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타코와사비

by Kidcat혜진

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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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한테까지 좋은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타코와사비를 집어 들며 그녀가 말했다. 사실 이 자리에 내가 왜 와있는지 생각해봤는데, 삼십 분이 지나도록 여전히 알 수 없다.

난 그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후배 녀석 T를 지금 앞에 앉은 Y에게 소개해 준 것뿐이다. Y는 내가 직접 알던 사람도 아니다. 거래처에 갔다가 우연히 말을 몇 번 섞은 그녀와 식사를 같이 했다. 딱히 ‘썸’이라고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상대방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영화를 봤다. 영화의 제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보기 전, 팝콘을 먹던 그녀가 자신의 친구가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다. 좋은 친구인데 요즘 부쩍 외로워 보인다고 하기에, 사무실에 후배 녀석의 이야기를 지나가듯 꺼낸 것이다. 어머, 잘 됐다. 언제 소개팅 주선이라도 할까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다음 주에 그녀에게서 진짜 연락이 온 것이다. 자신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나에게도 후배의 의향을 물어보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고 갔던 그녀의 오랜 친구가 Y, 내 좋은 후배 녀석이 T. 그래서 졸지에 Y와 T의 소개팅이 일어난 것이다. 그 주 주말에 두 사람은 연락처를 주고받았으며, 실제로 홍대인가 가로수길인가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그녀의 입에서 Y의 이야기가 나왔다.

몇 번 더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막, 막, 불타오르나 봐요, 오랜만에 연애라서 그런가……. 따위의 이야기를 하기에 샐러드의 리코타 치즈를 뒤적이던 내가 나도 모르게 우리도 더 자주 만나요, 그럼. 하고 대답했다. 치즈 오믈렛인가를 먹던 그녀가 푸하! 하고 이상하게 웃으며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노랗게 익은 치즈 오믈렛과 토마토소스가 묻은 냅킨이 기억난다.



“T가 뭔가 잘 못이라도 했나요?”

“아뇨, 잘못을 한건 아니죠.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럼 뭐가 문제죠?”



세 시간 전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영문도 모른 채 성수동의 일본식 선술집으로 온 나였다. 내 전화번호를 그녀가 알려 준 건가. Y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T에게는 알리지 말고 그냥 약속 장소로 나오라는 말만 들은 채 전화는 끊어졌다. 뭐지, T가 잘못해서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주선자인 나에게 따지기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 그러려면 차라리 자신의 친구인 그녀가 더 편하지 않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오기는 왔는데 막상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생각이 났다. 나는 Y를 실제로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테이블마다 잔뜩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맛 집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여기요!”

“아……, 네.”




구석에 앉아있던 한 여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Y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사진을 보여주기라도 한 걸까.



“맥주가 좋으세요? 아니면 소주? 아니면, 사케?”

“뭐, 아무거나. … 사케요.”

“여기 사케 두 잔이요.”



서로에 대한 인사보다 먼저 간단한 안주 몇 가지와 술이 나왔다. 그리고 그녀는 타코와사비를 한입 먹더니 코끝을 찡그리며 씹었다. 앞에 나온 사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입 마셨다. 이 분위기에 건배를 권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서. Y는 타코와사비를 한 참 씹다가 두 번째 집어 들며, 나에게 말했다.



“이거 드셔 본 적 있어요?”

“아뇨.”

“낙지나 문어로 만드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만들어 두면 와사비 향이 날아가요. 그래서 보관할 때도 잘 보관해야 되고, 소금의 양이 너무 많으면 짜고, 너무 적으면 빨리 상해요. 발효가 적당히 된 타코와사비를 찾기는 굉장히 힘들어요. 사람마다 와사비에 대한 기대감 아니면 내성도 저마다 달라서 자신한테 맞는 타코와사비를 찾는 건 굉장히 어렵죠.”

“그렇군요.”

“이 집 타코와사비는 먹으면 굉장히 찡해요. 와사비가 좀 센 편이긴 한데, 저는 이게 좋아요.”

“아, 네. T도 여기 온 적이 있나요?”

“그럼요. 내 애착 술집 중에 하나니까요.”

“타코와사비를 좋아하던가요?”

“아니요. 아쉽게도, 취향이 아닌가 봐요.”

“설마……, 그게 문제인가요?”

“그럴 리가요. T는 좋은 사람이에요. 모두에게 그럴 거예요. 그래서 소개해 주셨다는 것도 알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더니 세 번째 타코와사비를 집어 들며 Y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한테까지 좋은 사람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그럼 뭐가 문제죠?”

