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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듯 May 16. 2024

늦는 건 없지만, 성급한 건 있다.

딸깍.

브런치 작가가 되긴 했지만 사실 쓸 말이 그렇게 없습니다. 개발자니까 개발관련된 걸 적어야지라고 시작은 했었는데, 막상 적다보니 할 말이 없어서 방치만 해뒀다가 갑자기 머리에 꽂히는 말이 있을 때 한 번씩 적으려고 합니다.


엄청  적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며칠 전에 갑자기 떠오른 말이 있습니다.

"늦는 건 없는데, 성급한 건 있다."

무언가 계기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릿속에 갑자기 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저 말이 갑자기 왜 떠올랐을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얼마 있다가 일을 하다 보니까 알게 됐습니다.


제가 감이 좋습니다.

굳이 용어를 찾자면 감보다는 몸에 배긴 기억? 내뱉어진 습관? 인풋에 자동 맵핑된 아웃풋? 같은 느낌이지만 양이 좋으니 감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외우고 있는 것들이 많지도 않은데 개발로 인정받는 것도 이 감이 거의 다 맞기 때문입니다. 딴 영역은 다 틀려도 개발에서는 잘 맞았으니까.


틀리면 또 어떤가요. 그 자리에서 "방금 말한 거 잘못 말한 거 같다." 하고 다시 정답을 말해주면 되니까.


일을 하다가 동료들이 뭘 물어봤습니다.

몸에 기억은 되어있지만 아주 오래전에 연결이 끊긴?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원래 같았으면 찾아보고 말을 했을 텐데. 질문의 답이 A가 아니면 B였고, 무언가 연결이 탁 붙으면서 뇌는 거치지도 않고 B라는 대답이 나갔습니다. 정답은 A인데 말이죠.


제가 오답을 말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과 정정하려는 그 순간 사이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입에서 정답이 나오고 그걸 다른 들은 사람들이 저와 그분을 왔다 갔다 고개를 저을 때. 그때 깨달았습니다. 조금 성급했다는 걸.


정답을 말할 기회를 뺏겨서 뭐 그런 건 아닙니다.

아무나 정답만 전달해 주면 되는 거니까.


평소 같으면 크게 신경 안 썼을 건데, 하필 "늦는 건 없는데, 성급한 건 있다." 이 말이 떠오른 후라 그런지 뭔가 밀려왔습니다.


조금만 더 고민할걸. 서로 다른 답을 들은 동료들이  뭐가 맞는지 순간 고만했을 텐데. 내가 답을 늦데 준다고 뭐라 할 사람들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그래도 습관처럼 입 밖으로 나가는 걸 붙잡진 못하지만요.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인다거나, 일단 하고 본다거나, 고민 따위 사치인 것 마냥 이거 사고 저거 사고, 결국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구석에 짱 박혀있고.


요즘 들어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런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딸깍"이라는 밈까지 만들어졌을까요. 아무 생각 없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AI로 유튜브 대박이 나고 주식&코인 대박이 나고, AI로 그림을 그리는.


누군가 노력이 누군가에는 그저 딸깍이라는 마우스 클릭 한 번처럼 표현되는 밈이 많아질수록 거기에 배제돼있던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성급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지금 빨리 그 자리에 뛰어들면 남들처럼 손가락 한마디만 움직여서 부자가 되고 유튜브 스타가 될 것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도태되는 감각을 떨치긴 힘든 것 같습니다. AI가 그 감각에 펌프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성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빠르기만 하다고 이뤄질 건 거의 없습니다. 늦어도 됩니다. 그 시간이 앞으로 가기 위한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늦어도 됩니다.


글이 뒤죽박죽입니다. 간만에 글 쓸 생각에 성급했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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