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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신이 Feb 28. 2019

왜 한밤중에 깨서 우는 거죠?  

혹시 야경증(Night Terror) 은 아닐까 

한밤중에 깨서 우는 20개월 아이


이틀째 잠을 설쳤다. 한밤중에 잠이 끊기니 낮 시간에 멍하니 정신이 흐릿하다.


그저께 밤 1시 30분경, 댕이는 울면서 깼다. 그리곤 잠 못 드는 밤이 시작되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려 안아보았지만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다시 내려놓아야 했다. 발을 구르고 몸을 마구 긁어 여기저기 손톱자국이 났다. 몸을 뒤틀고 악을 쓰며 운다. 배를 토닥거리며 안심시켜주려 하지만 그 손길마저 거부하는 딸아이. 이럴 땐 속수무책이다. 건드릴 수도 없다. 그렇게 30분간을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하는 수 없이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사진 보여 줄까?"


댕이는 키즈카페에서 자기가 놀던 걸 찍은 영상을 보길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니 아이가 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또 30분. 이제 그만 보자며 아이를 다독여 재우려 했지만,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얼굴을 바닥에 비비고 뒤척이길 반복하다가 간신히 잠이 든 아이, 우리 부부도 그제야 옆에서 잠을 청했고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자던 댕이가 다시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똑같은 프로세스다. 악 쓰는 아이를 안았다가 내렸다가, 우유를 줬다가, 장난감을 꺼냈다가, 결국 '상어 가족' 영상으로 귀결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플레이하자 아이의 울음이 뚝 그친다. 심지어 눈물을 눈에 머금고 까르르 웃기까지.  '이러려고 일부러 운 거야?'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보다 남편과 나는 너무 힘들었고, 너무 졸렸다.


그렇게 댕이는 자다 깨다 울다 영상 보다를 반복하며 3시간 여를 보냈다. 다음 날, 모두 다 늦잠을 잤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11시 반에 등원했다. 난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와서는 너무 피곤해 낮잠을 자야 했다. 이게 뭐란 말인가. 아이가 밤에 울면서 깨는 바람에 하루가 모두 날아가버렸다.


사실 아이가 이렇게 밤에 자다 깨서 운 건 처음이 아니다. 16개월 무렵 잘 자던 댕이가 갑자기 깨더니 몸부림을 치며 운 적이 있다. 그때는 아이가 혀를 다친 직후였다. 혀가 찢어져 응급실에 가고 가수면 상태에서 혓바닥에 바늘까지 꽂았던 아이는 한동안 낮에는 시무룩했고, 밤에는 그렇게 깨서 울어댔다. 한 시간 가까이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어대던 아이는, 어느 순간 다시 잠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는 눈이 붓긴 했지만 말끔한 얼굴이었다.


난 응급실에서의 경험이 아이에게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어서 밤에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게 아닐까 짐작했고,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댕이는 그렇게 1-2주 울다가 괜찮아졌지만, 또 잊을만할 때쯤 아이가 밤에 갑자기 우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없어지곤 했다. 스트레스 요인이 없을 때도, 낮에 컨디션이 아주 좋은 날도 뜬금없이 밤에 우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조금 뒤지던 남편은 "애가 이빨 날 때 많이 운대."라고 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 부부는 아이가 우는 게 이빨이 나서라고 생각했다. 마침 송곳니 네 개가 올라오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생에게 이야기하니 내 걱정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언니, 우리 큰애 엄청 울었던 거 생각 안 나?"

"그랬었나? 이맘때?"

"그래. 댕이보다 더 커서까지 엄청 울었어. 아주 그런 진상이 없었잖아."

"그래서 어떻게 했었지?"

"그냥 놔뒀지. 어떻게 하겠어. 지금은 괜찮잖아."


그러고 보니 지금은 8살이 된 큰 조카가 아기 때 밤마다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긴 했다. 가만히 두면 없어질 증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냥 손 놓고 보고만 있기는 그랬다. 아이가 울고 악을 쓴 이틀 밤 동안 나도 그 악을 다 쓴 것처럼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룻밤만 더 그랬다간 내가 앓아누울 지경이다.



야경증 (Night Terror) 은 아닐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야경증'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夜驚症. 밤에 놀라는 증상. 영어로는 'night terror'라고 나온다. 맞다. 이보다 더 정확히 이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우리의 밤을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할퀴고 가는 테러.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야경증에 대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취침 2~3시간 후에 갑자기 깨어서 놀란 것 같이 불안상태로 되어 울부짖거나 뛰어다니다가 진정되어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아침에는 이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2~8세의 신경질적인 소아에 많으며, 취침 전의 과식, 기생충, 정신적 흥분 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중략) 정신분석학에서 일종의 히스테리성 불안으로 보고, 이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어머니의 품으로 도피하기 위한 행위라고 설명하고 있다.


