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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문화의 내공

내공이 모여 표준이 된다

가끔 올림픽 개/폐막식 영상을 다시 찾아보곤 한다. 검색 몇 번이면 역대 하계/동계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다. 영국의 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전세계 사람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회 수 기준으로 봐도, 런던 올림픽의 개회식, 폐회식 영상이 가장 조회수가 많다. 제임스 본드, 미스터 빈, 폴 매카트니가 열어젖히고, 리암 갤러거와 퀸, 원 디렉션 등의 브리티쉬 팝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화려하게 문을 닫는 올림픽이다보니, 5-6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이 영상을 찾는다. 마치 "너네 이거 다 알지? 이거 다 영국에서 만든 거야."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런 게 문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스터 빈의 개막식 등장. 이 영상의 조회수만 무려 2,800만회다.

반면,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한국의 문화적 깊이는 수심 3m의 수영장 깊이는 고사하고, 유아 풀 수준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만 드러내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중문화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전통문화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그 컨셉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개/폐회식 생방송을 보면서 나는 내가 보는 것이 평창 올림픽인지, 평창 눈꽃축제인지 혼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뒤이어 우리는 다시 한 번 문화의 힘을 실감했다. 최근에 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한국에서만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로저 메이가 직접 감사 인사 영상을 보낼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영화 장르 중에 유독 한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장르가 음악 영화였는데, 퀸의 명곡 퍼레이드가 그 징크스를 보란듯이 깨 버렸다. 지금도 역대 최고의 공연으로 꼽히는 퀸의 Live Aid 무대는 30년의 세월을 넘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문화의 끈으로 세계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물론 문화 컨텐츠로 전세계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로 전세계의 공감을 사려면 한국의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 소비자들도 고개를 끄덕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지역 특색, 전통의 흔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K팝 그룹들이 한국의 전통을 강조한 음악을 만들어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백범일지>의 부록으로 실려 있는 <나의 소원>을 보면, 김구는 독립 후의 한국이 추구해야 할 것으로 문화를 꼽는다. 국방도 경제도 아닌 문화를 대한민국의 미래의 표준으로 정했다. 그는 문화의 힘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미리 알고 있었던 셈이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그가 원한 문화의 힘은 누군가의 문화, 삶의 방식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새로이 제시하는 기준이었다. 일본의 영향만 받을 게 아니라, 역으로 영향을 미치는 표준 코드를 원했다. 그 코드의 모양새가 유형일 수도 있고, 무형일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에서 탄생한 어떤 거대하고 폭넓은 맥락이 문화의 흐름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맥락에 필요한 것은 문화의 내공이다.


내공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오랜 기간 무예 따위를 숙련해서 다져진 힘과 기운을 의미한다. 즉, 오랜 연습과 변화를 통해 만들어진 내적인 힘이다. 그 힘에는 물리적인 위력도 있겠지만, 세월을 달리며 넓어진 시야와 한결 넉넉해진 여유도 있을 터다. 내공이 깃들인 개체는 외부의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다.


미국이나 영국의 팝도 그러한 내공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 동안 수많은 장르가 피고 졌으며, 수많은 음악적 시도와 교류가 시간을 거쳐갔다.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팝의 문화를 꽃피우는 씨앗이 되었고, 전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상징하는 당당한 훈장이 되었다. 단순히 시간이 오래 흘러서, 파이의 크기가 커진 것이 아니다. 

퀸의 음악은 내공의 산물이다

문화적 내공을 키우는 일은 음악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프로스포츠 생태계에서도 그들이 자신있게 내세우는 프로스포츠 문화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짧은 역사를 지닌 미국이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는 이미 자리잡은 지 오래되었으며 스포츠로 놀고, 공부 거리를 찾고, 돈을 버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그들의 자생적인 문화, 그 문화를 토대로 한 제도가 하나의 표준을 이끌어내고, 그 표준의 가치를 꾸준히 키워나갈 수 있었다. 덕분에 스포츠가 단순한 체육 활동에 그치지 않고,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적 코드의 일종으로 발전했다.


미국이 어떤 유구한 전통이 있어서 저절로 힘이 생긴 것이 아니다. 내공을 쌓기 위한 과정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 시간동안 유의미한 탑을 쌓으면서, 그 탑이 차츰 주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었다. 미국 스포츠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식축구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내공의 산물이다. 

과연 한국은 어떠한가. 우리는 지금 내공을 쌓았다고 볼 수 있을까. K팝의 무대가 계속 넓어지면서,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한국을 알리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한국이 다져온 문화적 내실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한국적인' 요소들은 있다. 홍대거리와 같은 감성 문화, 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건축 등. 그런데 이러한 문화들이 문화적 정체성으로, 혹은 하나의 표준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더구나 예전의 건축 문화라는 건 어느 나라나 하나씩 갖고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문화적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세대를 아우를 문화적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내공 부족의 증거가 된다. 아직도 젊은이들은 작은 '갬성'만 찾지만 기성 세대는 그 감성을 모른다. 매번 어떤 관공서나 단체에서 한국이나 한국 도시를 홍보할 때는 전통 양식에 자동으로 눈이 간다. 문화적 요소가 서로 아우르지 못하고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 문화를 관통하는 코드가 없다. 우리의 문화를 정의할 만한 단어나 어구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그 요소들을 한데 어우르는 과정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 감성들과 전통적 특색, 그리고 제도가 모여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뤘을 때, 한국의 문화대국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생길 것이고, 김구가 그토록 바랐던 문화의 힘이 생긴다. 그 힘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내공이다. 우리는 문화적 내공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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