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와 항불안제
요즘 들어 가슴이 답답하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별일이 없는데 심장이 콩콩 뛰었다. 숨이 가빠지기도 했다. 한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됐다. 결국 걱정까지 점점 불어나서 병원에 갔다.
처음 가보는 병원이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가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내과를 찾은 거였다. 접수를 하고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니 엄마뻘 되시는 여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
선생님 옆에 놓인 동그란 의자에 앉아서 증상을 털어놓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요즘 뭐 힘든 일 있어요?"
하신다.
문제는, 내가 어.. 어.. 하다가 눈물이 터졌다는 거다. 나는 부끄러웠다. 이렇게 눈물이 쉽게 나오다니.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니. 나는 주섬주섬 티슈를 찾았다. 코를 팽하고 푸는데,
"실컷 울어요. 이럴 땐 우는 게 좋아. 더 울어."
하시며,
"무슨 일이에요? 누가 죽었어? 사기당했어? 얘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누가 죽고 사기당한 사람처럼 울었나 보다. 그건 아니라고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젓는데, 의사 선생님은 조금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아이고,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내가 곗돈을 몇 달 전에 떼였어요. 그래서 어떡해? 그 분한 거 자꾸 생각하면 그게 병이 되는 거예요.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건데 건강을 잃으면 그거야말로 큰일이야."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해주신다. 아시는 분이 따님을 사고로 잃었는데 그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살아는 진다는 것.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겪고서도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 이야기. 얼마나 열심히 이야기를 해주시는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좀 진정을 하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는 몇 분 후 바로 나왔다. 다시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펴 보이며 말씀하신다.
"이 종이가 뭐라고 말해요? 나는 아주 정상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네요. 환자분 큰 돈 벌었네요."
말씀을 너무 재밌게 하시는 의사 선생님. 나는 웃음이 풋하고 터졌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이신다. 조심하라고, 이게 젊어서 그렇지 십 년 이십 년 뒤에는 심장병 되는 거라고. 먹는 것도 줄이고, 카페인도 당분간 끊고, 스트레스 받지 말도록 하라고. 그 힘든 일 그냥 잊어버리라고. 회사 근처의 많은 병원들처럼 몇 만 원짜리 수액을 맞고 가기를 권하지도 않으신다. 3일 치의 소화제와 항불안제만 처방해주셨다. 실컷 울고 배시시 웃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하다. 나는 선생님 손이라도 한번 잡고 진료실을 나가고 싶었지만 놀라실까 봐 감사하다고만 말하고서 자리를 일어섰다.
그런데,
"그리고 미안해요. 내가 잘 모르는데 위로하려구 그랬어요."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가 마음이 뭉클해졌다.
내가 미안한데. 내가 주책맞게 울어서 미안한데, 진료도 잘 봐 주시고 마음까지 치료받은 것 같아서 감사한데, 오히려 사과를 하시다니.
나는 그 말을 소중히 챙긴다. 얼마나 따뜻하고 기품있는 위로인지, 처방전 보다 소중하다.
나도 마음이 튼튼해져서 이런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