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가장 좋은 걸로 주세요."
코칭 사무실 근처 와인바에서 손님이 바텐더에게 한 주문이 아니었습니다.
초기 코칭할 때 의뢰인에게 들었던 주문이었어요.
이해해요.
여기저기 알아보고 가봤다가 알음알음 낯선 전문가까지 찾아 오실 정도로 가장 좋은 문제해결책을 바라는 마음이 강하고 또 지쳤으니 그런 말이 먼저 나올 수 있다는 걸.
이런 말을 들으면 처음에는 007, 킹스맨, 미션 임파서블 영화에서 비밀 무기고를 보여주는 장면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암요..... 부끄러운 흑역사이지만 처음에는...
영화 <킹스맨 - 골드 서클> 중
제가 가진 심리 진단 검사들, 진단 매트릭스, 공학의 trouble shooting tool과 심리학의 35가지 문제분석 툴을 융합해서 만든 7가지 프레임워크, narrative editing 기법을 바탕으로 행동경제학 접근을 가미한 nudge 솔루션을 보여주고 본인이 직접 고르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의뢰인이 신이 나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선택 장애에 갇히는 부작용이 있더군요. 지친 감성을 놓치고 이성적으로만 제가 생각한 거죠.
그래서 요즘은 그저 이렇게 말합니다.
"매번 쉽고 재미있게 함께 가장 좋은 솔루션을 찾아 보아요."
물론 제 머리 속에 생각하는 베스트가 있긴 해요. 하지만 실제 의뢰인과 상호작용하면서 더 정교화되거나 다른 솔루션으로 바뀌기도 해요.
어쨌거나 고정된 하나의 베스트에 의뢰인을 억지로 끼워넣는 식은 절대 아니지요.
바텐더가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서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맛보게 하는 식이 아니라서 늘 새로워요.
그런데 변하지 않는 패턴은 있어요.
문제점은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문제해결책은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효과는 이성적 분석으로 수치화해서 감성적으로도 효과를 느끼는 패턴이요.
좀 복잡한가요? 직접 해보시면 그리 복잡하지 않아요. 이-감-이-감! 문제가 복잡하면 이감이감이감 식으로 끝나거나 더 감이 들어가기도 해요.
여하튼 여러분이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만들고 결과를 평가할 때에도 이 이감이감 패턴으로 해보세요.
오랜 시간 다양한 케이스를 겪으며 검증된 것이니까요.
이 패턴을 적용한 사례를 하나 소개시켜 드릴게요.
제가 기획에 어쩌다 참여하게 된 kbs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쉿, 욕 없는 교실 만들기>에요.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 링크는 아래와 같답니다.
https://youtu.be/Rutu0llf8FA
왜 "어쩌다"이냐면 원래 이 다큐멘터리를 그전부터 기획해 온 분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솔루션이 먹히지 않아 급하게 저를 찾은 거에요.
전화로 인터뷰라는 표현을 하셔서 저는 그냥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식으로 촬영한 영상 보고 몇 마디 거드는 것인 줄만 알았어요. 만나보니 밥상을 새로 차려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 tmi. 실은 ebs 다큐멘터리 <공부의 왕도> 시리즈 기획 자문이 별로 안좋은 경험이어서 자문은 안하기로 했던 때였거든요. 그 이후로도 tv 출연과 인터뷰 정도는 해도 장기 기획 다큐멘터리 자문은 하지 않고 있어요. 감성적으로 제가 인간이 아니라 공공재 물건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서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카메라 놓고 실험을 했어요. 학생들이 평소에 얼마나 욕을 잘하는지 우선 관찰했습니다. 남녀 모두 접속사와 감탄사, 대명사 등을 욕으로 대신 하더군요. 길에서도 자주 경험했던 것도 있고 해서 예상했던 바라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기존 기획위원들의 솔루션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하는 욕이 얼마나 나쁜 뜻을 갖고 있는지 알면 욕이 줄어들 거라며 욕 단어 풀이식 수업이 솔루션이었습니다. 저는 뒤 장면을 보지도 않고 말했습니다.
"그 솔루션 효과 없었을 텐데요."
이런, 제가 틀렸습니다.
이런 세상에나.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방송에서는 편집되어 그 솔루션 효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더 신나게 욕을 했습니다. 새로 알게 된 단어까지 적극 활용하면서.
"야, 넌 ×××야. ×××는 이런 뜻이야."
쩝. 욕의 양과 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더군요.
이런 우라질. 제작팀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한글날 특집 프로그램이 욕 대환장 파티가 될 위기였습니다.
