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짧은 이야기

'청춘 연가'

by Kidcat혜진

20160823





있죠, 그쪽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건 아니에요.

그냥…,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소개팅하고 두 번째 만나서 이런 선술집에서 한 잔 기울이면 괜히 친해진 것 같은….

그런 착각 아닌 착각을 해서 그런 거라고 해둘게요.

혹시 기분 나쁜 건 아니죠?

아, 아, 맞아요. 그런 거예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오래 만난 건 아니고,

한 삼 년 안 되게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어요.

맞아요.

요즘 치고는 오래 만난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마음이 잘 맞아서 계속 만난 거예요.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는데….

아! 그렇다고 책장 사이에서 눈이 맞는 그런 드라마 같은 상황은 아니고요.

내가 책을 찾으면 항상 그 사람이 먼저 대출을 하고 있잖아요.

늘 같은 학번에 같은 이름이 떡하니 있으니, 짜증이 났죠.

하루는 기다리다가 책 반납하던 그 사람이랑 딱 마주쳤는데,

막상 보니까 따지기도 애매하긴 했어요.

그 책이 내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냥 한 마디 했죠.

빨리 보고 반납 좀 하라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매번 나라고.

그 사람이 웃더라고요.

어이가 없었겠죠.

그렇게 급할 때는 자기 찾아오라고 하더라고요.

만약에 또 같은 책을 자기가 먼저 갖고 있다면 말이죠.

그런데 정말 그 일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진짜 찾아갔어요.

알고 보니 책 취향이 비슷했고, 교양과목도 비슷하게 들었고.

뭐, 그래서…, 그렇게.

너무 뻔하죠? 하하하….



소개팅하면 가장 먼저 서로 비슷한 점부터 찾으려고 하잖아요.

맞아요, 그쪽이랑 나도 그렇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연애를 하려면 비슷한 점이 많은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보통 연애를 할 때는 닮은 점이 많으면 좋을 때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아닌 것 같거든요.

서로가 서로를 닮는 것보다는,

한두 가지 정도만 같은 뭔가를 좋아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그래야 만약에 헤어지더라도 정리가 쉽게 되거든요.

만날 때부터 헤어지는 걸 생각하는 건 좀 그런가요?

아, 그래요.

하긴, 그런 걸 처음부터 생각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도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조차도 괴로운 이별을 했다면,

거울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생각나거나,

내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이 그 사람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해요.

평생 그러지는 않겠지만, 무튼 한 동안은 그럴 거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못 듣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못 먹고.

그래서…, 나는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네? 아, … 아니요.

상처를 주고받는 이별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잘 못 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잘 못 한 것도 아닌….

뭐, 그런 이별이었어요.

서로의 감정이 처음과 같지 않아서 실망하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상황이 오는 거예요.

그래도 헤어진 후에 한 동안은 습관처럼 나오는 행동들 있잖아요.

그 사람이 좋아하던 작가의 책이 신간으로 나오면 나도 모르게 전화기로 먼저 손이 가는….

둘이서 같이 들으면서 키득거리고는 했던 음악이 나오면 괜히 그때처럼 웃어요.

딱히 기억나는 대화도 없는데,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많이 웃었던 건가 싶어요.

그래서 헤어진 후에 한 동안은 습관처럼 웃다가,

… 습관처럼 울기도 했어요.

아……, 그래서 습관이 무섭다고들 하는가 봐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오늘 당신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 이름을 부를 뻔했어요.

아까 여기로 걸어 들어올 때, 파란 셔츠가 눈에 확 들어와서.

내가 그 사람에게 선물했던 그 셔츠 같아서.

미안해요.

아직은 습관을 버리기 힘든가 봐요.

아까 한두 가지 정도만 같은 걸 좋아하는 편이 낫다고 했던 말, 취소할래요.

사실은 내가 틀렸어요.

술이 좀 더 들어가니 진담이 나오네요. 그렇죠? 하하….




그냥, 그런 이유들이 아니라…,

난 그 사람 하나만 좋아했던 거죠.

닮아서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도, 한두 가지를 같이 좋아해서도 아니라.

… 그냥, 그 사람이 좋았던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렸든, 한 순간이든.

무엇을 좋아했던, 싫어했던,

그런 건 전부 유치한 이유들일뿐이죠.

어쨌든 그때의 나는,

이별의 상처 따위 두렵지도 않았고, 생각도 안 했으니까.

그때는 그랬죠.

그까짓 세상의 흔한 이별은 나한테 안 올 거라고. 그럴 거라고….

겁내지도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고,

무모하게 부딪치더라도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이 사람과 좋아하는 무언가를 함께할 때면,

지금 맞잡은 이 두 손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가끔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사랑이지만, 내 사랑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

내 이별은 남들과 같지 않을 거라는 착각을 한 거예요.

나는 절대로 착각 따위 하지 않을 거라는……,

가장 심각한 착각을 한 거예요.

그때의 나는……,

행복한 바 보였거나, 아님 한 치 앞도 못 보는 장님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둘 다였나 봐요.




있죠.

취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줘요.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라서…,

아마 내일이 되면 부끄러워서 다시는 얼굴 못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법 단련됐다고 생각하고,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봐요.

나는 그 사람…,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미안해요.

이런 말을 들어줄 정도로 너그러운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소개팅녀의 지나간 사랑 이야기나 듣자고 주말에 나온 건 아닐 텐데.

아, 그래요.

당황한 건 이해해요.

정말, …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갑자기 이 말이 하고 싶어 졌어요.

나는 그 한마디의 말이…,

한 참 동안 속에 걸려있었거든요.

이런 말을, 그때 그 사람한테는 제대로 못 했어요.

그냥, 그냥요….

손바닥 하나 정도 남아있던, 그런 마음일 거예요.

뭔지 모를 미안함, 후회, 또 미련 같은 거요.

아, 네? 아니요, 아니에요.

여전히 그런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아니요’라고 하겠죠.

이제는 그래야만 하고….




갑자기 이런 말을 왜 하고 싶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들어줘서 고마워요.

그러니까 그때 그 시절의 나는,

오늘 여기에 두고 일어날 거예요.




……,

그럼 이제 일어날까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마워요, 들어줘서.

그런데 우리는 다음에도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좀 뻔뻔하게 들리겠지만,

그래도 우리 한 번만 더 만나요, 네?

오늘은 내 이야기만 했으니까,

다음에는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땐 잘 몰랐고 그래서 무모했고
또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
상처를 주고받고 하는 게 사람이고
굳이 그걸 겁내진 않았던 것 같아

닦아내면 그만인 게 눈물이니까
안고 가면 그만인 게 또 기억이니까

가끔은 아직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하지만 이내 다시 또

뭔가 좀 낯설고 익숙하진 않아도
또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
부서질 정도로 힘껏 부딪혀보고
그러는 걸 겁내진 않았던 것 같아

버텨내면 그만인 게 아픔이니까
안고 가면 그만인 게 또 슬픔이니까

가끔은 아직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하지만 이내 다시

두려움이 앞서고 마음이 무거워져
어느새 또 입가엔 한숨이 맺혀

시간은 날 어른이 되게 했지만
강해지게 하지는 않은 것 같아
시간은 날 어른이 되게 했지만
그만큼 더 바보로 만든 것 같아

그땐 잘 몰랐고 그래서 무모했고
또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아
부서질 정도로 하는 게 사랑이고
굳이 그걸 겁내진 않았던 것 같아


넬(NELL) -청춘연가- 중





가끔은 아직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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