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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신이 Feb 03. 2019

자고 있는 남편을 발로 차 버렸다

출산 후 잠 못 드는 밤들

출산 후 62일째


지금은 아침 8시 반, 자다 깬 댕이에게 수유를 하고 있다.

결국 어젯밤은 평탄하게 끝나지 않았다. 잠이 든 듯했던 댕이는 다시 깼고, 웬일로 잠결에 응아를 해서 목욕까지 시켰다. 밤 9시 반에 목욕을 하고 나서 두 차례 우유를 먹은 아이는 새벽 1시 반 잠에 들 때까지 줄기차게 울어댔다. 어제 맞춘 예방접종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판에는 아기의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계속 안고 달래다가 옆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에게 SOS를 쳤다.


우리 부부는 방을 따로 쓰고 있다. 남편이 출근하려면 잠을 자야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잠을 못 자기도 해서다. 남편이 쓰고 있는 방은 나와 댕이가 자는 방과 화장실이 있는 작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편은 나보다 아기를 오래 안정적인 자세로 안아준다. 아기는 내 팔에선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남편에게 아이를 넘기고 앉아있는데 근육이라곤 전혀 없는 팔이 욱신거린다. 결국 댕이를 진정시키고 재운 것도 남편이었다.


댕이 생후 62일째 늦은 아침... 어젯밤 전투의 흔적


첫 번째 부부 싸움


댕이가 태어나 50일 정도가 될 때까지 매일 밤이 악몽이었다. 낮에는 잘 자던 아이가 밤만 되면 잠에 들지 못해 울어댔으니... 덕분에 밤잠을 못 자고 아이를 들쳐 안아야 했던 나는 예민의 극치에 달했다.


처음 남편과 싸웠던 날도 그랬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간 밤잠을 잘 자던 댕이는 갑자기 낮밤이 바뀌어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잘 시간만 되면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서너 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토요일이었던 그날 남편은 축구를 마치고 돌아왔고, 다음날 있을 축구시합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 그놈의 축구가 문제다.


남편은 중학교 때까지 축구 소년이었다고 했다. 대학교에서도 축구를 하고 군대에서도 축구를 하다가, 지금은 토요일마다 하는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다음 날은 마침 1년에 한 번밖에 없다는 조기축구 모임 축구시합날이었다.


다음날 남편이 새벽같이 깨서 나가야 하는 걸 알기에 난 호기롭게 남편에게 '들어가 자라'고 했다.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고 얼마 후 아니나 다를까 댕이가 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혼자 버티다 남편을 깨웠다. 그는 비몽사몽 중에 나와 댕이를 안았고, 그렇게 우리 둘은 수십 분을 아이를 안았다 내렸다 하며 달랬다. 댕이의 울음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다시 내일 축구대회 스케줄이 신경 쓰였다. “들어가서 자.”


안 그래도 남편은 눈은 뜨고 있었지만 좀비 같은 모습이었다. 몇 주만에 축구하러 나가서 헛발질을 좀 하고 온 모양이었다. 남편은 초점 없는 눈으로 일어나 자기 방으로 건너갔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댕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난 우는 아기를 안고 방안을 서성였다. 문이 조금 열려있는 남편의 방에서는 기척이 없다. 댕이의 목소리는 점점 갈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나오지 않았다.


난 우는 아기를 안고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새 곤히 잠들어 있다. 아기가 가까이서 우는대도 미동이 없다. 짜증이 올라왔다. 나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낮은 소리로 내뱉었다.


애가 우는데 잠이 오냐?


나는 자고 있는 남편을 발로 툭 찼다. 아이를 안고 있으니 남편을 깨운다고 발을 쓴 건데 어째 이상하게 발에 감정이 들어갔다. 남편은 그제야 벌건 눈으로 일어나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 입장은 이랬다.

아무리 자고 있더라도 아기가 이렇게 자지러지게 울면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아기의 작은 기척에도 눈이 번쩍 떠지는데 저렇게 천둥번개 치듯 울어재끼는데도 어떻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


반면 남편은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가 다시 들어와 자신을 깨우며 화를 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그랬다.  


이럴 거면 들어가서 자라고 하질 말던가!


그의 말이 맞다. 난 분명히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들어가서 자지 않고 나와 함께 댕이를 봤으면 했나 보다. 그리고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선 애가 나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굳이 축구시합까지 나간다고 하는 남편이 못마땅했을 거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남편을 발로 찬 행위는 폭력이었다. 난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데에 놀랐다. 남편도 나의 행동에 화를 냈다.


으레 그렇듯이 말싸움은 옛날 얘기로 번졌다. 남편은 내가 너무 예민하다고 했고, 자신에게 너무 집착한다고 했다. 자기가 집만 비우면 내가 들들 볶는다는 거다. 그동안 일이 있는 날도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해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건 또 뭔가... 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집에 일찍 돌아오라는 내 말 때문에 힘들었다고? 내가 집착한다고?


아내에게 ‘집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그게 사실일지라도 너무 굴욕적이었다. 난 그 말이 너무나 섭섭해 질질 울었다. 마치 의부증 아내 취급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 후로 24시간 동안 내 눈물샘은 마를 줄 몰랐다. 하루 종일 수유 의자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수유 중에 모유량이 충분치 않아 입맛을 쩝쩝 다시는 댕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또 눈물이 났다.


하루 종일 울다 보니, 이게 산후우울증인가 싶었다.


이런... 육아의 시작


그게 최초였고, 그 후로도 우린 몇 번 더 싸웠다. 아이가 통잠을 자게 되어 한밤중에 울며 깨는 일이 줄어들기까지. 댕이는 유난히도 큰 소리로 목이 쉬도록 울어댔고, 난 달리 어쩌지 못하고 아이를 안았다가 내려놨다가를 반복했다. 일에 지쳐 코를 골며 자던 남편은 그때마다 옆방에서 나오기도 하고 나오지 않기도 했다. 잠을 자지 못하거나 잠이 들더라도 깊이 잠들지 못했던 난, 어느 순간이 되면 터질 듯이 예민해졌고 화살은 종종 남편에게로 향했다.


우리 부부 사이에 아기의 등장은 축복이었다. 하지만 갓난아기를 돌보며 나는 내 인성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착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은 없어졌다. 잠을 못 자 날카로워진, 나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에 피해의식까지 장착한, 날카로운 말로 쪼아대는 쌈닭 같은 산발의 여자만이 남아있었다. 또 나는 착하고 부드럽기만 한 줄 알았던 남편의 다른 모습을 봤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나를 버거워했고, 그걸 참지 않고 드러냈다. 우린 서로에게 상처를 내며 육아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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