야경증은 보통 아이가 깊은 수면으로 들어간 후 첫 1/3 정도 시점에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르는 증상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증상을 살펴보면 대략 우리 댕이가 보이는 행동과 유사한 것 같다. 보통 12시~2시 사이에 아이가 깨서 울기 시작했다. 물어봐도 답을 할 줄 모르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음 날 아침에 아이는 말끔한 얼굴이었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야경증에 대해 기사를 더 찾아보니, 원인은 '뇌의 미세한 신경학적 이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수면 각성 사이클의 미성숙’ 때문이라는 표현도. 또 'ADHD, 틱장애, 간질 발달장애를 진단받은 소아청소년에서 자주 동반된다고 알려져 있다'는 설명도 있다.


이런 전문적이고 우려를 일으키는 원인에 비해, 제시된 치료법은 간단했다. 지켜보고, 불안을 줄여주라는 것. 하지만 매일 밤 아이가 그러한 증상을 보이며, 아이 스스로 많이 힘들어할 경우에는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는 조언이 있었다. 하원길에 아이를 데리고 늘 다니는 소아청소년과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것저것 묻는다.


"무슨 스트레스받는 일 있었어요?”

"아니요 특별히요.”

“어린이집 가나요?”

“네. 어린이집에서는 별 문제는 없는데...”

"늦게까지 뭐 먹어요?"

"아니요."

"변은 잘 보고요?"

"네. 하루에 두 번씩요."


선생님은 아이를 진찰해 보더니 말했다.


"몸이 가렵긴 하겠다. 아주 건조해요."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밤에 몸을 그렇게 긁었었다. 댕이는 매우 건조한 아토피성 피부이다. 기저귀 발진이 너무 심해 돌 전에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보니 계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15개월 정도까지 아이에게 계란은 일절 주지도 않을 만큼 신경을 썼었는데, 요즘 댕이는 이것저것 안 먹는 게 하나도 없다.  


"하루에 로션 몇 번 발라요?"

"목욕시키고 한 번요."

"이 정도면 수시로 발라줘야 해요."

"... 네."

"간식도 과자 같은 거 당분간 주지 마시고요."

"... 네."


내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난 의사에게 혹시 야경증이 아니냐고 물었다.


"글쎄요. 야경증이라고 하기엔 아직 좀 이른 것 같은데? 잠자다가 자주 깰 시기이기도 하고요. 아이가 밤에 잠을 못 자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어요. 소화가 안 되서일 수도 있고 낮에 쌓인 스트레스가 밤에 나타나는 걸 수도 있고요. 피부가 가려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 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의심해 볼 수는 있겠죠.”


야경증이고 뭐고, 아이가 밤에 우는 데에는 뭔가 원인이 있을 것이었다. 댕이는 늘 얼굴이 벌겋게 터서 돌아다녔다. 엉덩이와 배를 긁을 때도 많았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피부가 건조해 가려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요즘 아이 자아가 강해지는데 욕구불만에 차 있어서는 아닐까. 날씨를 이유로 놀이터도 항상 지나치고 영상도 안 보여주고 그랬던 게 마음에 쌓여 밤에 터뜨리는 걸지도 몰랐다. 한 번 키즈카페에서 원 없이 놀게 해 줄까.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엄마 아빠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일지도 몰라.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병원에서 집에 온 댕이가 또 어떤 이유에선지 울고 있다. 요즘 저렇게 자주 운다. 사촌 오빠가 노는 걸 자기도 하고 싶은데 오빠가 장난감을 댕이한테 뺏길 리 없으니 장난감을 쥐지 못해 울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 오늘 밤도 조짐이 좋질 않아.


자기 싫어하다가 울먹이며 잠든 아이. 오늘 밤은 무사하길 잠깐 기도했다. 아이는 잠깐씩 뒤척이곤 했지만 지난 이틀처럼 갑자기 울면서 깨지는 않고 쭉 자고 있다. 대신에 새벽녘, 아이가 잠결에 품으로 파고든다. 울먹이며 배를 벅벅 긁으며 불편해하는 댕이. 로션을 온몸에 살살 발라주었다.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아이의 표정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댕이는 다시 새근새근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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