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섬

기다리고, 기다리면...

by Kidcat혜진

20161027





곧 돌아온다고 했다. 오라버니는….


그러니 나는 오라버니를 믿고 여기에 있어야 한다. 흙바닥에는 실금처럼 그어진 자잘한 그림들이 가득하다. 먹다 남은 감자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물병에 물도 떨어져 가지만, 오늘 밤에도 오라버니는 소식이 없다.


갑자기 몇 달씩이나 집 안에만 갇혀 있으려니 답답해서 바다에 나가 물질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러면 큰일이 난다고 나를 호되게 야단치던 큰 오라버니였다. 그리고 물길이 열리던 밤에 나는 오라버니를 따라서 이 섬으로 들어왔다. 사람이 살지 않고 가끔 낚시하는 어부들이나 물질하는 해녀들이 쉬어가는 섬. 어망이며, 자잘한 것들이 흘러와서 물이 차오르면 걸려 있다가 그마저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파도에 흘러가버리는 섬.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나를 두고 오라버니는 그 섬 뒤편에 보이지 않는 바위틈 빈 공간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짊어지고 온 거적을 깔고 이불, 작은 등 하나를 두었다. 그렇게 그 안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그 틈도 저 멀리 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도록 짙은 소나무 가지로 가리고 또 가렸다. 여기서 조금만 있어라, 알았지? 절대로 나오면 안 된다. 그리고 갯벌이 열리는 밤이면 조심스럽게 와서 먹을 것과 물을 주고 떠났다. 어제는 이틀만 더 있으면 데리고 나가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그리고 불편하고, 화가 났다. 파도 소리가 들리지만 물질조차 할 수 없는 이 답답함에 온 몸이 마비가 되는 기분.


하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몇 달 전부터 동리에 떠도는 소문 때문일 것이다. 배를 타고 뭍으로 잠시 다니러 갔던 이장님 말로는 순사들이 젊은 처자들만 보면 어디에 사는지 확인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곧 건너편 섬에서는 물질하던 내 또래의 처자들이 일본인 배에 실려 뭍으로 나갔고 소식이 끊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멀리 공장으로 데려간다는 소문도 있고, 돈 많은 일본인에게 팔려간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사실은 알 수가 없었다. 실체를 확인한 사람도, 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없으니까.


나는 막내다. 잘 사는 집은 아니지만, 오라버니들이 줄줄이 있는 집에서 늦게 낳은 막내딸이니 나름대로는 귀한 딸이 맞다. 아버지가 지난해에 뱃일을 나가셨다가 태풍에 휩쓸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때 이후로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큰 오라버니는 그런 우리 가족을 걷어 먹이려고 동분서주하였다. 나도 나름대로 돕는다고 물질도 하고, 허드렛일도 거들며 그렇게 지냈다.


우리 섬은 굶어 죽을 일은 없을 정도로 먹을 것은 지천에 널린 섬이었다. 봄이면 노란 들꽃을 따라서 뒷동산 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흐느적거리는 해초들이 저 멀리서도 보일 정로도 물이 맑았다. 가을에는 익어가는 오곡처럼 바다는 풍성한 향을 머금고, 세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갯바위까지 가서 아주머니들이 억척스럽게 돌미역을 수확했다. 매해 반복되는 그 계절들을 노닐며 물질하고, 어머니와 오라버니들과 지내는 것이 나는 참으로 좋았다.


내가 태어나기 그전부터 저 바다 너머 어디에서는 전쟁이 나고, 나라는 더 이상 우리나라가 아니라 하였다. 사실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겠는데, 우리가 잡아들인 생선들을 일본 사람들의 배가 와서 헐값에 사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해가 갈수록 어망은 텅텅 비는데, 쓸어 담아가는 양은 많아지고 우리 손에 떨어지는 돈은 갈수록 적어졌다. 결국 풍요로웠던 우리 섬도 먹을 것이 귀한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오라버니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몇 달 전에 원양어선에 탔지만 소식이 없다. 셋째 오라버니는 뭍으로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마지막 편지에서 일본으로 간다는 말만 쓰여 있었다. 큰 오라버니는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문제였다.


어느 날 마을의 처자 한 명이 사라지고, 그 집 아주머니가 머리가 깨진 채 갯바위에서 발견되었다. 동리 사람들이 데려와 겨우 목숨은 붙었는데,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 하다. 그 아주머니는 과부였고, 여느 섬들이 그렇듯 우리 동리에는 그런 과부가 많았다. 이후 그런 과부들 중 딸은 가진 집은 밤마다 문단속을 수도 없이 해야 했다. 그나마 우리 집은 큰 오라버니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어머니가 그랬다.


