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락다운(Lockdown)의 빗장이 풀리는 시점에서.
우리 동네 아파트 단지 옆 공터에서 토요일마다 시장이 열린다. 동네 식료품점보다 싱싱하고 저렴한 야채들을 살 수 있기에 매 주 비슷한 야채와 과일들이라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콧바람 쐬는 기분을 느끼며 둘러보기로 하고 장을 보러갔다. 우리가 사는 핌프리(Pimpri : 인도 중서부 소도시)는 우리처럼 생긴 동양인이 없어서 이곳 인도 현지인들에게 우리와 같은 동양인은 꽤나 낯설다. 그래서인지 장을 볼 때마다 우리는 원숭이가 된 것처럼 그들의 시선에 주목 받곤했다. 가끔 젊은 이들은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기도 하고 낯선 동양인에게 호감을 보이며 말을 걸기도 한다.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꼬레아?(한국에서 왔나요?)" 그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피할 수 없으니 즐기리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있다.
때때로 장사를 하는 이들과 언어 소통이 되지 않을 때면 옆을 지나는 친절한 이들이 영어로 대신 소통을 해주기도 하고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들도 알려 주곤 해서 장을 보는 일은 우리에게 세상 소식을 듣는 통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3월 초 어느 날 오후였던가, 감자를 파는 진열대 앞에 갔을 때, 두 명의 청년은 우리를 보자 "꼬로나 바이러스! 꼬로나 바이러스!"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 당시, 중국과 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날은 장을 보러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가까운 큰 도시인 푸네(Pune)에서는 택시를 타는 한국인에 대한 승차 거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길을 가는 한국인을 향해 "Go to your country!"라고 외치는 인도인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네는 외곽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사람들도 비교적 매너가 좋았으며 우리에게 호감과 호의를 표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불안감보다는 안심을 하며 장을 보러 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날, 우리는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둘러 장보기를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이후, 국가적인 봉쇄령에 관한 이야기들이 솔솔 나와서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 아침 시간, 상점에 문을 열자마자 먹을 것들과 생필품들을 조금씩 사서 저장해 두었다. 이 동네에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시선이 집중되기에 주의를 해야했고, 더욱이 인도에서 한국인 코로나 확진자 1호가 되는 불명예를 얻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남편과 나는 우리의 고국에 누가 되지 말자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려하던대로 인도는 전국적으로 국가를 봉쇄해버렸고 우리는 두 달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인도는 코로나 발생 확진자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위 4위에 등극했다. 오늘도 엄청난 숫자가 늘고 있으나 심각한 경제적 타격으로 몸살을 앓던 인도 정부는 봉쇄했던 빗장을 부분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지 알 수는 없다. 두려움에 떨던 한국인들은 전세기로 대부분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불편한 시선들이 아직은 낯설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인도를 더 느끼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진 선한 바이러스의 어떤 흔적들을 남기며 인도를 더 품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