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신이 Feb 26. 2019

미세먼지 나쁜 어느 날의 일기

모두 미세먼지 탓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스마트폰 어플을 들여다보니 오늘도 미세먼지가 최악으로 나와 있다. 차로 데리러 가기로 했다. 걸어오면 또 놀이터에서 놀자고 할 텐데, 그걸 달래서 집으로 데리고 올 자신이 없다. 그저께 댕이는 미세먼지를 마구 흡입하며 미끄럼틀을 탔었다.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어린이집.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하원하고 댕이뿐이다. 댕이는 엄마한테 안 오고 빙빙 돌며 장난감을 한 번씩 더 만지고 나온다. 엄마가 늦었다고 시위하는 걸까. 아님 진짜로 더 놀고 싶은 걸까.


아이가 이번엔 차를 안 타려고 한다. 밖에서 돌아다니고 싶단 뜻이다. 아이가 하자는 대로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렸다. 좋아하는 치즈를 보여주며 차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웬일로 들은 채도 안 한다. 이번엔 마지막으로 스마트폰 찬스다. “엄마가 방방이 보여줄게.” 하면서 스마트폰을 내밀었는데 아이는 카시트에 앉기 싫다며 몸부림을 치며 우는 소리를 한다.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짐짓 엄하게 야단을 쳤다. “그럼 엄마는 차를 타고 갈 건데, 댕이 혼자 여기 있을래? 어떻게 할 거야??” 댕이가 울기를 멈추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오자마자 치즈,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은 아이는, 식탁 의자에 안 앉으려 했다. 평소에는 밥을 잘 먹는 편인데, 오늘은 간식량이 너무 많았나. 댕이는 어른 의자에 서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판 콩나물 국에 손을 쑥 집어넣어 장난을 친다. 아까 야단치던 목소리가 다시 나왔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거실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난다. 뛰어나가 보니 아이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울고 있다. 기저귀까지 벗어던져버리고.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도 있구나. 댕이가 미끄럼틀에서 다 떨어지고. 아이는 엎드린 채로 왕 하고 운다.


사실 아침부터 조짐은 좋지 않았다. 어제부터 댕이가 갑자기 콧물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느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이는 집 밖에 안 나가고 싶어했고, 내가 골라준 옷을 거부했다. 11시가 되어서야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었다.


뭔가 조금씩 삐걱거리는 날이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기 때문일까. 미세먼지 때문일까. 아니면 남편이 바쁘기 때문일까.


남편이 바빠졌다. 그건 나의 불만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은 나흘째 아침 일찍 나가 모두 잠이 든 시간에 귀가하고 있다. 남편이 바쁘다는 건, 그만큼 돈이 벌린다는 뜻이다. 난 돈은 좋아하지만, 남편이 집에 없는 건 싫다.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하루 종일 연락이 없던 남편, 어젯밤 늦게 들어온 그의 입에서 술냄새가 났다. 난 술을 좋아하지만, 남편이 예고 없이 마시고 들어오는 술은 싫다.


댕이를 안고 잠시 달래니 울음을 금방 멈추었다. 그러더니 다시 뛰어다니고 있다. 다행이다. 댕이는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아빠가 집에 없거나,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아도 신나게 논다. 오랜만에 통목욕을 시키는데 아이가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콧물이 좀 줄은 듯하다. 벌겋게 텄던 아이의 볼도 좀 나아 보인다. 댕이가  “엄마~” 하고 기분 좋은 소리로 나를 부른다. 빙글빙글 웃고 있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기분이 좋아져 버렸다. “왜 불러~~”하고 장난치며 대답해주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는 “안아”라고 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