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 당구장에서 일어난 일>
상계동(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상계시장 인근 당구장 주인들이 날벼락 소식을 들은 건 2001년 말이었다. 새로 영업을 시작한 A당구장 현관에 10분에 600원이라는 전단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당시 당구장 이용료는 10분에 1200원이었다. A당구장 주변에는 200여m 이내에만 3개의 당구장이 더 있었다.
당구를 즐기는 이용객들이 흔히 하는 말로 “600다이(대) 당구장이 생겼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당구를 치기 위해 대기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 .그로부터 4년 후. A당구장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당구장 전쟁은 어떻게 됐을까.
A당구장은 현재 10분당 800원을 받으면서 여전히 성업 중이다.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말이면 빈 당구대가 없다. 반면 다른 두 곳의 당구장은 현재 PC방과 교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곳(D당구장)은 사장의 말대로라면 “꾸준하다”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A당구장이 가격 파괴를 선언하자, 인근 세 곳 모두 단골이라고 믿던 손님까지 빠지기 시작했다. 당구장 주인들은 제각기 A당구장을 찾아가 항의도 하고, 싸움도 벌였다. “불을 질러 버리겠다”는 협박도 있었다고 한다.
가격 파괴에 고급화로 대응
A당구장은 지하 1층이었고 당구대가 6개만 설치된 좁은 공간이었다. 당구대와 당구대 사이도 좁아 간혹 이용객들끼리 부딪히기도 한다. 물론 게임에 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기본 서비스로 나오는 음료수는 생수로 대신했다. 당구대나 당구채·공 모두 중고로 구입했다.
저렴한 가격 수준에서 최소한의 서비스만 하겠다는 것. 서비스 수준은 다른 업체보다 떨어졌지만 ‘내기를 하는’ 당구 이용객들은 게임에 져도(물려도) 3600원밖에 내지 않는 부담없는 A당구장을 찾았다. 가격이 싸다 보니 한 시간 치고 갈 것을 2~3시간 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대기 손님도 많다 보니 당구대당 회전율이 매우 높았다.
개업 이벤트로만 끝날 줄 알았던 A당구장의 가격 파괴는 한 달이 넘어도 그대로였다. 당장 손님이 빠지기 시작한 인근 당구장 주인들이 초조해진 것은 당연했다. 결국 세 곳 중 두 곳은 가격 파괴로 맞불을 놨고, 나머지 한 곳(D당구장)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상계시장 도로변 건물 3층에 있는 B당구장과 건너편 도로변 2층에 있던 C당구장은 맞대응하기 위해 ‘10분 600원’이라는 플래카드까지 걸어 붙였다. B와 C사장이 뜻을 같이했는지(담합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두 곳 모두 오래지 않아 예전 수준으로 손님 수가 회복됐다. 그러나 끝까지 가격을 내리지 않고 버티던 D당구장 출입구에는 채 6개월도 안 돼 전단이 한 장 붙었다. ‘내부 수리 중 – 죄송합니다’.
당구장 전쟁 1라운드는 이렇게 정리되는 듯했다. 세 곳은 가격 파괴, 한 곳은 잠정 휴업.
그런데 2라운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폐업했겠거니 했던 D당구장이 ‘진짜’ 내부 수리 중이었던 것이다. 한참 지난 후 문을 연 D당구장은 전혀 새롭게 변신했다. 당구 재료를 새것으로 갈고, 전에는 없었던 포켓볼용 당구대도 두 대를 설치했다. 내부 벽면에 대형 거울을 달고, 천장에는 사방형 TV까지 설치했다. 만만치 않은 인테리어 비용을 감수한 것. 더욱이 동네 당구장에서는 흔치 않게 여성 종업원까지 고용했다(전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종업원은 항상 짧은 치마를 입었다). 가격은 10분 1200원을 그대로 받았다. 당시 서울 도심의 당구장이 PC방 출현으로 위협을 받으면서 대형화되고 고급화됐던 유행을 따른 것이다.
반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파괴에 나섰던 B와 C당구장은 죽을 맛이었다. 손님은 예전 수준보다 조금 많아졌지만 수익이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월세부터 걱정이었다. 도로변에서 10여m 들어가 주택가 입구 건물 지하에 있었던 A당구장과는 달리, B와 C당구장은 도로변에 있었다. 당구대도 10~13대 정도 들어가는 넓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임대료부터 차이가 있었다.
두 곳 모두 영업한 지 7~8년이 됐던 곳이기 때문에 시설 면에서도 A당구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더욱이 2002~2003년은 건물 하나 건너 PC방이 들어선 시기. 젊은 손님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B와 C당구장은 6개월~1년도 지나지 않아 가격을 원위치해야 했다. 결국 B당구장 주인은 지난해 초 PC방으로 전업했다(참고로 PC방으로 전업한 이곳은 전업 당시에는 꽤 장사가 잘 됐지만 역시 인근에 프랜차이즈 고급 PC방이 들어서면서 고전하고 있다). 또 C당구장은 폐업한 뒤 그 자리에 개척교회가 들어섰다.
반면 새롭게 변신한 D당구장은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기업으로 말하면 제2 창업에 성공한 셈이다. 이후 A당구장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이나 젊은층이 모였고, D당구장 손님은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비싸더라도 시설 좋은 곳에서 당구를 즐기겠다는 손님이 늘었던 것이다(이때 당구 이용객들은 ‘비싸도 안 물리면-게임에 지지 않으면- 되니까’라는 심리를 갖는다). 전쟁이 끝나고 4년 후인 현재 이곳에는 A당구장과 D당구장만이 성업 중이다.
무엇이 시장경제인가
상계동의 당구장 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원가 경쟁력이 있었던 A당구장이 가격 파괴를 선언했을 때, B와 C당구장이 재빨리 고급화를 선언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오히려 눈 딱 감고 가격을 600원보다 더 낮은 400~500원으로 내려 죽기살기로 버텼다면 어떻게 됐을까. 청소년을 꼬드겨 A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게 하고 경찰에 신고해(현재는 청소년도 당구장 출입이 가능하다) 영업정지를 먹였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고급화로 변신한 D당구장과 같이 B와 C당구장 모두 과감한 투자로 고급화 경쟁을 했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사양산업에 과감히 재투자한 D당구장은 장기적으로 옳은 결정을 한 것일까.
무엇이 답인지는 단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모두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경쟁했고, 소비자의 발길을 잡은 자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저 처지에 맞는 전략대로 경쟁하다가 전업을 하건, 폐업을 하건 성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시장의 상인들조차 체득하고 있는 시장경제를 우리 기업들은, 정부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완전한 민간기업인 SK텔레콤은 정부 허락 없이는 요금을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한다. 손님이 적다는 이유로 정부의 보호를 받아 온 LG텔레콤은 틈만 나면 정보통신부로 달려가 우는 소리다. 외국 통신업체는 국내에서 서비스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무엇이 시장경제인가.
그리고 1차의료기관에서 가격파괴를 선언하고 나서는 경쟁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 얼마전 치과계열에서도 저가형 임프란트로 시장 교란행위가 일어나면서 치과협회랑 모 치과 체인이 법정 공방을 벌이고 결국에 치과 협회가 패소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가격파괴는 시대의 흐름이자 어느 시대 어떤 산업에도 있어왔던 사업 전략중의 하나일뿐일까? 앞으로 의료계에서도 이러한 일이 지금도 있고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설마 그런 일이 지금도 저가인데 라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대책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