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by Kidcat혜진

20160724





아내는 검소한 사람이다.




- … 들리세요?




결혼기념일을 기념해서 온 해외여행에서 조차도 여행 가방에 대부분의 것들을 챙겨 올 정도로. 촌스럽다고 아무리 타박을 해도, 나가면 다 돈이라고 아등바등 짊어지고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은 내 탓 같기도 해서였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자랑할 무언가를 해준 적도 없었고, 요즘의 보통 남편들처럼 다정한 적도 없었던 나라서. 그런 내가 꽃다웠던 20대 초반의 처녀를 저렇게 만들어버린 건가 싶어서 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뒀다.




- 빨리 치료받으셔야 해요. 네?!




아내는 고마운 사람이다.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꽃 한 번 사준적도 없었지만, 나의 생일에는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매번 차렸던 사람이다. 자신의 생일은 종종 잊고는 했지만, 부모님의 생신과 제사 날은 나보다 더 잘 기억했다. 우리 가족, 이웃, 친척까지, 아내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만, 시간이 제법 흐르고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이 매우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 로, … 가셔야 해요. 네? 제 말 알아들으시겠어요?




아내는 대단한 사람이다.


검소하게 생활을 해도 밖에서는 누추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젊을 때는 집안일만 했지만, 나중에는 파트타임으로 마트에서 일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집안의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한 번도 어긋나거나 떨어진 적 없는 내 셔츠의 단추처럼, 항상 가지런히 놓여 있던 거실 탁자 위의 리모컨처럼, 냉장고에서 늘 떨어진 적 없는 생과일주스처럼. 그 모든 것들이 제자리였다. 그것이 대단한 진리인 것 마냥.




- …이 시겠지만…, 일단은…, 받으셔야 해요. ……예?!




아내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먼저 청혼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평생 동안 자랑삼아 이야기했던 사람이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고마웠던 순간이지만,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은 없었다. 부모님의 소개로 선을 본 남자, 그저 무뚝뚝하고 살갑지도 않았던 남자. 그런 남자가 뭐가 좋아서 청혼까지 먼저 한 거냐고 내가 아니라 딸이 물었을 때 아내는 딱 한 마디 했었다.




“잘 생겼으니까. 그리고 말수가 별로 없는 편이 더 매력 있게 보였거든.”




아내는…, 늘 행복한 사람이다.


언제나 모든 일들을 감사하며 지냈던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의 셔츠가 세일을 하면 한껏 웃으며 좋아했고, 어쩌다가 백화점에라도 같이 가주는 날이면 그 날은 하루 종일 얼굴을 찡그리는 일도 없었다. 찌개가 맛있다거나, 반찬이 입에 맞아서 칭찬이라고 하면 설거지하는 내내 노래를 불렀다. 딸이 독립을 하고 둘이 남게 되었을 때, 함께 해외여행이라고 한 번 가자고 말을 하자 너무 행복하다며 울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확인 부탁드립니다.

- ……요.




저기서 저렇게 흰 천에 덮여 누워있을 사람이 아니다.


지난 일주일 내내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이 진짜 외국인지 확인하며 매일 행복을 더하던 사람이다. 눈앞에 있는 풍경이 몇십 년 동안 보아오던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아니라서, 꿈인 것 같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던 사람이다. 노점에서 마음에 들어하던 팔찌 하나를 몰래 사서 레스토랑에서 주었을 때, 깜짝 놀라며 내 얼굴과 그 선물을 몇 번이나 번갈아 바라보던 사람이다. 나란히 야경을 바라보며 내 손을 잡은 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오던 나의 아내는 그렇게 행복이 넘치던 사람이다.




- 신원 확인이 안 되면 곤란….

- … 아니…,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무 사랑했던 사람이다. 고맙다고 수도 없이 말해줘야 했던 사람이다. 이제부터는 더 잘 해 주리라 마음먹었던 내 사람이다. 고작 열흘 남짓 생색내며 데려온 해외여행으로는 감사함을 다 갚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고마움으로 따지면 온 세상 신들의 은총을 합쳐도 모자란 사람이다.




내 아내다.

나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었다.




여느 해외 관광지와 같이 여유로움이 넘치는 저녁이었다. 유럽의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었고, 또 저마다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멀리서 소란스러운 것은 젊은 외국인들의 자유분방함 때문이라고 여겼다. 어리석게도 잠시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앞으로 뛰어가는 사람들, 비틀거리며 저 멀리서 쓰러지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비명. 그리고 멀리서 달려오는 거대한 트럭….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 니스에서 군중을 향해 트럭 한 대가 돌진, ……최소 84명 사망.’




우리 쪽으로 순식간에 덮쳐오는 그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내의 손을 움켜쥐었다.


꼭 잡았어야 했다. 더 꼭….



- 연락하실 곳은 있으신가요?

- ……잖아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광장. 사람들에 휩쓸려 뛰어가던 내가 돌아봤을 때, 내 손은 비어있었다. 멀리서 달려오던 트럭은 어느새 눈앞에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나를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엄청난 충격으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쓰러진 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멀리서 또렷하게 보인 건 아내의 팔찌였다. 내게 선물을 받고 기뻐했던 그 파란 터키석의 팔찌, 그것이 채워진 하얀 손목. 그 너머에 보이는 정수리 부분이 살짝 희끗한 아내의 머리카락. ……붉은 피.




- 이럴 수는…, 없잖아요.




내 몸도 온 통 피투성이였지만, 짐승처럼 기어가며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무슨 의미의 소리였는지는, 정확하게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건 확실했다. 내가 아니라, 아내를, 좀 살려달라고. 내가 놓쳐 버려서 미안하다고, 내가 잘 못 했으니 나를 죽이고 아내는 살려달라고.


몇 십분 혹은 몇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내 아내를 데리고 가는 동안에도, 나를 붙잡고 뭐라고 말을 하는데도 그저 그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프랑스 검찰은 사살된 트럭 운전사와 IS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발표’




처참하게 꺾여버린 내 팔은 지금 아픈 걸까? 아니, 아니지. 당신이 더 아프고 무서웠겠지. 내 손 놓치고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렇게 커다란 트럭이 달려오는데,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겠어. 아무리 용기 있는 당신이라도 무서웠을 거야. 그렇지? 내가 미안해, 내가 잘 못 했어. 다신 안 그럴게. 이제부터는 칭찬도 더 많이 하고, 항상 당신처럼 감사하면서 살게.




- … 그러니까, 당신…, 돌아와. 얼른….




흰 천에 쌓인 아내를 멍하게 바라보며 한 참 동안 있었다. 주저앉아 머리를 바닥에 찍으며 울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딸이 새빨간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트럭을 몰았던 테러범은 사살되었다고 했다. 그가 믿었던 신과 국제 테러 단체는 아직 연관성이 없다고 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한 사람의 세상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음에도 누구 하나 책임질 수 없었고, 아내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그들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많은 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와 남편, 딸과 아들이 사라졌다. 그 들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다.




지금도 아내는 행복할까?

이제 나는…,

누구에게 그것을 물어봐야 하는가.







멀리 있는 타인의 고통이 일상을 파고드는 사건들이 있다.

무고한 타인의 고통과 슬픔으로 일어서려는 모든 어리석은 행동들이 사라지기를.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것들을 멈추어주오, 이 어리석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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