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 시작
한국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나는 왠지 남들처럼 그냥 취업하기는 싫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할까? 생각하던 중 알렉산더 맥퀀의 패션쇼를 접하게 되었다. 그 쇼는 맥퀸이 죽기 전 완성한 마지막 쇼였고 런웨이를 따라 카메라 로봇들이 모델들을 촬영하여 보여주는 하이테크 기술과 접목된 런웨이 쇼였다. 의상들도 독특했다. 환경오염으로 인간이 지상에서는 더 이상 살 수없고 바다에 살면서 진화된 모습을 표현했다고 들었다. 맥퀸 특유의 퇴패적 이미지는 있지만, 옷에 프린팅 된 파충류의 피부 무늬와 한 땀 한 땀 수노은 플라스틱 조각들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에일리언을 닮은 듯한 헤어스타일과 메에크업 신발 액세서리도 룩의 모든 조화를 완성시켰다. 지금은 이런 전위적인 작품보다는 실용적인 아름다운을 추구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맥퀸의 쇼는 나를 감동시켰고 나를 그가 있는 세계로 이끌기 충분했다.
이런 동기부여는 맥퀸이라는 디자이너와 같은 길을 밟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제부터 나의 목표는 그가 졸업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이라는 영국에 위치한 종합 예술대학에서 패션 석사 학위를 받았다. 특히 이 학교는 세계 3대 패션학교 중 하나다. 그리고 전 세계 패션스쿨 랭킹 1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20대 후반 늦었다 하면 늦은 나이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정적인 자세로 준비하였다. 평소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에 지원할 포트폴리오를 제작하는 것은 재밌게 할 수 있었다. 나는 패션 전공자가 아니지만 단계별로 학교에 지원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나갔다. 꼬박 1년이 걸렸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남들보다 느리다 생각하여 초조한 마음도 있었지만, 포트폴리오가 완성되고 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 유학원을 통해 영국에서 온 교수님과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의 fashion & textile Foundation Diploma 과정에 합격하였다. 해외 경험과 패션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나는 영어실력도 늘리고 대학 과정에 입학 전 패션디자인도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학교에서 원하는 영어점수를 취득해야 진짜 입학할 수 있다. 입학을 위해서는 아이엘츠라는 영어시험에서 학교가 원하는 점수를 취득해야 했다. 나에게는 포트폴리오 보다도 영어점수를 취득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이엘츠 시험은 리딩, 라이팅, 리스닝, 스피킹 4과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완전 실전 영어였다. 주어진 시간 안에 주제에 맞춰 쓰고, 읽고, 말하고, 들어야 했다. 특히 스피킹은 외국인 시험관과 독대로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이었다. 어학연수 한번 가보지 않는 내가 이런 실전 영어를 잘 할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가고 싶다는 목표는 영어에 일절 관심이 없던 내가 집요하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끈기를 만들어 주었다. 영어를 잘 가르 친다는 학원이 강남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곧바로 등록했다. 남양주에 있는 우리 집에서 매일 통학을 했다. 통학시간은 편도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통학 시간과 같은 비는 시간에는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아놓고 리스닝 시험 문재를 들었다. 안 들려도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듣고 밤늦게 까지 자율학습을 했다. 시간 안에 한 주제를 영어로 서야 하는 라이팅 시험과 처음 보는 외국인과 일대일로 대화를 해야 하는 스피킹 시험은, 문재마다 답안지 문장을 따로 만들어 툭치면 나올 정도로 외웠다. 이렇게 하면 처음 접하는 문재가 나와도 머릿속에 있는 문장들을 조합해 풀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시험에서 내 실력을 100%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시간관리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도 중요했다. 첫 시험은 결과가 좋을 리가 없다. 시험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학원에서 진행하는 모의시험도 빠지지 않고 치렀다. 영어가 부족한 나를 주의에서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무시하고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해 나갔다. 그리고 영어 점수를 취득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영국 유학이 확정되었다. 많이 기뻤다.
해외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 영국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영국에 처음 가서 적응할 곳이 필요했다. 엄마가 수소문을 하여 아는 분의 친척이 영국에 산다는 말을 듣고는 그분이 한국에 오셨을 때 만나보았다. 그리고 그분의 집이 내가 처음 영국에서 살게 된 집이 되었다. 그곳은 런던의 남쪽에 위치한 뉴몰든(New Malden)이라는 지역이다. 흔히들 한인타운이라고 부른다. 런던 중심부에 있는 학교와는 멀었지만 나의 첫 영국 생활을 시작하기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영국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워털루 역을으로 향했다. 중학교 영어책에 있던 빅벤을 실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워털루역은 많은 기차 노선이 만나는 곳이라서 사람들도 많고 기차노선도 복잡한 곳이다. 학교를 다닐 때 이곳에서 항상 환승을 하였는데 복잡한 전광판을 보며 내가 탈 열차의 플렛 폼을 항상 확인해야 했다. 워털루 역을 나오니 바로 빅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템즈강과 웨스트민스터 다리, 런던아이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보니 너무 신기했다.
웨스트 민스터 다리 위에서는 카드로 돈내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달콤한 땅콩을 파는 사람들 등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상인들이 곳곳에 있었다. 내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 먹은 것이 이곳에서 팔고 있는 달콤한 땅콩이다.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그 땅콩을 먹으면서 템즈강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내가 영국에 왔구나 라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입학을 앞두고 불안하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처음 내가 도전할 때 다짐했던 마음 그대로 간직하며 목표를 이뤄 나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