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B는 MLB를 바라본다
세계 야구계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이 남자, 드디어 메이저리그 (MLB)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고교 때부터 160km의 강속구로 이름을 알렸던 오타니 쇼헤이, 그는 내년부터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을 것이다. 국제 아마추어 계약 규정에 따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2년 간 연봉 조정이 불가능하다. 일본에 남았다면 5억엔 (약 50억원) 의 연봉이 보장되었을 테지만, 그는 돈을 뿌리치고 도전을 선택했다.
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MLB 관계자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흥미롭게 여긴다. 현대 야구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투타 겸업 때문이다. 한 경기에서 선발 투수도 하고 선발 타자도 하는 투타 겸업은 중고등학교 야구에서나 가끔 볼 수 있을 뿐, 프로야구에서는 거의 사라진 개념이다. 지난 30년 간 MLB에서 선발투수와 4번 타자를 겸업한 사례는 없었다.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홈런도 치고 완봉승도 거두는 타자도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한 시즌에 10승과 20홈런을 동시에 달성한 선수는 다시 찾아보기도 힘든 독특함을 지닌다.
아니나 다를까, 올 시즌 종료 후에 열린 MLB 단장 회의에서도 화두는 오타니였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오타니를 영입하려는 구단들의 눈치 싸움도 치열했다. 더구나 올해 MLB 자유계약 시장에는 슈퍼스타들이 별로 없다 보니, 모든 이의 관심이 오타니에 쏠려 있다. 심지어 데뷔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MLB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5위에 꼽힐 정도니, 그의 야구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지 짐작 가능하다.
그의 행보를 기다리는 야구 팬은 상당히 많지만, 일본 야구계 인사들만큼 그의 성공을 간절히 기다리는 집단은 없을 것이다. 일본 야구 80년 역사상 최고의 별종이며, 일본 사회의 영원한 과제인 극미 (克美) 를 희망이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 이후에만 10명의 MLB 선발투수를 배출했지만, 일본 야구는 아직 그들이 미국 야구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과거 일본의 제조업이 미국의 제조업 시장을 점령했듯이, 일본의 야구 선수가 MLB는 물론 미국 야구 전체에 상당한 경종을 울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가 MLB를 동경하면서도 그들을 넘으려는 욕망은 늘 존재해왔다. 반 세기 전, MLB를 대표하는 타자였던 스탠 뮤지얼과 미키 맨틀이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일본 야구가 내세운 선수는 재일교포 출신 투수였던 가네다 마사이치였다. 가네다 마사이치는 통산 400승, 4,490탈삼진, 14년 연속 20승 등의 대기록을 보유하며 별명이 '천황'일 정도로 일본 야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투수였다. 그의 공을 지켜본 뮤지얼과 맨틀 모두 그의 공을 지켜보고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하는 수준'이라고 호평한 바 있다. 단순한 립 서비스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네다의 글러브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전시되어 있다. 일본은 물론 미국 야구계에서도 그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물론 동시대에 뛰었던 선수 중에는 일본 야구 최고의 장타자였던 왕정치도 있었다. 그러나 왕정치의 통산 868홈런은 미국 야구계에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의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당시에 사용했던 홈 구장, 고라쿠엔 스타디움의 좌우 펜스가 각각 91m, 88m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정치는 좌타자였고, 그의 홈런 중 40% 이상이 우측으로 당겨치는 라인 드라이브 타구였으며, 지금은 부정배트로 분류되는 압축배트를 사용했다.
사실 가네다가 뛰었던 50년대는 물론 왕정치가 뛰었던 60~70년대까지도 일본 프로야구 (NPB) 가 MLB에 맞선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 MLB의 인정 여부를 감안할 때, 왕정치보다 가네다가 극미의 상징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그렇게 일본은 경제 규모는 물론 야구의 위상에서도 미국의 어깨와 대등해지고 싶어했다.
노모 히데오를 효시로 하여, 일본 야구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을 목표로 뛰고 있다. 이미 일본의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 중에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최종 목표로 하는 이들도 생겼고, NPB에서 뛰는 선수들도 FA나 포스팅 입찰을 통해 MLB에 도전장을 꾸준히 내밀어 왔다. 그리고 향후에 MLB 도전을 선언하려는 선수들이 도전장을 들이밀 시간을 기다린다. 게다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 에 출전하면 일본이 항상 기다리는 상대는 미국이다. 일본이 대회를 참가하는 가장 큰 목적은 미국과의 정면 승부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야구도 미국 야구처럼 변해오고 있다. 변해야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장타가 아닌 단타 위주로 상대를 압박하며 1점씩 적립하는 야구, 공은 느리지만 제구력을 통해 타자를 옥죄는 야구가 그 동안의 일본 야구가 보여준 색깔이었다. 야수는 빠른 스피드, 공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방망이에 맞히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야구계는 기존의 미덕을 보란듯이 깨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우완 투수 중에서 160km 던진 선수가 두 명이 나온 데 이어 (오타니 쇼헤이, 후지나미 신타로) 좌완 투수의 최고 구속 기록이 탄생했다. (158km, 기쿠치 유세이) 이제는 150km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으면 선발투수가 되기 어려워졌다.
더구나 일본 야구는 전통적으로 싱커, 커터와 같은 변형 패스트볼을 가르치지 않았다. 정통 강속구 투수는 공의 별다른 움직임없이 속도 하나로 타자를 제압해야 한다는 관습적인 교육 때문이었으며,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포크볼이면 충분하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교육도 정론에서 이미 벗어났다. 스가노 토모유키는 커터를 장착한 덕에 일본 야구의 에이스가 되었다.
타자 역시 2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 파워가 없으면 대우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만년 하위팀이었던 히로시마 카프가 우승까지 노리는 강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스즈키 세이야, 마루 요시히로처럼 장타력이 출중한 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NPB를 대표하는 강타자, 야나기타 유키는 MLB 타자들처럼 방망이를 크게 휘둘러서 홈런을 친다. 또한, 힘이 받쳐주지 않는 타격은 국제 대회에서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일본 야구계도 자각했기에, 타자들의 힘을 중시하는 트렌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한 극미를 위한 일본 야구의 변화의 결정체가 오타니 쇼헤이이다. 최고 구속 165km까지 기록할 정도의 강력한 패스트볼이 있고, 한 시즌에 20홈런을 기록한 장타력까지 있다. 현대 야구가 요구하는 강한 어깨와 힘을 모두 가졌다. '일본스러운' 일본 야구 선수가 아닌, '미국스러운' 일본 야구 선수의 진출이다. 오타니 개인의 MLB 도전인 동시에, 미국 야구에 대한 일본 야구의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만화를 현실화시킨 오타니의 또다른 야구 만화가 이제 막 책장을 넘겼다. 오타니가 그려나갈 MLB 도전기는 일본 야구의 변혁의 결과를 알려줄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여러 의미가 담긴 MLB 진출이 과연 해피 엔딩이 될 수 있을까. 야구 팬들은 그에게서 새로운 전환점을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