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세계, 0에서 1까지

| 업무 중 휴식: 영혼의 소멸

by Kidcat혜진




인간 세계의 흔한 말 중에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부서의 일은 인생 파일에서 가장 마지막의 업무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생 파일의 마지막은 단 한 번 뿐이죠.
[첫사랑 전형] 부에서 근무하신다니 아시겠군요.
처음과 마지막은 닮았죠.
한 번 뿐이니까요.
절대로 두 번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부분이 있죠.
네, 대리님이 하시는 업무와 달리 인간 세계에서 저희 부서의 업무는 대개 고통이나 슬픔과 함께 하니까요.

우리가 업무를 시작할 때 인간은 마지막을 예상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정돈하고, 마침표를 완벽하게 찍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업무의 대부분은 인간의 마지막 고통을 분산하기 바쁘죠.
그들의 인생 파일에서 가지고 있던 기억과 추억도 크나큰 고통 속에 사라져 버려서 결국 자신의 원래 존재까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안식]팀 마저도 영혼에 깃들어 업무를 시작하면 마지막에는 남아버린 후회와 신체적 고통에 대한 인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고 했으니 그런 부분이 늘 어렵습니다.

이번 영혼의 업무는 [사고사]팀에서 흔한 업무 기획이었습니다.
인간 세계에 요즘 재난이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요즘 타지부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재난을 발생시키기도 한다더군요.
물론, 아주 예전에 비하면 ‘재앙’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니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더군요.

어쨌든, 인생 파일을 살펴봤을 때는 그건 그냥 흔한 [사고사]였습니다.
[죽음] 예비자는 집중호우가 발생한 지역에서 자동차로 이동 중 지하도로에 갇혀서 급격히 불어난 물살에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기획 말입니다.
업무를 배정받았을 때는 마지막 몇 분 사이의 고통이 클 뿐, 다른 건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그와 동승자가 있었던 것이었죠.
그의 딸이었습니다.

네, 보시다시피 이 중년의 남성은 딸과 함께 집중호우로 물이 불어난 지하도로에 갇혀 죽는 것이었죠.
같은 시각에 같은 지역으로 업무를 수행하러 떠나는 대리 중 딸을 담당하는 이가 있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이제 일주일 후면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죠.
네...,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예비자의 사정이 딱하지만, 이미 기획된 업무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이건 [재난]과에서 기획한 나름대로 큰 프로젝트였으니까요.
어쨌든 저의 업무에서 [죽음] 예비자는 딸이 아니었으니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처음 남자의 영혼에 깃들었는데,
글쎄..., 계속 ‘왼발’, ‘오른발’만 생각하고 있어서 이게 뭔가 했었어요.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할 때 어느 쪽부터 움직여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네,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의 딸과 함께 할 일주일 후 결혼식만 생각하고 있었죠.

비가 많이 오는 기차역 앞에서 자신의 딸을 기다리면서도 그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착하게 자라온 딸에 대한 고마움과 더 잘 키워주지 못한 미안함 등등이었죠.
간소하게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는 딸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화려한 결혼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뭐, 대충 아시지 않습니까, 인간의 감정이 어떤지....
인간 세계에 살지 않으니 자세히는 몰라도 영혼에는 많이 깃들어 있었으니 이제 대충은 알 수 있었죠.

드디어 딸이 도착해서 남자와 인사를 하고 차는 이동을 시작했죠.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과 세차게 돌아가는 와이퍼.
그리고 결국 지하차도까지 왔을 때,
남자는 딸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들로 우회하라는 신호를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것도 기획의 일부였죠.
그의 인생 파일이 거기서 끝을 맞이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 중 가장 중요한 장치.

기어이 점점 물이 차오르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지하 도로의 중간 지점에 도착한 후였죠.
하지만, 그때는 이미 빠져나가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자동차는 이미 물이 반쯤 차오른 상태였고, 지하차도 안의 물살은 점점 빨라지고, 이미 자동차는 제 기능을 상실했죠.
이미 그곳은 아비규환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이유로 업무를 위해 찾아든 대리들의 기척을 알 수 있었죠.
저는 저의 일을 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작업입니다.
보통 그 작업이 가장 길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쉬운 인간은 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그 영혼에게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자신의 딸을 어떻게든 구해내려는 남자의 영혼에 자신의 죽음이나 마지막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거죠.

제가 절대로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해야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의 문을 열 테고, 그래야만 기획된 [사고사]의 세부적인 내용들이 진행될 텐데 그럴 수 없었죠.
영혼에 깃들어 제 권능을 아무리 발휘해봐도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의 간절함과 절박함에 동화되어 버렸죠.

그의 벨트는 분명히 풀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딸의 벨트는 풀리지 않았죠.
어차피 마지막을 맞이하겠지만, 남자와 딸의 마지막은 세부적으로 기획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그 기획의 흐름을 깨 버린 겁니다.
업무 수행에 변동이 생기자 팀의 윗선에서 즉각 연락이 왔습니다.
하긴, 예비자의 마지막 선택을 예측하지 못했던 저희 과실이었죠.
그 상황에서 남자가 그것을 알리도 없고, 그 순간에는 중요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자신의 죽음이나 마지막 따위도...,
그의 노력이 아무런 소용없다는 사실도 말입니다.

안간힘을 쓰며 딸의 벨트를 풀려고 애쓰는 그를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깃든 채 바라만 봤습니다.
그의 영혼에 깃들어 그가 느끼는 고통을 고스란히 들여다봐야 했죠.
자동차 안이 물로 가득 차고 벨트를 풀려고 애쓴 그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갈 때쯤,
저는 죽음을 앞둔 고통보다 더 큰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간절함과 절박함은 결국은 딸을 구할 수 없다는 절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 누군가가 딸을 구해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까지도 결국 저 밑바닥으로 떨어져 더 없는 절망이 되었을 때,
구해줄 수 없는 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으며 물속에서 절망으로 발버둥 치는 그의 마지막.
그것이 제가 나눠 가질 고통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리 그의 영혼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어려웠습니다.
짧다면 짧은 그 순간 그가 느꼈던 절망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다 나눠 주더라도 나눠 가질 수 없는 고통이었죠.
푸른빛 정도로 나타났다가 소멸되는 다른 영혼과는 달리,
그의 영혼은 소멸되기 직전까지도 그 고통으로 너무 활활 타올라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절반을 나눠 가졌음에도 말입니다.

물에 빠져 죽은 그였는데,
정작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다른 고통으로 인해 영혼의 소멸 불길이 멈추지 않았으니....
그래서 저도 아직 이 모양으로 인간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네요.
울어도 울어도 그치지 않는 눈물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 계속 젖어있군요.
이렇게 동화된 모습으로 팀으로 복귀하기는 좀 어려워서 이곳으로 온 겁니다.

그래도 결국은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서 다행입니다.
그의 영혼이 소멸되었으니 망정이지,
순간이기는 했지만 인간 세계를 멸망시켰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고통 에너지였으니까요.

아주 가끔 이렇게 힘든 업무를 하고 난 후에는 0 번에게 묻고 싶어 집니다.
이런 마지막을 계획한 이유가 뭔지 말입니다.
저 같은 대리가 큰 뜻을 알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무슨 뜻이 있으시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고통까지 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긴 이야기를 마친 그의 모습이 드디어 먼지와 같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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