지금 이 바위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지만, 갯벌 너머로 당장이라도 달려가 어머니를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깨진 머리를 한 어머니를 볼까 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문득 이웃하던 집에 살던 복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이 된다. 나와 같이 이곳으로 왔다면 어땠을까. 이번에 큰 오라버니가 오면 한 번 말이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즉에 이 생각이 났어야 했는데, 내가 와 있으니 복이에게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오라버니는 오늘 밤 물길이 열릴 때도 오지 않았다. 해가 다시 뜰 때까지 기다렸는데, 결국 오지 않았다. 물길은 아마 다시 닫혔을 것이고, 낮에는 배가 있어야만 이 섬에 올 수 있는데, 그 마저도 파도가 거칠면 함부로 배를 댈 수도 없으니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하루를 실금과 같은 낙서들로 보낸다. 바다의 파도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리자 고단하여 잠시 눈을 붙였다. 새벽 동안 오라버니를 기다리느라 잠을 설쳤더니, 이렇게 습하고 어두운 바위틈에서도 잠이 저절로 온다. 그저 빨리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일까. 꿈에서 나는 언덕을 올라,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기다리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멀리 뱃머리가 보이면 누구 배인지도 모른 채 손을 흔들고, 무사히 돌아오세요, 고기 많이 잡아 오세요,라고 소리 지르던 그때로 돌아가 있었다.


이 어둠 속에서 나 혼자 중얼거린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무사히 돌아갈게요.


오라버니는 결국 이틀 내내 오지 않았다. 그대로 더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나는 물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벌을 걸어서 무인도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희미한 달빛 아래의 길이 얼마나 무섭던지. 오라버니가 나를 혼내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머리가 깨진 어머니를 볼까 봐 무서웠다. 창호지 너머에 어른거리는 사람의 형상에 선뜻 말을 못 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불렀다.


아이고, 이것아. 다리를 절뚝이며 어머니가 나와서 나를 끌어안는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오늘 내가 몰래 가려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너는 바다에 물질하러 갔다가 죽은 것으로 동리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러니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챙길 거 다시 챙겨서 들어가거라.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오라버니는 어디 갔어요? 너 없어지고 순사들이 왔었다. 네가 없으니까, 다짜고짜 너희 오라비를 뭍으로 끌고 가서는 소식이 없지 뭐냐.


아…, 아.


젊은 내가 걷기도 힘든 벌을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오셨다면 물때에 맞춰서 건너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지체할 새도 없이 어머니가 채비해둔 보따리를 들고 다시 벌로 향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숨어야 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오라버니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끌려간 오라버니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숨을 헐떡거리며 벌을 걷다가 먼 바다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무사히 돌아오세요.

무사히 돌아갈게요.


꿈에서 되뇌었던 그 말들을 질퍽거리는 벌 위로 흩어놓으며 다시 걸음을 옮긴다. 푹푹 빠지는 벌의 깊이만큼 알 수 없는 눈물이 차오르는데, 나는 그 울음을 삼키며 바위 위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위틈 사이로 나를 숨기고 스스로를 가두었다. 큰 소리로 울고 싶지만, 파도 소리가 그 소리를 덮지 못할까 봐 그럴 수 없었다. 뭍으로 간 오라버니는 지금쯤 무슨 고단한 일을 당하고 있을까. 다시 찰박거리는 파도소리와 멀리서 바다가 섬을 감싸는 소리가 들린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어서 빨리 오라버니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바닥에 그어둔 실금 같은 이 낙서들이 더 이상은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을 뜨면 오라버니가 내 어깨를 흔들며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웃으며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저 다시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복이 와 함께 나물을 캐고, 소나무 밭 너머에 있는 언덕을 올라가 소리를 지르고, 물질을 하며 맑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싶다.


어두운 바위틈에서 꾸는 꿈들은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이질적인 이 현실에는 그저 눈감고, 행복한 꿈에 나를 두었다. 그럼에도 슬픔이 멈추지 않아서, 울음을 파도 소리에 묻으려고 애쓰며 한 참을 보내야만 했다. 그 후로도 한 참을 두고, 또 그렇게 한 참을 더 보내야만 했다.





돌아오지 못하는 누군가를, 돌아갈 수 없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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