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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Mar 31. 2016

일용한 마법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이태원 돈 차를리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어디선가 초리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마늘을 기름에 볶고, 양파를 공들여 달달 볶는 냄새가 촤륵차르륵 나고, 적당히 기름진 돼지고기가 지글대는 냄새까지...... 마른 홍고추가 따뜻한 물에 불어서 보드라워진 감촉, 잘 갈린 칼이 수북한 고수를 착착착 써는 느낌마저 손에 잡히는 듯했다.

 나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고 있을 뿐인데, 급기야는 침이 고이더니, 꼴깍꼴깍 넘어가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

당장 멕시코 음식을 먹어야겠어, 당장!'

     

 멕시코 음식이 먹고 싶었다. 이왕이면 멕시코 사람이 만든 것으로. 마침 우리 동네엔 그럴 수 있는 집이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한 권과 지갑, 핸드폰만 챙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경리단 길은 주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웅성 거리고 있었다. 나는 경리단 길을 지나 큰길 가에 위치한, '돈 차를리'로 간다.

 바에 자리를 잡고서, 메뉴를 한 참 고민하다가 과카몰리와 돼지껍질 튀김, 나쵸칩을 주문했다. 바에 앉아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주방에서 새어 나오는 스페인어와 윙윙 마가리타 만드는 소리가 흥겹다. 나는 사장 언니가 한가해진 틈을 타 말을 걸었다.


"제가 이 책을 읽다가 멕시코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왔는데요, 혹시 여기 적혀있는 음식들 중에 여기서 파시는 게 있나요?"

하며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책의 목차를 들이밀었다. 사장 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책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상한 질문을 해서 죄송합니다.

 

 이 책의 목차는 음식 이름으로 되어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장미꽃잎 소스를 얹은 메추라기

아몬드와 참깨 씨를 넣은 칠면조 몰레

북부식 초리조

쇠꼬리 수프

초콜릿과 주현절 빵

크림 프리터

테즈쿠가나식 콩과 고추요리

호두 소스를 얹은 고추



  쓰고 보니 마치 한 편의 시 같기도 하고 마법의 주문 같기도 하다.


 난 그들이 지난겨울, 초콜릿이 들어가는 멕시코 전통 요리 '몰레'를 메뉴에 넣은 걸 기억한다. 아마 크리스마스  한정 메뉴였지. 그래서 이렇게 소설 속에 나오는 메뉴를 들이대며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혹시 마법처럼 나를 소설 속으로 데려가 줄 요리가 있진 않은지. 사람일은 모르는 법이다. 마법이 당장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사장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목차를 한참 보더니, 내가 그녀의 가게에서 먹어볼 수 있는 가장 비슷한 요리라고는 초리소가 들어가는 타코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문은 쉬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 바깥에 앉아있는 나는, 돈 차를리의 바에 앉아 바삭바삭한 나쵸를 과카몰리에 푹푹 찍어 먹는다. 화려하고 뜨거운 멕시코 소설을 읽으며 파랗고 짭짤한 마가리타를 마신다.

 한 편, 책 속의 주인공 티타는, 요리를 하면서 성장하고 사랑을 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 마법처럼 요리 안에 슬픔, 분노, 욕망, 사랑, 기쁨을 넣어 끓이고 지진다.


 오늘 나의 마법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마법의 주문을 펼쳐들고서 시도는 해봤으니 오늘 하루 충분히 흥미진진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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