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오늘 밤은 평화롭게'

by Kidcat혜진

20160623





금동이가 아팠다.


그녀에게는 하나 뿐인 식구이자 함께하는 친구,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한 유일한 동거묘. 밤새 토하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걸 지켜보며 그녀는 안절부절 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응급처치를 하고, 진찰과 검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이런 적이 전에도 있었나요?

-아니요. 한 번도 없었어요.

-많이 놀라셨겠네요. 딱히 특별한 점은 없는데,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 혹시 최근에 환경적 변화는 없었나요?

-글쎄요. 딱히. …제가 한 달 전부터 야근 때문에 늦게 들어왔는데, 그것도 변화일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죠. 고양이는 생각보다 예민한 동물이거든요. 특히 함께 오랫동안 생활했다면….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를 보며 그녀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마른침을 삼키며, 아직도 기력이 없어 눈을 감은 채 누워만 있는 금동이를 봤다. 결국 하루 동안 입원을 시키기로 하고, 혼자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그 무거운 발걸음이 회사를 향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회사에 전화를 해서 조금 늦겠다고 했지만, 몇 달 전부터 준비한 프로젝트 때문에 부서는 온통 예민한 사람들뿐이었다. 특히나 승진 기회가 걸려있는 팀장은 자신을 얼마나 쪼아대는지, 오늘도 조금 늦겠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하자마자 ‘못 오는 건 아니지?’부터 묻는다.


회사까지 택시를 탈까 했지만, 너무 먼 거리라 엄두가 안 난다. 동물병원에서 지출한 돈은 이번 달 생활비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다. 어차피 좀 늦는다고 전화도 했으니, 그냥 바로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가져갔는데, 들리는 말이 늘 듣던 말이 아니라서 당황스럽다. 다시 해봤지만 결과는 같다. 무안함을 감추고 허겁지겁 지갑을 열어 현금으로 내려는데, 천원짜리가…, 한 장. 동전이…, 동전이…, 순간 움직이는 버스와 함께 지갑이 떨어지며 와르르 쏟아지는 동전들. 모든 승객들의 시선이 온 몸으로 쏟아진 기분이다. 낭패감은 그녀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식간에 전염된다.


바닥으로 떨어지며 굴러간 동전들을 줍기 위해 쪼그리고 앉다가, 그냥 주변에 여기저기 흩어진 동전들만 대충 주워 얼른 계산을 하고 뒤로 갔다. 오늘따라 왜 이럴까. 수습한 동전이 맞는지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데, 내리기 직전에 어떤 아주머니가 어깨를 치며 그녀의 것이었던 동전 두 개를 건네준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미웠다.



-이대리님, 팀장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옆자리에 앉는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다. 그와 동시에 팀장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크게 울린다.



-이 대리, 왜 지금 와? 팀 회의시작 10분이나 딜레이 된 거 알아, 몰라?

-죄송합니다.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회의 준비는 이미 다 해서, 영미씨한테 넘겨뒀는데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책임자가 이대리지, 영미씨야? 지금 모든 직원들이 이 일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어떻게 책임 의식이 눈꼽 만큼도 없어?



쪼아대는 그 정 없는 말투에 넌덜머리가 나지만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없는 그녀였다. 아침에 늦는다고 전화 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반응은 아니었는데, 아마 윗선에서 뭔가 단단히 꼬여서 내려온 모양이다. 팀장들 회의에서 뭔가가 뒤틀리면 그 화풀이를 그녀에게 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하다.



책임의식이 눈꼽 만큼도 없었다면 안 왔겠지, 이 쪼다야.

내가 우리 금동이도 아픈데 여기까지 왔어, 이 나쁜 놈아.

네가 매일 갑자기 야근시켜서 우리 금동이 아픈거라잖아, 이 !$$@%$!!!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겨우 참았다. 아침에 금동이를 안고 뛰어나오느라 대충 신고 나온 운동화 앞코가 시커멓다. 그 시커먼 운동화 앞코에 금동이 얼굴이 그려진다. 이번 달 금동이 병원비와 약 값, 생활비, 사료 값, 월세…, 얼룩덜룩한 그 시커먼 운동화 코를 보면서 이상하게 울렁거리며 시큰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다.



-괜찮으세요? 오늘 팀장님 출근하자마자 부장님한테 깨져서 그런가 봐요.

