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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dcat혜진 May 14. 2016

교과서 안의 '정치'란 판타지인가?

교과서 안의 '판타지'를 공부했던 모두에게

20160513





오랜만에 중등 사회 교과서를 잠깐 살펴본다. (오랜만이 아니라면 죄송하다. 공부 같아서 미안하다.)  


교과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을 하자면, 현재 중등 교과과정에서 사회책은 ‘사회1’과 ‘사회2’로 나누어져 있으며, 3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다, 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현재 중등 1학년들은 2학기가 자율학기제라서 ‘사회1’의 교과과정은 학교에서 재량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튼 그 중, 오늘 내가 펼쳐 본 것은 ‘사회1’의 내용 중 ‘정치 생활과 민주주의’라는 단원이다. (이런 설명은 잠깐이다. 이 글은 그냥 내 생각을 말하는 거 맞다.) 교과서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보통의 문제집에 정리되어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1. 정치의 의미

① 좁은 의미: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이 국가와 관련된 법률이나 정책을 결정하거나,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예)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

② 넓은 의미: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구성원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활동, 한정된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 예)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민회의



알겠지만, 저 부분이 중요하다. 결국 정치란 넓게 보면 우리의 일생생활에서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활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통의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란? 정치인들이 하는 활동이다. 즉, ‘좁은 의미’인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정치의 기능이다. 여기서 또 잠깐, 정치의 기능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2. 정치의 기능

① 사회통합
② 사회구성원의 행복 증진
③ 사회발전의 방향 제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학문적이며 이상적이다. 그래, 맞다. 교과서의 정치는 이렇게 ‘교과서적’이고, 현실적인 부분들은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교과서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 전부 저렇게 설명되어 있다. 교과서란 모든 학문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내용들을 익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가장 기본적인 개념조차 모르고, 기능조차 잊고 산다면 어떻게 일생동안 정치가 우리를 좌지우지 하는지는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그럼 이제 위에 적혀 있는 뜬구름 같은 저런 몇 마디의 글이 아니라 실체를 드러내서 잘 생각해보자.


정말 나와 관련된 ‘정치’란 무엇인가.


.

.

.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아주 쉽게 알게 된다. ‘정치’란 타인의 일이 아니라 당장 내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을 만드는 일이고, 내가 받는 교육의 방향이고, 내 통장의 잔고가 왔다 갔다 하는 일이며, 내 일자리와 세금, 노후에 대한 대비와도 연관이 있는 일이다. 병원, 약국, 관공서, 학교, 심지어 내일 당장 출근할 때 타는 버스노선까지. 모든 곳곳에 ‘정치의 실’은 가늘고 길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가장 쉴 새 없이 작동중인 소름끼치는 네트워크 인 것이다.


그럼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치’라는 단어로 연결된 일상생활에서 나만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면 어떨까. ‘내가 몰라도 세상은 돌아가더라.’라는 말은 다시 생각하면 무서운 말이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는 혹은 이미 진행된 무언가가 지금이나 미래에 나에게 악영향을 준다면 어떨까. 그리고 지금 당장의 이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지 못하고, 대충 덮어둔 채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럼 앞으로 우린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쉽지만, 교과서에는 그 해답이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교과서는 정치의 개념과 기능, 목적 따위를 알려줄 뿐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니다. 사실은 나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교과서적’인 내용으로 설명하자면,


“직접 민주정치였던 고대와 제한적이었던 근대를 거쳐 현대는 보통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간접 민주정치를 하고 있다. 간접 민주정치는 대의민주정치라고도 불리어진다.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현대에서는 대표자를 직접 선출하여 국가의 의사 결정과 운영을 맡기는 것인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한계점이 발생하는데, 국민은 선거 이외의 정치 과정에서 소외되기 쉽고, 또 대표자로 선출 된 사람이 잘 못 된 행동을 할 때 즉각적인 처분이 힘들다. 그래서 보완적으로 국민투표, 국민 소환, 국민 발안과 같은 직접 민주정치 요소를 도입하였다.”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머리가 아프다. 써 놓고 보기만 봐도 딱딱한 이야기들은. 그래도 교과서니까. 그리고 사실 교과서대로 산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니까. 그래서 저렇게 적어봤다. 적어본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교과서대로 되어 있지 않겠지만…. 흔히들 그런다.


현실은 교과서랑 달라. 그게 글처럼 쉽냐?


우리가 학교 책상 앞에 앉아서만 봤던 모형이나 그래프, 사진이나 그림들은 막상 부딪치는 현실에서 더 큰 불안감과 낯선 긴장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니까.


한 가지 더, 교과서에 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인구 변화와 인구 문제’ 라는 단원에 인구 이동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알록달록한 선으로 세계지도 여기저기에 화살표가 그어져 있는데, 색깔에 따라 인구 이동의 원인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거기에는 ‘난민의 이동’도 설명 되어 있는데, 전쟁 또는 분쟁으로 인한 ‘난민의 이동’은 ‘정치적 이동’으로 분류 된다.


‘그게 뭐?’ 할 수도 있겠지만 위의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면 여기서 극단적인 결론이 도출 될 수도 있다. 정치가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활동’인데, 그 정치가 올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그러니까 대립과 갈등이 조정되지 않고,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가게 된다면 우린 ‘전쟁’이나 ‘분쟁’이 일상인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세계의 내전이 있는 국가들을 기득권자들의 욕심이나 혹은 종교 분파간의 권력다툼 등을 원인으로 여기기 쉬워서 우리와는 다른 세상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저 대립과 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정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극단적 해결방법으로 만들어진 무력이나, 강압에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린 소름끼치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요, 지금 내 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이다. 돌아볼 때는 이미 늦은 때일 수도 있다. 뒤만 보면서 앞을 걱정 할 수는 없는 일지만, 앞만 보면서 뒤는 돌아보지 않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자면, 교과서에는 해결방법이 나와 있기도 하고, 나와 있지 않기도 하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그건 바로 ‘관심과 참여’이다. 이 또한 ‘교과서적’ 단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단어야 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해결방법이며,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하지만,  ‘관심과 참여’라는 책 속의 단어로서 끝나버린다면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해결 방법이 나와 있기도 하고, 나와 있지 않기도 하다고 한 것이다. 우리의 ‘관심과 참여’라는 단어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교과서에 ‘갇혀 있는 글’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결국 교과서 밖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우리’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종종 교과서를 판타지로 분류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상상속의 일들을 적어두는 것이 판타지인데, 우리는 십년 넘게 교과서를 배우면서도 그 교과서를 현실이 아닌 상상속의 일처럼 만들어 버리고 있다.


바라는 이상향을 책에 적어두고 배우면서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현실은, 어쩌면 학교라는 틀 안에서 나온 후 학생들이 제일 먼저 맞이하게 되는 가장 고된 좌절감이 아닐까.


더 이상은 교과서에 적혀 있는 현실의 모든 일들이 이상향이나 판타지가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되는 그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날들이 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모든 책은 즐겁다. 모든 글로 배우는 즐거움은 항상 옳다.

그러니 교과서도 ‘공부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저 ‘배움의 즐거움’으로 알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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