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족.

울지 않는 아이

by Kidcat혜진

20161024





쿵, 쿵, 쿵.


멀리서 들리던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무언가가 무너지고 쏟아지는 소리가 건물 밖 사방에서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의 목을 끌어안은 채 울어 버렸다. 엄마는 울지 말라며 나를 달랜다. 집안 어딘가에 있던 아빠가 달려와 얼른 우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걱정하지 마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단다.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들은 저 멀리서 들리던 큰 소리와 달리 내 귀에 속삭이듯이 내려앉는다. 향긋한 엄마의 체취에 코를 묻고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엄마의 어깨에 문질러 버린다. 아빠는 나를 안고 있는 엄마의 머리를 끌어안은 채 창밖을 주시하고 있다.


물병의 반쯤 남은 물, 거실에 놓여있는 먹다 만 마른 빵, 어제 구해 온 음료수. 집 안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어두웠다. 가끔 양초로 방 안을 밝히는 엄마의 얼굴은 언젠가 그림에서 본 아름다운 공주 같아서 난 양초를 켤 때마다 엄마를 끌어안은 채 훌쩍거렸다. 슬프게도 그림책의 공주는 죽어서 별이 되었으니까. 난 엄마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제 조용해진 걸 보니 오늘은 괜찮은 모양이야,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해요, 그 사람들이랑 연락은 해 봤어요?

새벽에 떠날 수 있다고 하니까, 우리도 그때 같이 나가는 거야.

아무 일 없겠죠?

그래야지…, 그럴 거야.


잠이 덜 깬 채 내가 다시 훌쩍거리자, 아빠는 엄마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내 이마에도 입을 맞추었다. 큰 소리에 놀라서 깨는 것은 싫지만, 이 어두운 시간이 계속될수록 아빠와 엄마가 나를 부둥켜안고 셋이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은 마냥 좋았다. 일부러 코를 들이마시며 아빠를 부르자, 다시 한번 내 볼에 입을 맞추는 아빠의 수염은 까칠하다. 등을 토닥이는 엄마의 손길이 부드럽다.


한 참을 셋이서 그렇게 부둥켜안고 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검은 어둠 사이로 순간 밝은 불길이 보였다. 아빠가 엉거주춤 일어나서 밖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까만 눈동자에도 불길이 일었다. 순식간에 흐르는 정적, 마치 세상에 우리만 있는 듯이 집 밖으로 간혹 들리던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난 다시 눈을 비비며 엄마의 목에 매달려 칭얼거린다.


너무 밝아. 차라리 어두운 게 좋은데….


반쯤 서 있던 아빠가 갑자기 창문을 등진 채 엄마와 나를 감싸는 순간. 처음에는 귀가 아팠고, 다음에는 온몸이 아프고, 그다음에는 숨이 막혔다. 두 팔로 나를 꽉 안은 엄마의 턱이 내 머리를 세차게 누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아니, 여기는 분명 1층인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 든다. 심한 충격, 무언가가 세차게 떨어져 내리는 소리. 엄마의 머리 뒤로 아빠가 잠시 보였지만, 이제는 볼 수 없다. 세상이 다시 어두워졌다. 잠이 왔다. 아니, 그냥 많이 아팠다. 내 몸을 안고 엎드려있는 엄마가 무겁지만 참아야 했다.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깨어났을 때, 눈이 떠지지 않았다. 무언가 끈적거리는 것이 눈꺼풀에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겨우 한쪽 눈을 뜨자, 엄마의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아니, 반쯤 감긴 엄마의 눈동자 옆으로도 끈적거리는 것이 잔뜩 붙어있는 것 같은데 어두워서 무슨 색인지는 모르겠다.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숨을 쉬기 어렵다. 엄마의 머리 뒤에 아빠의 수염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까칠한 수염을 만지고 싶지만 나는 지금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엄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동화책의 공주님처럼 혹시 죽은 것은 아닌지 겁이 난다. 다시 훌쩍거려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소리 내어 보려고 애쓴다. 목이 아프다. 숨을 쉬기는 하는데, 무언가 잔뜩 섞여서 목구멍까지 막히는 기분이다. 내가 훌쩍거리면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던 엄마는 그저 검은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다. 아빠의 수염도 내 이마에 와 닿지 않는다.


다시 한번 크게 훌쩍거리려다가, 엄마를 부르고 아빠를 부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아프다. 아프고 또 아프다. 팔과 다리가, 가슴과 머리가, 이마가 온 통 아프다. 그런데도 엄마는 나를 보지 않는다. 검은 눈동자가 나를 보며 달래주지 않는 것이 서러워 결국 울어버린다. 그제야 쇳소리가 났다. 내 목소리가 아닌 소리가 났다. 그래도 어둠은 물러나지 않고, 나는 내 울음에 갇혀서 한 동안 계속 혼자였다.


목이 마르다고 생각했다. 배도 고파졌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놓아줄 수 없는 모양이다. 아빠의 수염은 계속 그렇게 엄마 머리 뒤에서 기다리기만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나의 다리가 조금 시원해지고, 어둠이 걷히고, 하얀 헬멧을 쓴 아저씨들이 보였을 때. 나는 울 수 없었다.


상처투성이가 된 아빠의 얼굴이 보였고, 엄마의 피가 내 얼굴에 잔뜩 묻어 있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 넘어졌을 때 무릎에서 난 피를 보며 놀라서 울던 나에게 엄마와 아빠가 말했었다.


괜찮아, 피는 멎을 거야.

금방 괜찮아 지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그렇게 말하던 엄마와 아빠는 지금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파랗게 변한 아빠의 얼굴이, 피로 뭉쳐진 엄마의 머리카락이,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울고 있는데, 아무도 나를 안아주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엄마의 품 안에 있을 수 없고, 아빠의 입맞춤을 받을 수도 없다.


이제 너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구해줄게.


그렇게 말하며 나를 데리고 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대답할 수 없는 말들로 대답했다.


내가 울고 있는데도, 엄마는 나를 안아주지 않아요.

내가 멀어지는데도, 아빠는 일어나지 않아요.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나는, 우리는,

괜찮지 않아요.

절대로.





[영상] 시리아 민방위대 '하얀 헬멧'의 눈물 / YTN
https://youtu.be/l_HYEv4Sd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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