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떤 날
좋아, 나는.
이렇게라도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손이 너의 손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지금의 이런 내 감정들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겠지.
이제는 정말 그러면 안되는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유자차, 아니 그냥 커피를 마셨던 걸로 기억해.
우리가 나란히 서 있던 편의점 밖에는 눈이 왔어.
그 해의 첫눈을 그렇게 너와 함께 보고 있다가, 주머니 속에 있던 사탕 하나를 너에게 줬지.
네가 좋아하던 포도맛이었어.
넌 그걸 받지 않고 물끄러미 보기만 했어.
난 조금 당황했지.
그저 사탕 하나였는데, 마치 넌 그걸 받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얼굴이었어.
사탕만 물끄러미 보던 네 시선이 나를 향했을 때, 그제야 알았어.
넌 아니었어.
그 순간, 분명했지.
불행하게도... 난 네가 맞았는데.
마시던 커피를 다 마셨을 때, 눈이 그쳤어.
그리고 넌 내게 후배를 소개해 준다고 했어.
처음에 네가 누군가를 소개해 준다는 말을 했을 때, 난 웃었어.
그렇지만 넌 웃지 않았지.
절대로 웃지 않았어.
볼 것 하나 없는 내가 가진 것 많은 너의 후배를 만난다고 해도 결과는 뻔할 텐데 말이야.
그런데도 넌 그냥 만나보라는 말만 했어.
그때는 몰랐지.
너의 그 후배가 아주 오랫동안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저 담담히 다 마신 커피 컵을 휴지통에 넣으면서 넌 내게 말했어.
눈이 그쳤으니, 이제 그만 가자고.
첫눈이 그쳤고, 우리는 그 편의점에서 나와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어.
그다음 주에 난 소개받은 너의 후배를 만났고,
너와 나는 다시 그 편의점에서 만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헤어졌어.
그리고 다시는 그 편의점에 가지 않았지.
이제 편의점보다 회사 앞 카페나 레스토랑이 편하고,
더 이상은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끼니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고,
내일의 공과금, 다음 달의 대출금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의 너와 나는 어디에도 없는데,
지금의 우리 마음은 어디도 둘 곳이 없다는 사실이 이상해.
지금 내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사람이 너라면,
아니, 아니지. 틀렸네...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이 너라면, 과연 넌 웃고 있었을까?
우리는 과연 웃을 수 있었을까?
그때의 너와 나는 웃을 수 없었고,
지금의 우리는 웃을 수 있으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청첩장을 보는 너의 표정은 마치 그날 같았어.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첫눈을 함께 보던 그날 말이야.
넌 그날과 다르게 활짝 웃고 있지만,
나는 왜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까.
왜 포도맛 사탕을 받지 않던 너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는 걸까.
하지만 어쩌겠어...
이제 우리는 함께 웃을 수는 없겠지만,
너와 나로는 웃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된 거겠지.
그러니까, 너... 이제 포도맛 사탕만큼 행복해져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