기존 자문팀은 욕을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이성적으로 솔루션에 접근했습니다. 즉 욕은 나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일깨우면 될 거라 생각한거죠.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감성의 힘이 훨씬 셉니다. 조나단 하이트가 비유한 것처럼 이성은 감성이라는 커다란 코끼리 등에 올라 탄 기수와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코끼리가 기수 말을 듣는 거 같지요. 사실은 그건 어디까지나 코끼리가 그러고 싶을 때까지만입니다. 코끼리가 흥분해서 다른 곳으로 달리면 기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감정이 폭발할 때 이성의 존재감이 없어지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기존 솔루션은 문제의 본질부터 놓치고 있었어요. 학생들도 욕이 나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어요. 감성적으로 나쁘다는 사실을 느낄 기회가 없었던 거죠. 스트레스 해소 수단, 친밀감의 표현 수단, 또래 집단 소속감 등 욕을 통해 얻는 감성적 이익을 더 많이 느끼고 있으니 욕을 하는 것이지요.
제가 만든 솔루션은 기존의 감성적 이익 고리를 끊고 새로운 고리를 만드는 수행과제였습니다.
우선 학생들이 감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자기보다 약자라고 느끼고 생각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성적 분석력으로 만들었습니다.
보육원에 가서 어린아이들이 5천원이 생기면 갖고 싶은 물건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수행과제 규칙도 전달했습니다.
"욕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원하는 50만원 상당의 물건을 사서 너희들 이름으로 직접 기부하게 할 거야. 하지만 욕 하면 그때마다 바로 자기 손으로 교실 뒤에 있는 아이들이 원하는 물건 스티커를 떼게 할 거야. 물론 스티커를 떼면 그 물건도 사라지는 거고."
1. 수행 규칙을 따랐을 때 받을 보상과 처벌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성적 준비를 할 수 있게요.
2. 감성적 솔루션에 집중했습니다. 이성과 감성 모두에 호소하지만 크게 움직이는 건 감성이었지요.
추상적으로 나쁘다가 아니라, 자기 손으로 애들이 가질 물건을 없애는 욕을 하는 것은 나쁘다는 감성 경험을 하도록 했습니다. 기존 솔루션에서는 이성적으로 욕의 나쁜 점을 교육시키려 했지만요.
3. 이성적으로 자기의 욕한 행동을 평가할 수 있게 수행결과 요약판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요약판을 보면서 감성적으로 더 자극이 되도록 했습니다.
4. 욕을 줄이는 프로젝트라고 해서 반감이 생기지 않게 감성적으로 더 긍정적인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창의재능기부 프로젝트>라고도 했습니다.
5. 실제로 기부하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 자신이 거둔 성과를 맘껏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감성적으로.
어떻게 되었냐고요? 처음 3일은 생소한 규칙때문에 스트레스가 높아져서 욕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후 10일은 욕이 줄어들어 결국 0이 되었습니다. 이미 기존 솔루션 하나가 실패하고 한글날 납기를 맞춰야 하는 다큐멘터리 일정때문에 제 솔루션은 딱 2주밖에 실시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미국으로 떠나느라 더 관여하지도 못했고요.
(덕분에 학생들과 상호작용이나 인터뷰는 다른 분들이 더 많이 하고, 저는 짐을 정리하러 나와서 입고 있던 반바지 차림으로 기획 설계 설명 겸 인터뷰한 영상만 남았네요^^)
제가 인터뷰날 즉석에서 설계한 수행 과제만 달랑 있었지만 며칠 만에 효과가 날 정도로 감성에 호소하는 솔루션은 강력했습니다. 더 확실히 하려면 욕하지 않는 습관이 형성될 수 있게 2달 동안 지속하기는 했어야 했지만요.
이 수행과제를 공교육에 종사하시는 교사 대상의 연수에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일부 선생님은 저에게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상대방의 심리를 조작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반교육적인 일 아닌가요?
저도 많이 고민한 부분입니다. 코칭을 한다면서 직장인의 심리를 조작하는 것은 아닌가도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확실합니다.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감성적으로 분석해도 절대 심리조작 가능성은 없습니다.
약자를 돕고자 하는 감성이 없던 학생이었다면 제 솔루션이 먹혔을까요? 욕이 나쁘다는 이성적 판단 자체가 없는 학생이었다면 솔루션이 효과가 있었을까요? 저는 나쁜 것은 나쁘다고 알고 있고 좋은 것은 좋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알고 긍정적인 감성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긍정성을 극대화하는 솔루션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없던 것을 외부에서 주입한 게 아닙니다. 내부에 있던 것을 찾아서 본인도 느끼고 실행하게 한 거죠.
만약 세뇌나 조작을 할 능력이 있었다면 코치가 아니라 다른 사업이나 사기를 했겠지요.^^ 물론 제 감성과 이성은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요.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 사정때문에 전문 코치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자신 안에 있는 긍정성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스스로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과제를 만들어 감성적으로 자극을 주려고 노력해 보세요. 놀라운 변화를 얻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