“T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 자리에 우리가 앉아있는 이유는.”

“…….”



사케를 반잔이나 한 번에 비운 Y의 입은 네 번째 타코와사비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젓가락을 들 생각을 못하던 내가 그제야 명란 구이를 한 입 넣고, 사케로 입을 헹군 후 다시 타코와사비를 조금 집어 들었다. 입에 넣자 알싸한 향과 함께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찔함이 혀끝에 전해졌다. 미간을 찌푸리는 나를 본 것인지 Y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찡그린 내 얼굴이 웃긴 건지, 아니면 드디어 내가 그것을 맛본 것이 웃을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아, 죄송해요. T와 같이 왔을 때도 그런 얼굴이었거든요. 대체 왜 이런 걸 먹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내 취향인걸.”

“그러게요…….”




뭐에 대한 대답일까. T에 대한 대답일까, 아니면 타코와사비에 대한 대답일까. 목요일 퇴근 후 늦은 시간에 후배에게 소개팅을 시켜준 여자와 마주 앉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게, 나는 왜 여기에 앉아있는 거지. 이 곳에 우리가 앉아있는 이유는 일단 T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와 그녀, 그리고 Y가 남는다.


나와 그녀 그리고 Y.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신 부분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 둘게요. 물론 T와는 주선자들 모두가 기대하고 원하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없을 거예요.”

“왜죠?"

“말했잖아요. T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지만, 나한테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가 원하는 이상적인 T의 여러 가지가 나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좋은 사람이고, 이상적인 조건인데도 말이죠?”

“네.”

“음, 그렇군요.”

“맞아요. 그래요.”

“음, 네.”

“아……, 이제 알겠어요. 걔가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그 말을 하고 반쯤 남은 사케를 단숨에 마신 Y는 다시 한번 남아있던 타코와사비를 훑으려 젓가락질을 열심히 했다. 난 구운 명란을 깨작거리며 마요네즈에 찍었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 한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보통의 맛이 느껴진다.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하기 어려운 보통의 맛. 그럼에도 지금 Y는 명란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그저 맹렬히 타코와사비에만 집중을 한다. 다시 한번 코를 찡그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크게 툭, 떨어졌다. 테이블 위에 휴지를 건네주자, 손사래를 친다.



“그냥 둬요. 마를 테니까.”

“불편하지 않아요?”

“처음 겪는 일도 아닌걸요.”

“그래도 속이 편하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내가 많이 좋아하는데.”

“그렇군요.”

“취향은……, 속이기 힘들죠. 보통의 사람이랑 어울리기 어려울수록.”

“네.”

“…….”

“맞아요. 취향은, ……많이 좋아하는 것들은 쉽게 버릴 수 없어요.”




그 말을 하며 다시 한번 더 생각했다. T를 뺀, 나와 그녀 그리고 Y.




“오늘 나 만난 건 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알아요.”




뭐에 대한 알아요, 일까. 대답이 선뜻 나와서 놀랐지만 Y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선히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보통의 맛이랑 어울리는 그녀와 타코와사비를 눈물까지 흘리며 먹는 Y. 두 사람은 아주 오랜 친구라고 들었다. Y가 툭 하고 친 어깨를 나도 다시 한번 살짝 두드리며 그냥 웃어 주었다. 뭐에 대한 웃음일까. 그저 Y의 취향이 매우 독특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나에 대한 대견함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타이밍에 스스로에게 대견함 따위를 느끼는 나도 과연 보통의 취향일까.


이제 다시 세 사람을 떠올린다. Y와 그녀 그리고 나.

그녀는 Y를 잘 모른 채 좋아한다.

Y는 그녀를 잘 알고 좋아한다.

그녀는 나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고, 나를 좋아한다.

나는 Y에 대해 알아버렸고, 그녀를 좋아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수학 공식처럼 단순한 답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Y와 내가 이렇게 만나서 타코와사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 Y가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쉬울 일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좋아하는 건 쉽게 버릴 수 없다. 하지 않고, 보지 않고, 버리면 편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쉽게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코가 찡하고, 혀끝이 아릴 정도로 아파도 맹렬히 그것에 열심히 일수밖에 없다.

그건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취향의 문제……,

아니, 그냥 타코와사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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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타코와사비가 먹고 싶었다.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치즈 오믈렛, 팝콘, 명란구이, 사케.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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