눈이 끝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화장터에서 만난 남편은 눈이 빨개진 채
가지런히 누워 있는 하이를 보며 말했다.
“하이… 뭐라도 입혀서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른 아이들은 삼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이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초라하게 누워 있었다.
화장하시는 분은 말했다.
“옷 안 입히고 화장해야 불순물도 안 나오고 더 좋아요.”
하이의 유골은 4개월이 넘도록 뿌리지 못했다.
하루에 한 번씩 꺼내 손에 올려보았다.
소울이와 산책을 나갈 때는
하이와 다니던 길을 피했다.
그날 택시에서 하이가 날 핥을 때
맘껏 핥게 해 줄걸,
떠날 때 삼베옷을 입혀줄 걸—
어느 날 소울이는 내 옆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고
나는 습관처럼 손을 뻗어
복실복실한 하이의 털을 만지려 했다.
손에 잡히는 게 없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퇴근해 서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하이가 이제 없어.”
남편은 말없이 한참 서 있었다.
5월, 감기 기운이 있어 가까운 의원을 찾았다.
진료 후 처방약을 타고 나가려다
뒤돌아서서 카드를 다시 내밀었다.
“임신 테스트기 하나 주세요.”
화장실로 가서 테스트를 했다.
두 줄이었다.
아이의 예정일은
하이가 떠난 1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