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by Kidcat혜진

20160820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손목의 피가 묻은 붕대를 봤을 때, 꿈이 아닌 것을 알았다. 결국 또 그대로였다.


다시 눈을 감으면, 그때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 엄마 떡볶이 사 먹어도 돼?

- 빨리 와서 저녁 먹으면 되지.

- 저녁은 저녁이고. 태권도 마치면 배고픈데.

- 딱 오백 원어치만 사 먹어, 그럼.

- 알았어.




그냥 먹고 싶은 만큼 먹으라고 했다면, 그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럼 아이는 지금 내 옆에 있을까?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아니, 그건 그냥 끔찍한 살인사건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던 아이를 차가 와서 덮쳤다고 했다. 운전자는 낮술을 한 상태였다. 아이를 치고도 한 참이나 더 달리다가, 지나가던 차가 막아서야 겨우 멈췄다고 했다.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내 아이가 그렇게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응급실로 달려가서 아이의 이름을 말했을 때, 간호사는 ‘사망자’라는 말을 했다.




- 아니, 아니요. 우리 아이는 다쳐서 왔는데요. … 다쳐서 왔어요.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봤을 때, 말라버린 피를 닦아주고 싶었다. 귀와 코에서 피가 흘렀는지 온통 피투성이에 버석하게 말라버린 아이의 입술은 퉁퉁 부은채로 빨갛게 변해 있었다. 건강했던 얼굴은 창백했고, 눈꺼풀과 이마는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시작해 얼굴의 반 이상은 부풀어 있었다.


무너지듯이 내려앉은 내 몸을 질질 끌고 가서 아이의 손을 겨우 잡았다. 그 손을 잡았을 때, 온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조금 더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 아니, 아니야.




움켜잡은 손끝에서 주먹을 꼭 쥔 아이의 마지막이 느껴졌다. 꼭 쥔 주먹,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내가 내민 손 안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왔다. 흘러들어온 그것을 가만히 펼쳐보았다.


아이가 내게 준 마지막 한 줌의 온기.


짤랑.


오백 원짜리 동전이 내 손가락 사이를 지나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이걸 이렇게 꼭 쥐고 있었어. 왜….




‘딱 오백 원어치만 사 먹어, 그럼.’




천 원을 주면서 아이에게 당부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소리 낼 수 없었다. 막혀오는 무언가에 가슴을 움켜쥔 채 나는 결국 쓰러졌다.


가해자는 응급실에 다녀갔다고 했다. 나중에 남편이 주먹을 꽉 진 채 나에게 말하기를 그 남자는 음주운전과 관련한 채혈을 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고, 부모인 우리를 찾아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사과를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이미 그런 사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욕을 하고, 저주를 해도 모자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가져와 저 사람에게 줄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경찰 진술서에는 ‘심신 미약’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이 아닌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사망자’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입에 오르내렸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손목을 그어 버린다.


그것이 일주일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엄마, 그러지 말아요.’




손목을 그을 때 들린 아이의 목소리. 환청처럼 들린 그 목소리에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동안 체한 듯 나오지 않던 그 울음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욕실에서 피 흘리며 울고 있는 나를 남편이 데리고 병원으로 온 기억이 난다.


이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그러지 말란다.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흘러서 가해자는 죄 값이라고 불리는 기간을 선고받았고, 나는 그 말을 눈이 빨개진 남편에게 전해 들었다. 자신의 가슴을 얼마나 내리친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멍든 서로의 가슴을 들여다보며 또 서글프게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어떤 죄가 커서 아이를 일찍 데려 가신 건지, 신이라는 무언의 존재가 어떤 큰 의미를 두고 나에게 이러는 것인지,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주고 싶었다면 나에게 직접 줄 것이지, 왜 이런 가혹하고 무서운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술을 마신 채 운전을 한 그 사람에게 한 마디의 사과라도 들었다면 우리의 가슴에 맺힌 멍이 조금이라도 줄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것도, 달라질 것도 없다. 나의 아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고, 나와 남편은 서로를 바라본다. 피 맺힌 내 손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편은 멍하게 다시 천장을 보며 말을 삼킨다.


남편이 바로 앞에 앉아 있었지만, 가해자는 끝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사과를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이미 그런 사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을 테니까.

내 아이가 앞으로 가졌을 희망, 행복, 사사로운 일상까지 내던져 버린 당신을.


하지만, 당신은 온 힘을 다해서 계속 사과해야만 한다.

우리 가족을 찢어 놓은 이 모든 일들에 대해 사과해야 마땅하다.


인간이라면,

사람이라면,

당신은 절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





음주운전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절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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