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 비록 헌법 제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휴전선 이북은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지 못한다.
현재는 휴전선으로 남북한을 구분하는데 전쟁 이전의 38도선과 비교해보면 서해안의 옹진군이 북한으로 넘어갔고 철원, 금화, 화천, 인제, 고성군의 일부가 남한으로 넘어온 채 지금까지 국경 아닌 국경선이 되어 국토를 분할하고 있다. 그러나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만큼은 6.25 전쟁 당시 섬주민들과 해병대의 노력으로 군사분계선 이남에 남을 수 있었다.
지금도 서해 해상에서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북한의 수많은 위협이 있었지만 든든한 해병대의 전투력으로 적극 방어되고 있는 서해 5도 섬 중에 가장 최북단에 있는 백령도를 여행해 보는 것을 항상 머릿속 깊이 남아있다가 올해에는 아내와 함께 서해의 최북단 섬인 백령도와 대청도(5월), 동해의 동쪽 끝 섬인 울릉도와 독도(6월)를 여행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먼저 백령도, 대청도 계획을 세우다 보니 관광지, 비용, 일정 등을 검토(렌터카, 호텔 여건 등 포함)해보니 패키지여행이 가장 효율적으로 판단하여 대청도 여행까지 포함된 2박 3일 일정의 현지 여행상품을 예약하였다
아침 일찍 자가 차량으로 출발하여 인천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다. 경인고속도로는 생각보다 차량이 많았고
인천항구 지역은 대형 컨테이너 차량 또는 화물차량들이 많이 움직이는 복잡한 도로가 많아 운전하는데 신경 쓰이면서 다소 시간이 지체되었다.
급히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라면으로 아침식사를 대충 때우고 07:30분 하모니플라워호에 승선했다.
배안에는 해병대 인원들이 많이 승선했는데 좌석에 앉아있는 모습도 질서 있게 보였다. "역시 해병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일반 여행객들은 많지 않다.
약 4시간이 소요되는 뱃길에 뱃멀미가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도착할 때까지 파도는 잔잔했고 배는 바다를 미끄러지듯이 안정감 있게 달려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배 뒤편 외부공간을 개방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닷바람도 쐬일 수 있었고 담배도 피우면서 휴식을 취할 만큼 바다의 여건은 평화로웠다(서해 뱃사람들은 오늘같이 잔잔한 바다를 "기름바다"라고 한다).
어느덧 우리가 승선한 하모니플라워호는 소청도, 대청도에 순서적으로 탑승객들을 하선시킨 후 얼마 후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섬의 모양이 "힘차게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학 모습처럼 생겼다"하여 백령도라고 불렸는데(고려 현종 9년), 백학도라고도 일컬어졌다고 한다. 1018년(고려)에 백령진, 1428년(조선)에 황해도 장연군에 속하였다. 이후 백령도는 해방 이후 대청도, 소청도와 함께 38선 이남의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에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인천에서 인천까지' 약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용기포항에서 대기하던 버스 운전자겸 가이드인 분들의 걸쭉한 농담을 하면서 "이렇게 편안하게 오신 분들은 오래간만이라고...".
어제 오신 분들은 모두 뱃멀미로 얼굴이 노랬다"라고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바로 숙소로 이동하여 짐을 풀고 인근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아구와 콩나물)를 하고 바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신속한 이동과 여행은 패키지의 장점 중의 하나이다.
용기포 등대 해안은 과거 백령도에서 불을 밝히던 등대에 올라 갈 수 있는 해안으로 6.25 전쟁 때에는 피난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등대해변(원산 해변)은 규암이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생긴 다양한 지질(해식동굴, 사이치 등) 구조를 볼 수 있다고 한다(안내판 문구 인용).
실제로 해식동굴과 해식 아치 사이로 보이는 규암 절벽과 멋진 암석들은 또 하나의 절경이다.
사곶 해변은 언뜻 보면 일반적인 해수욕장과 같이 모래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아 이루어져 발로 밟으면 단단한 느낌을 받는다. 그 단단함이 콘크리트 바닥과 같다. 이런 지질 특성으로 6.25 전쟁 당시 비상활주로로 이용되기도 하였고 지금도 해수욕장으로 쓰이지만 별도 공항식별 부호(K-53, RKSE)가 있는 천연비행장이다.
