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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서 기본을 찾다

모든 길은 체력으로

최근 읽은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10여년 전에 출간한 수필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하루키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소설가이지만, 동시에 유명한 러너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지탱하는 힘 두 가지를 꼽으라면 음악과 마라톤이 꼽힐 정도로, 하루키는 매일 2시간씩 규칙적으로 달린다. 보스턴 마라톤은 물론, 100km의 울트라 마라톤 완주 경력도 있을 정도로 장거리 달리기 대회는 빠짐없이 참가한다. 


이 책에는 달리기를 시작한 그의 계기부터 시작하여 달리는 와중의 상념,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의 본인의 정신적 변화가 담겨 있다. 쌓여가는 문장 고민, 쌓여가는 술병 (실제로 그는 애주가다), 그로 인한 건강 악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고자 시작한 달리기가 그의 소설가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등단한 지 어느 덧 30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달리기 덕분이다.

소설가 겸 마라토너

하루키는 소설 쓰기를 육체 노동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며, 소설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체력과 지구력이라고 생각한다. 체력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마라톤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숨이 차오르지만, 그 달리기 속에서 소설 속 한 줄 문장을 쓰기 위한 고뇌를 느끼고 몰아의 경지를 만져보게 한다. 달리기를 마친 후의 하루키는 마치 깨달음을 얻은 듯한 모습이다. 육체 노동의 추진력을 얻은 이의 모습이렷다.


언뜻 생각해 보니, 고3 시절에 들었던 말이 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체력으로 하는 거라고, 누가 책상 앞에 오래 앉을 수 있는 체력이 있느냐가 입시 공부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들었다. 돌아보니 그보다 맞는 말이 없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오랫동안 의자 위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으면, 필요한 공부의 양을 채울 수 없다. 쉽게 지치는 이는 한번 책상을 벗어나면 다시 책상 앞으로 오기가 어렵다. 반면 지겨워질 즈음에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공부가 가능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 주변에서 공부를 진짜 잘했던 애들은 운동도 잘하고 체력도 좋았다. 지칠 때까지 하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한 애들이 정신 집중도 더 잘했다. 그 애들도 지칠 때까지 운동한 후의 짜릿함이, 공부의 완성의 짜릿함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았을 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왜 학점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 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예술이든, 일이든, 공부든, 기본은 체력이다. 사람이 하는 모든 분야의 일은 육체 노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번뜩이는 두뇌나 창의력, 혹은 어떤 순간에 찾아오는 인사이트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번뜩이는 인사이트도 오랜 시간의 누적, 단련된 체력이 없으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하기도 한다. 결국 정신 노동이라는 것도, 몸을 써야만 한다. 오래 앉아 있는 힘이 있어야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겠는가. 직장인들의 운동 부족과 업무 능률 저하가 커플처럼 엮이는 것도 같은 원리겠다.


인생에서는 강한 놈이 끝까지 가는 게 아니라, 끝까지 가는 놈이 강자라고 했다. 끝까지 가려면 무엇이든 꾸준히 유지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 유지하는 힘은 체력에서 나온다. 하루키는 달리기로 키운 체력을 통해 본인의 문학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달리기로 심, 기, 체가 완성되어 하루키의 소설을 받쳐주는 삼각대가 되었다. 체력이 있어야 뭐든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 알고 보면 참 단순하면서도 지키기 힘든 비결이다.


그는 책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묘비를 이렇게 적고 싶다고 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나 역시 끝까지 리듬을 잃지 않고 뛰는, 꾸준하게 채찍질하고 끊임없이 다듬는 체력의 삶을 만들어 가려 한다. 체력에 삶의 기본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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