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잡설

예수님의 12제자들의 무덤이 있는 곳

by 연쇄살충마

예수의 12사도 중 1사도 베드로 | Petrus


베드로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곳은 1939년 교황 비오 11세가 사망하면서 그의 시신을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할 때 중앙 제대 밑 갈라진 벽 틈에서 발견됐다. 그 무덤에는 150년경에 만든 천개가 세워져 있었고, 그 옆 벽에는 그리스어로 "Petros eni", 즉 "베드로가 여기 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49년 8월 이 무덤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발굴된 유골은 금실로 수놓은 자주색 천에 정성스레 싸여 있었다. 조사 결과 유골은 1세기경 골격이 큰 60대 중반 남자의 뼈로 밝혀졌다. 참고로 베드로는 60대 후반의 나이로 순교했다고 한다. 1950년 12월 23일 비오 12세는 발다키노(천개) 아래의 지하실 공간에서 베드로의 무덤을 확인했다고 공표했고, 1968년 6월 26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여기서 발견된 유골이 베드로의 유해로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발표한 후 그다음 날 처음 발견된 자리에 다시 매장했다. 2013년 11월 24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3년 신앙의 해 폐막 미사에서 베드로의 유골을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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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hroQYJ6jjn2x2pmB7


예수의 12사도 중 2사도 안드레아스 | Andreas


한때 바티칸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안드레아의 머리가 성유물로 봉안되어 있었다. 원래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었으나 357년 콘스탄티우스 2세아카이아 지역의 파트라이로 옮겨졌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동생이자 모레아의 전제 군주였던 토마스 팔레올로고스가 1461년 로마로 망명하면서 안드레아의 머리를 가져가 교황 비오 2세에게 선사했다. 이슬람에게 넘어가서 훼손당하는 것보다는 낫긴 하지만. 그때부터 줄곧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졌던 두개골은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정교회와의 공존과 화해를 위해 그리스 파트리스로 반환해 지금은 바티칸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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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WZmixRSApw2KNPjF9


예수의 12사도 중 3사도 대야고보 | Jacobus Maior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행방이 묘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9세기 즈음에 하늘에서 한 별빛이 내려와 숲속의 한 동굴을 비추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가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야고보의 유해는 에스파냐의 서북부 지역 갈리시아의 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7]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당시 국왕 알폰소는 그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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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Jrm5s5oKUpE2R9xq9


예수의 12사도 중 4사도 요한 | Joannes ;


사도 요한의 무덤 ; 튀르키예에 있는 에페수스를 가려면 거쳐야 하는 셀축이라는 도시에 옛 성당의 페허가 있는데, 이 성당 자리에 "성 요한의 무덤"이라고 쓰여있는 비석이 있어서 에페수스를 들리는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셀축은 과거에는 아야술룩(Ayasuluk)이라 불리던 한적한 마을이었으며, 더 이전에는 에페수스의 근교로 여겨져 왔는데, 동로마 제국 시기 들어 사도 요한의 기념 성당을 조성해 상당한 규모의 성당이 들어섰고, 사도 요한의 무덤은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본당 우측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다 성당은 14세기 초기에 지진으로 회생 불능의 손실을 입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만 투르크군이 이곳을 점거함으로써 재건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전승이 전해졌고, 무슬림들도 이곳을 참배하고 있다. 위치 자체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 볼 수 있는 비석은 1950년대에 새로 놓인 것이다.

https://maps.app.goo.gl/xL8r4jFsqqg7i5Tu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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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12사도 중 5사도 필리포스 | Philippus 튀르키에 파묵칼레 근방 순교


https://maps.app.goo.gl/S5oY5ikFX7WP8b1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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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신지는 갈릴래아의 베싸이다이며,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보인다. 성경 곳곳에 이따금씩 출현한다. 주로 그리스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 때 히에라폴리스라는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전승에 의하면 이때 나이는 77세였다고 한다. 참고로 히에라폴리스 유적 인근에 튀르키예의 대표 관광지중 하나인 파묵칼레가 위치해 있다. 히에라폴리스 자체가 파묵칼레 온천을 끼고 세워진 휴양도시였기 때문인데, 필립보 사도의 순교지 및 무덤으로 전해지는 기념성당 유적이 히에라폴리스 북서쪽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동로마 제국 시절에 세워진 건물로 사도 필립보의 무덤이라는 글귀도 남아있다.

- 사후에 그의 유해는 훗날 로마의 열두사도성당의 제대 아래에 안치되었다. 이 때 성 야고보(소)의 유해를 함께 안치함으로써 두 사도의 축일을 함께 5월 3일로 지내게 되었다.