백령도에는 1896년에 설립된 중화동 교회가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장로회 교회라고 한다. 역사를 보면 1832년 7월, 네덜란드 귀츨라프 선교사가 왔었고 1865년 9월에 영국의 토마스 선교사(훗날 대동강에서 순교)가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섬사람들에게 성경이 건네 졌다고 한다. 이 교회가 설립 된 지 100년이 되도록 백령도 전체의 복음의 땅으로 변화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한다(기독신문 기사 일부 인용).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교회가 선교사의 활동도 있었지만 섬사람들 스스로 건립한 교회라는 점이다. 교회 옆에는 백령기독교역사관을 건립하여 최초 백령도 복음 전파의 모습, 초기 중화동 교회의 모습 등 각종 복음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우리 부부는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유럽의 유명 성당을 관람하듯이 찬찬하게 둘러봤다.
2010년 3월26일 서해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인 'PCC-772 천안'(1200톤급)이 침몰했다. 26일 밤 9시22분께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한창인 백령도에서 남서쪽으로 1.8㎞ 지점을 순찰하던 천안함의 선미에서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해군장병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이 46명은 영결식이 치러진 이후 국립공원 현충원에 안장됐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 과정과 함수와 함미 수색 인양과정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잇따랐다. 3월30일에는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수색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했다. 4월2일에는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다음백과 일부 인용).
천안함용사 46용사위령탑은 피격위치가 바라다 보이는 2.5km 지점인 백령면 연화리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부부는 위령탑 입구에서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사서 위령탑으로 올라갔다.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은 뾰족한 형태의 주 탑과 보조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 탑은 높이 6.7m의 기둥 세개가 서로 받치고 있는 현태로서 이는 항상 서해를 응시하며 우리 영해, 영토, 국민을 굳건히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보조탑 정면에는 '천안함 46용사'의 얼굴을 형상화했으며 양 측면 보조탑에는 이근배 시인이 헌시한 '불멸의 성좌여, 바다의 수호신이여'추모시를 비문에 새겨 넣어 '천안함 46용사'의 고귀한 희생을 위로하고 있다(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안내, 인용).
두무진은 "뾰족한 바위들이 마치 머리털 같다"라고 하여 두모진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두무진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두무진은 백령면 연화리에 있는 명승지로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고 유람선이 정박한 포구는 아담하고 여러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두무진 지역은 주로 사암과 규암으로 이루어진 암석들로 이루어졌는데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해 깎이고 부서지며 이겨낸 자연의 인고를 보듯이 대자연의 섭리를 느낄 수 있는 비경이다. 오늘날 금강산의 만물상과 비견되어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리고 있다. 두무진 입구에서 선대암까지 총 거리 1.5km 거리로 걸어서 약 30분이 소요된다. 주로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어서 이동하기가 편하고 천혜의 절경을 배경 삼아 인증 사진을 찍으면 너무 멋있게 나온다.
우리는 17:00경 두무진 해상관람을 시작했다. 유람선을 타고 약 45분이 소요된다. 백령도 관광의 필수코스로서 최고의 비경인 두무진은 장엄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을 감상할 수 있는 해상관람길이다. 기암박물관이라도 불리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이 만든 독특한 바위들이 늘어서 있으며 거친 파도 앞에서 위풍당당하게 솟은 기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코끼리바위, 신선대, 선대바위, 형제바위 등 온갖 모양의 바위가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다(09 두무 비경길 안내문 인용). 선장님이 출발과 함께 유머스럽게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선미에 서서 끝없이 펼쳐지는 풍광을 쉼 없이 사진셔터를 누르고 있었고 아내는 선내에서 편안하게 앉아서 선장님의 해설을 꼼꼼하게 들으며 창밖의 멋진 절경을 눈에 담고 있는 모습이다.
두무진 유람선 해상관람을 마치고 포구에 있는 해당화 횟집으로 와서 저녁식사를 했다. 버스 운전사 겸 가이드분이 지정한 횟집이다. 이 식당 이용을 원하지 않는 여행객들은 전용버스를 이용하여 숙소로 향했는데 우리 부부는 음식값이 조금 비쌌지만 희망자 파악할 때부터 이 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패키지여행시 가이드의 본래 수입이라고 생각함).
횟집 2층에 우리 여행팀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메뉴는 모둠회로 백령도 자연산이라고 한다. 하루의 피곤을 소주 한잔으로 푸는데 밖에 비현실적인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환상적으로 지는 핑크핏 석양에 저 멀리 장산곶이 보였는데... 점점 검게 변하는 북녘 땅은 "내일 밝은 날 다시 봐요"라고 숨는 모습에 무척이나 애처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