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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난희 Aug 27. 2023

1) 혼자 떠나는 여행, 템플스테이

50대 훈녀생정

큰 용기를 냈다. 으음... 용기라기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가고픈 유혹을 뿌리쳤다고 해야 맞다. 늘 산행을 같이 하는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꾹 참고 혼자서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 나이가 들어도 홀로 나서는 일은 싶지 않다. 아마도 홀로서기가 덜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50대도 얼마 안 있으면 끝나가는데 지금이야말로 혼자 떠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던가.


삼복 무더위에 일주일간의 여유가 생겼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그래도 한 번 가봤던 곳을 택했다. 충남 당진의 영랑사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 연일  폭염 주의보, 경보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데 괜히 나섰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나서고, 시작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산사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방앞 평상 테이블에 책을 두고 앉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뜨거운 햇빛이 무색하게 시원한 바람이 드나든다. 예상치 못한 시원한 바람을 만났다. 땡볕에도 산사뒤의 숲은 햇빛을 가려 기온을 낮춰준다.  


평상에 앉아 일상의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책을 읽었다. 집 식탁에 앉아 책을 읽을 때는 오래 집중하지 못한다. 읽다 말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식사 메뉴 고민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러다 보면 정작 집에서는 책 몇 장 넘기기 어렵다. 요즘 한창 TV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눌어붙은 남편 덕에 덩달아 옆에 앉아  합세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사에 오니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끝. 남이 차려주는 까지. 혼자 오길 잘했다고 나에게 거듭 칭찬을 해주었다.


혼자라서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책을 펼칠 수 있고, 혼자라서 아무 때나 산책길에 나설 수 있다.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책을 펼치기보다는 수다가 먼저였을 것이다. 또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내가 나서고 싶은 순간에 산책을 나설 수 있겠는가. 시간을 맞춰야 하고 가다가 어디에서 돌아와야 할지도 이야기 나눠야 한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혼자 있으니 아무 수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다. 공양시간에도 혼자 가서 혼자 먹으니 편하다.


혼자 있으니 낯선 이들이 말을 걸어온다. 공양간에서는 공양보살님이 냉장고에 따로 들어있는 묵은지볶음을 먹어보라고 통을 내민다. 메뉴레시피도 알려준다. 묵은지볶음에는 꼭 콩기름을 넣어야 맛있단다. 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과 그곳의 향이 묻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관광이 아닌 진짜 여행이 될 수 있다. 혼자 심심하다 싶을 때 누군가와 말 마디면 족하다.


저녁을 먹고  평상에 앉으니 또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산사의 역사에 대해,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면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게 혼자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더 충만한 하루하루가 될 것이다.


저녁을 먹고, 아침을 먹고 산사를 품고 있는 삼선산의 황톳길을 걸었다. 길가에 잘 다져진 황톳길은  길지고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에 위아래를 바라보고 걸을 수 있도록 산 중턱에 난 길이다.  황톳길 아래로는 수목원의 꽃과 나무들이 펼쳐진다.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걸으니 발바닥부터 올라오던 마음의 열기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듯하다.  산사에 와서 고즈넉해서 좋았지만 가까운 곳에 황톳길과  삼선산 수목원이 있어 더 좋았다.


혼자여도 충분히 충만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점심 공양으로 자장면을 먹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당진의 서점 '오래된 미래'에 들러 두 권의 책을 샀다. 그리고 내 책 <길심 씨의 인생 여행> 두 권을 두고 왔다. 감사하게도 책방지기님이 흔쾌히 사주셨다. 차 속에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 다음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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