-한 두 번이야? 괜찮아. 늦어서 미안해, 영미씨.

-아니예요. 고양이는 괜찮아요?

-괜찮아. 오늘은 병원에 입원시켜뒀어.



팀장의 한풀이 같았던 그 화풀이가 끝나고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을 때, 그제야 제 옆자리 후배가 물어본다. 입사 1년차 앞에서 쪼그라든 모습으로 있을 수 없으니 의연한 척을 하는 그녀다. 그렇지만 모니터에는 여전히 얼룩덜룩한 그 시커먼 운동화가, 눈을 감은 금동이가 오락가락. 화장실에 가서 차가운 물에 손을 씻고, 정신을 차리려고 볼을 세차게 두 번 때렸다.



오늘따라 복사기는 잼이 많아서 서류 복사를 몇 번이나 다시 해야 했다. 여전히, 오락가락.

오늘따라 회사의 점심은 알레르기가 있는 새우볶음이 있었다. 여전히, 얼룩덜룩.

오늘따라 팀장은 화풀이를 한 시단 단위로 하는 것 같다. 여전히, 시커먼 운동화.

오늘따라 자판기 커피는 동전을 삼키고 뱉지 않는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금동이 얼굴.



팀장이 눈에 불을 켜고 있어서 결국 또 퇴근시간이 한 참을 지난 후에야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늦은 퇴근, 하필 한 바탕의 소나기가 지나가는 그 순간에 그녀는 퇴근을 했다. 지나가던 차에 고여 있던 물이 튀었고, 운동화는 이미 반 이상이 젖어버렸다. 젖은 채로 버스에 탔는데, 또 신용카드는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조심조심 동전을 넣고 뒤로 가서 앉으려다가 포기했다. 옆 자리의 사람에게 젖은 옷이 폐가 될까봐.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 밤, 그러나 한껏 젖어있는 그녀의 얼굴. 열려진 버스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 한 자락이 불어왔다. 하루가 참으로 길었다. 그녀도 금동이처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집으로 가지 않았다. 동물 병원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많이 좋아졌으니 오늘 데리고 가도 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금동아, 이제 아프지 마.



집에 와서 질퍽거리는 시커먼 앞 코의 운동화를 벗고, 현관에 대충 세워뒀다. 운동화에서 물방울이 뚝뚝.



-오늘 누나 진짜 많이 힘들었어.



집으로 돌아오자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방석을 찾는 금동이. 그녀의 옷자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진짜야. 오늘 팀장이…, 아니…, 버스에서…, 아니, 오늘 금동이 네가 아파서…, 내가 오늘, 아니, 그게 아니라….



몇 평 되지 않는 그녀의 공간에서,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결국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다. 뚝뚝, 어딘가에서 또 물이 새어나왔다. 마음의 봇물이 터지듯이 그제야 툭. 천장에서 고여 있던 빗물이 떨어지듯. 허공에서 날리던 눈물이 점점 가까워지자 금동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꼬리를 뒤척이더니 몸을 일으켜 주저앉아 우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물기어린 그녀의 몸이 낯선 듯 코를 대다가 결국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그저 옆에서 그런다.


…냐옹.


그녀의 창밖으로 얼룩덜룩한 빛들은 오락가락,

젖어버린 마음의 빗방울들은 뚝뚝 떨어지는 밤이었다.




오늘 엉망이었나요? 유난히 힘들었나요?
뭐 하나 되는 일 없이 하루를 잃어가나요?

수없이 많은 날 중에 그저 그런 날이 있죠
시끄러운 이 하루만 지나면 괜찮을 테니

오늘 밤은 평화롭게
오늘 밤은 울지 않게
아무 근심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살며시 웃으며 잠들길
편히 쉬어요 Good Night

눈물이 많아졌나요? 가끔 그럴 때가 있죠
견디려 애쓰지 말아요. 내일은 괜찮을 테니

오늘 밤은 평화롭게
오늘 밤은 울지 않게
아무 근심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살며시 웃으며 잠들길
편히 쉬어요 Good Night


데이브레이크(DAYBREAK) -오늘 밤은 평화롭게- 중





수 많은 날들 중 하루였겠죠.

살며시 웃으며, 오늘 밤은 평화롭길. : )


매거진의 이전글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