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널 사랑하지 않아'

by Kidcat혜진

20160528






소란스러움. 한 낮의 열기가 가시고 내려앉은 어둠만큼 짙은 소란스러움이었다. 아파트 단지 앞을 에워싼 학생들의 억센 말투와 허세 가득한 대화들. 이 시간이면 반복되는 일상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탄 채 서로의 주변을 떠나지 않은 그 아이들이 마냥 낯설어서 멀리서 바라보았다.


잠깐 할 말이 있다는 그에게 우리 집 앞으로 오라고 한 것은 내심 예상하고 있던 장면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헤어지자.”

“…….”

“그 말 하려고 한 거지?”

“…….”




할 말이 있다고 먼저 불러낸 사람은 그였지만, 그 이야기를 입 밖으로 먼저 낸 사람은 나였다. 대답이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또 옆으로 시선을 돌려 우리와 상관없는 다른 이들을 살핀다.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파하는 시간일 텐데,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저렇게 서로에게 뭔가를 기대하며 뜻 모를 의지를 하고 있는 그들. 문득, 초여름에 허공에 뭉쳐있는 하루살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빙글거리며 살피고, 항상 뭉쳐 있고, 빛나는 무엇이든 앞에 있다면 뒤 돌아보지 않고 떼로 달려드는 아직 상처받지 않은 영혼들.




“괜찮아.”

“…….”

“괜찮을거야.”




나에 대한 말인지, 그에 대한 말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도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누구든 먼저 잡고 있던 그 손을 놓아버린다면, 다시는 잡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사랑은 분명 변했다. 누가 먼저 변했다라고 할 수 없지만. 아니, 아니다. 사랑이 변했다면 이렇지는 않을 거다. 우리 사이에 있던 그 감정이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처음부터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러니 변한 것은 맞다.


‘우리’라는 관계를 엮어주던 그 감정이 사라졌으니,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변했다.

나도, 그도, 우리도.



“나도 잘 지낼게.”

“그래….”




한 마디를 덧붙이자 결국 그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드디어 우리는 완벽하게 두 손을 놓은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하지 않는 때’가 온 것이다.




“조심해서 가.”

“너도. 잘 들어가.”




마지막에 주고받는 말이 데이트 후에 서로에게 했던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살짝 우스웠다.


벤치에서 일어나 걸어가며 아직도 상처받지 않은 어린 영혼들이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며 서로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그들은 뭘 위해서 이렇게 밖에서 배회하는 것일까. 딱히 목표도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그들의 부모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귀한 자식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그렇게 단련되지 않은 순수함이 낯설게만 보였다.




저들은 나처럼 단련된 감정 앞에서 무슨 표정을 지을까.

저들도 오늘의 ‘우리’와 같은 날이 오기는 할까.

아니지, 이제 ‘우리’가 아니라 ‘그’와 ‘나’지.

저들도 ‘그’와 ‘나’ 같은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럼 그 때도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과 단련되지 않은 감정들로 버틸 수 있을까.

아니겠지. 나도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던 그 마음들은 하나 둘 떠나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집에 가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해야 할 것 같다.

여름이 너무 빨리 왔다.




무슨 말을 할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개만 떨구는 나
그런 날 바라보는 너
그 어색한 침묵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어반자카파 -널 사랑하지 않아- 중





초여름의 하루살이와 어린 영혼들과 어반자카파의 노래는 참 잘 어울립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