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신이 Feb 23. 2019

아이는 “안아”라고 말한다

‘상어 가족’이 해결책일까

20개월 딸아이 댕이는 아는 단어가 꽤 된다. 치즈, 우우(우유), 빠(빵), 기- (귤) 등 좋아하는 먹을거리 이름부터 멍멍, 음매, 깡총, 아어(악어), 사자 등 동물 관련 단어, 또(똥), 안녀(안녕), 이거 봐, 찾았다, 안 나와, 안아 등의 단어를 구사한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치즈' 다. 아주 열심히 입술을 양쪽으로 찢어 치를 발음한 후, 'Z’ 발음을 정확히 구사하며 '치즈'를 완성한다. '치즈'를 말할 때의 간절한 표정이라니-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치즈는 종종 아이의 기분을 달래는 데 사용된다. 기분이 나쁠 때 치즈를 주면 금방 풀린다. 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신속하게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치즈를 집에 가서 먹자고 유혹하기도 한다. 치즈 다음으로 딸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안아


댕이의 '안아'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안아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옆에 앉으라는 거다.


어린이집에서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댕이는 엄마에게 "안아"라고 명령하고, 엄마의 품에 안겨서 내려가려 하지 않는다. 아이의 요구대로 나는 아이를 안거나 옆에 앉아서 놀아주다가,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도망치곤 한다. 그러면 아이는 얼마 후 엄마의 부재를 깨달아버리곤 울음을 터뜨린다.


진득하게 앉아서 아이와 놀아주려 하지만 아기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준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댕이는 어떤 놀이에 흥미를 보이다가도 금방 싫증을 낸다. 그때 옆에 앉아있는 엄마가 해줄 역할이란 아이가 놀이에 흥미를 보일 수 있도록 새로운 놀이를 제시하는 것일진대, 나에겐 그 새로운 놀이를 개발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함께 놀면 30분 이내로 댕이와 나, 둘은 아주 심심해진다. 그러면 아이는 불만족한 상태로 나를 보채며 '안아'라고 한 뒤 '저쪽'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안긴 채로 집 안 곳곳을 돌며 새로운 놀잇감을 탐색한다. 그러다 결국 아이는 놀거리를 찾지 못해 짜증을 내고, 나는 다른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이가 놀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럴 때 창의력 없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장난감 검색이 전부. 댕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상어 가족’ 콘텐츠 위주로 검색해 결국 책 위에 펜을 찍으면 여러 가지 사운드가 나오는 ‘핑**펜’을 반나절만에 주문하고, 친정에서 놀고 있는 TV를 공수해왔다. 다른 가정에서는 아이가 TV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TV를 없애기도 하는 판에 없었던 걸 새로 들인다는 게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아이가 이미 ‘상어 가족’을 알아버렸고, 자주 내 휴대폰에 있는 유튜브 어플을 열어 스스로 영상을 플레이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결단을 해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접하는 것보다는 TV의 와이드 한 화면으로 영상을 보는 게 눈에는 더 낫다는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다.


댕이의 '안아'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안방에 있는 TV가 가동되었다. 아이는 갖가지 버전으로 부르는 ‘상어 가족’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같은 리듬의 무한 반복. 아무리 버전이 다르다지만 결국 똑같은 노래인데 그걸 30분을 보고도 지루해하지 않다니. 그 김에 나는 부엌도 들락날락하고 이 글도 쓸 수 있지만, 내 편의를 위해 아이를 TV 앞에 앉혀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올라온다. 특히 옆에서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할 정도로 너무나 집중해 있을 때는 걱정마저 든다. 지금 아이의 뇌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하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 오셨는데 마침 아이가 영상을 시청 중이었다. 평소라면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아달라고 했을 텐데, 아이의 눈은 TV에 고정되어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눈은 화면에 두고 손만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이 웃기면서도 약간은 걱정스럽다. 육아 책에서 ‘24개월 이전에 영상 시청은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뒤늦게 읽은 바 있는데, 우리 딸은 이미 너무 일찍 영상을 접했다. 하루에 한 시간씩 만화를 보는 사촌오빠들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잠투정이 유난히 심한 아이를 유튜브 노래로 달래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댕이야. 우리 이제 맘마 먹을까?”


하니 아이가 우는 소리를 한다. 영상에 빠져들어가 있는 아이를 달래어 데리고 나오니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지났다. 뭔가 이게 아니다 싶다. 이럴 때마다 이젠 웬만하면 영상을 보이지 말아야지 다시 한번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엄마 껌딱지가 되어버린 아이가 자꾸 '안아'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사랑을 원한다는 것일 텐데, 능력 없는 엄마가 자꾸 상어 가족에게 엄마의 역할을 떠넘기고 있는 거 같아, 미안하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