- https://maps.app.goo.gl/iTQ9hMSbWQ9wPb3z8

예수의 12사도 중 6사도 바르톨로메오 | Bartholomaeus


- 예수의 12제자중의 한명인 바르톨로메오의 무덤이 있는 성당 사후 바르톨로메오의 유해는 여러 경로를 거쳐서 10세기 말에 로마의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San Bartolomeo all'Isola)에 정착해 모셔졌으며, 그 중 두개골 일부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 이장되어 모셔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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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https://maps.app.goo.gl/FBhF52H4zRCVcssw8


예수의 12사도 중 7사도 토마스 | Thomas


가톨릭에서는 서기 52년 인도에서도 남쪽 끝 부분인 케랄라 주에까지 가서 크리스트교를 전파하다가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다.[16] 인도의 케랄라 지방은 고대부터 홍해와 교역이 활발한 지역이었고 이 때문에 현대 인도 가톨릭교회는 라틴 전례 교회와 더불어 대부분의 교구가 케랄라 주에 있으며 토마스 사도에 기원을 둔 시로말라바르 전례시로말란카라 전례를 치르는 두 동방전례 교회도 함께 모여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 두 동방전례 교회는 이름 앞머리의 '시로'에서 알 수 있듯이 크게 보아 동시리아 전례에 속한다. 인도첸나이에는 '토마스의 언덕'이라고 하여 첸나이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토마스가 순교한 장소인 동시에 그의 무덤이 안장된 성 토마스 대성당이 있다. 이교도 제사장[17]을 격노케 하여 인도 코르만델에서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1956년 3월 1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준대성전(Minor Basilica)급으로 승격되었다. 외경인 토마스 행전에 의하면 인도에서 예수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예로 팔렸다고 한다. 유명한 토마스 복음서와는 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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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QiJ6N99VgBXC47KD6


예수의 12사도 중 8사도 마태오 | Matthaeus 에티오피아 또는 시리아 순교


- 예수를 따라 여러 곳으로 선교를 하였으나, 예수가 잡히자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달아나는 한계를 보이는데,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와 예수를 다시 섬긴다. 성경에는 예수가 승천하는 것을 확인한 뒤 선교를 떠났고,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에서 사역을 하던 도중 에티오피아의 도시 나다바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 https://maps.app.goo.gl/AfTbZriY8ygSNzCt9


예수의 12사도 중 9사도 소야고보 | Jacobus Alphaei


전승에 따르면 대제사장 안나스에 의해 순교당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남서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이집트에 정착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의 오스트라키네(Ostrakine) 또는 시리아에서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신전 지붕에서 내던져지고 곤봉과 방망이에 맞아 순교했다고도 전한다. 그래서 소야고보의 상징은 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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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iTQ9hMSbWQ9wPb3z8


예수의 12사도 중 10사도유다 타대오 | Judas Thaddaeus


- 성경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은 없지만, 전승에 의하면 시몬과 함께 레반트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설교하였고, 이어 페르시아에서 설교하다가 창에 맞아 순교하였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사후 그의 유해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왼쪽에 있는 부속 제대들 중 하나인 성 요셉 제대 아래에 이장되어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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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hroQYJ6jjn2x2pmB7


예수의 12사도 중 11사도 시몬 | Simon

-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설교하다가 유다 타대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였는데, 예수에 대해 설교한 뒤 그 곳의 신상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그 속에서 악마가 튀어나왔다. 자신들이 여태껏 섬겨왔던 신상이 부서지자 흥분한 이교도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한 후 죽였는데, 시몬은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까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 무덤위치 모름


예수의 12사도 중 12사도 마티아스 | Matthias

- 마티아스의 생애와 죽음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는 모호하고 상반되기도 한다. 니체포루스에 의하면 처음에 유다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 다음에 에티오피아에서 즉 콜키스에서 선교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도로테우스에 의하면 마티아스는 히수스 바다의 항구와 파시스 강이 있는 에티오피아 안쪽에서 야만인과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바스토폴리스에서 죽은 후 태양의 신전 가까이 묻혔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마티아스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에게 돌을 맞고 목이 잘리었다고 한다. 성 헬레나가 마티아의 유골을 로마로 가지고 갔으며 일부는 로마의 성모설지전 성당에 일부는 독일의 트리어에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볼란두스는 로마에 간 유골은 120년경 살았던 예루살렘 주교 마티아스의 것이 아닌지 의심하며 때로는 두 사람의 역사가 혼동된다고 한다.

- 무덤위치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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