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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나오미치와 다르빗슈 유

그들이 공격하는 일본 사회

국가의 경계를 무시하고 퍼지는 전염병은, 그 나라의 사회적 발전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얼마나 질병의 창궐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지,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물리적, 정신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COVID-19에 대한 대응 현황도 이와 다르지 않아, 질병 대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실태가 보인다.


수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국가 가운데, 일본 얘기를 안할 수 없다. 통계상으로 잡힌 일본 내 COVID-19 확진자는 239명이다. 그러나 이는 일본 후생성이 감염 의심자들에 대한 검사를 소극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누적 검사 인원이 9만명을 넘어가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검사 인원이 이제 2천명을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검사 인원 대비 확진자 수 비율이 3%, 일본은 10% 수준이다. 누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주요 초, 중, 고등학교의 개학 연기를 발표한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학교 휴교령조차 제대로 내리지 않는 실정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야심차게 준비한 도쿄 올림픽이 망할까봐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의 후유증 위험성은 물론 COVID-19 전염성 문제에 관해서도 쉬쉬한다. 아베 정부 입장에서는 COVID-19의 전염이 그저 정권의 안정,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사회적 안정에 절대 피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일본 사회의 해묵은 불문율도 전염병 방치에 부채질을 한다. 이런 일본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용감하게 나선 자가 있었으니, 훗카이도 도지사인 스즈키 나오미치다.


일본 역대 최연소 광역단체장으로 이름을 알렸던 스즈키 나오미치는 일본 내 광역단체 중 최초로 긴급사태 선포 및 학교 휴교령을 내렸다. 훗카이도에서 먼저 나서서 아베 총리에게 긴급한 상황을 알리겠다는 의도였다. 스즈키 나오미치 도지사가 긴급사태를 선포하자, 아베 내각이 뒤늦게 휴교령 선포 및 관련 기자 회견을 열었다. 중앙 정부가 지 자체 정부에게 한방 먹은 셈이다.  

불과 얼마 전 일본 환경상 고이즈미 신지로가 "일본 기후 문제는 펀 (fun) 하고 쿨 (cool) 하고 섹시하게 (sexy) 대처해야 한다"는 희대의 뻘소리를 남긴 것과 대조적이다. 부랴부랴 대처를 하려고 모양새를 내고 있지만, 이미 비판 여론은 커졌다. 훗카이도와 달리 중앙 정부는 어떻게든 변화와 대처를 회피하려고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 참고로 환경상 고이즈미 신지로는 일본의 전임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둘째 아들이며, 정치 세습 차원에서 관직에 임명됐다.  왕권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정치 세습, 그 세습 정치인의 무능함까지 보여준 셈이다. 


전세계적인 질병 창궐 상황에서마저 변화를 거부하고 질서에 집착하는 일본 사회는 메이와쿠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사회의 안정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이것이 도를 넘어서 변화를 위한 바른 소리마저 조직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로 간주한다. 중고등학교의 이지메 문화가 퍼진 것도, 학교 내 학생 조직의 질서 유지라는 희한한 명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관습이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와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문화가 고쳐지지 않는 것도, 메이와쿠의 부작용이다. 사회 안정을 이유로, 검증 없는 정치 세습조차도 받아들이는 것이 일본 사회의 현실이다.


이처럼 일본 사회가 안정에 집착하고 변화를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 대표적 사례가 야구계다. 믿기 힘들겠지만, 아직도 많은 일본 야구계 지도자들은 "어깨와 팔꿈치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근성론을 믿고 있다. 당연히 과학적 근거는 없으며, 그 "이론"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야구 선수들, 특히 투수들에게 가혹한 훈련을 시킨다. 중고교와 대학교 야구부는 물론, 프로야구에서마저 어깨가 부서지도록 투수들에게 연습을 시키는 일이 잦다. 그것이 일본 야구계를 지키는 질서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몸이 혹사당한 상태로 프로야구로 넘어와서, 혹사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한 채 무너진 투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그렇게 지도자들의 잘못된 지도 때문에 망가진 투수들이 누적됨에도 불구하고, 쉽게 변화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들이 없다. 야구계의 안정을 위해 강요되는 절대 복종, 야구부 내의 서열 문화 등의 원인 때문에 반항하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경기 도중에 어깨가 아파서 그만 던지고 싶어도, 감독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투혼을 발휘해서 던지라고 명령하면 끝까지 던져야 한다. 17~18세기 전국 시대의 사무라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21세기 일본 야구계 이야기다.


그런 일본 야구계를 오랫동안 비판해온 인물이 있으니, 현재 MLB에서 뛰고 있는 다르빗슈 유다. 다르빗슈는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지만, 일본 야구의 주류 사회와는 오랫동안 척을 져 왔다. 일본 야구계의 근성론을 가장 앞장서서 비판해왔으며, 일본 야구의 원로들과의 설전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매일같이 수백 개의 공을 던지는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 "납득할 수 없는 고교 훈련은 하기 싫었다", "몸이 망가져 고통받는 선수가 끊이지 않는다" 등의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일이지만, 다르빗슈처럼 야구계 위치가 있는 선수의 계속된 발언은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 일본고교야구연맹이 주최하는 고교 야구 공식 대회에서 투수 1명의 투구 수가 1주일 당 500개 이내로 제한되며, 투수들의 3일 연속 등판이 금지된다. 그동안 고교 야구에서는 선발투수 한 명이 한 경기에 150개 이상의 투구를 하거나, 3~4일 연속으로 등판하는 등의 혹사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미국 고교 야구에서 고교 투수의 적정 투구 수를 100개 미만으로 제한하며, 주 1회 등판이 허용되는 것과는 대조된다. 그 정도로 투수들을 고통 속에 빠뜨렸던 혹사가 2020년 대회부터 서서히 제한된다. 고교 야구 대회가 100년 넘게 있었던 나라에서 이제서야 투수를 보호하기 위한 변화가 시작됐다.


여전히 이러한 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어린 투수들이니까 근육이 연해서 많은 공을 던져도 상관없다는 견해를 내놓는 이들도 있다. 결국은 기존의 일본 야구계 방식을 고수하는 입장이며, 질서 유지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분명 선수들을 고통받게 하는 질서에 집착할 이유는 없다. 야구 선수를 보호할 수 없는 질서와 안정은 종국적으로 야구계의 누구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일본 야구계는 지도자들의 근성론이 아직도 바위처럼 굳건하다.  


GDP 규모 세계 3위지만, 왕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상하 질서가 엄하다. 사회의 안정과 질서가 변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사회 정의를 위한 변화보다 병폐로 찌든 관습의 유지가 더 중요한 나라, 이것이 스즈키 나오미치와 다르빗슈 유가 공격하는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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